2007년 5월17일 필자는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 시범운행에 참석해 남쪽 문산역에서 출발한 경의선 열차를 타고 개성을 다녀오며 평화와 통일의 동맥이 계속 달리기를 기원했다. 사진은 이날 북쪽 금강산역에서 출발한 동해선 열차가 남쪽 제진역에 도착한 뒤 남북의 기관사가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61
2007년 들어 북핵 문제 해결에 커다란 진전이 있었다. 2월13일 6자회담에서 이른바 ‘2·13 합의’라는 새로운 이정표가 마련되었다. 북핵시설의 폐쇄와 봉인을 필두로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와 중유 지원, 북-미와 북-일 관계 정상화, 북핵시설 불능화 등 5단계 합의사항에 한반도와 주변 당사국들이 서명한 것이다.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요청하고 있는 이 합의가 제대로 실행된다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는 파격적으로 진전될 것이다. 무엇보다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가 동시에 향상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나는 ‘2·13 합의’가 1994년 10월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북-미 제네바 합의’와 같은 역사적 의미와 무게가 있다고 본다. 몇가지 점에서는 더 실효성 있는 문건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다자간의 합의여서 제네바 합의보다 깨뜨리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무엇보다 실무집단에서 논의한 내용을 전체회의로 이관해 더 확실하게 정리하도록 했다. 최종 단계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연계하는 실무그룹을 가동하기로 한 것은 우리 민족에게는 절박한 문제이기도 하다.
5월17일 남북열차 시범운행이 이뤄졌다. 남쪽 경의선 열차는 낮 12시18분, 북쪽 동해선 열차는 12시21분 각각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과 북을 향해 달렸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권호웅 북한 내각책임참사 등과 함께 나는 경의선 열차에 탑승했다. 일제가 대륙침략을 위한 물류 기간선으로 설치한 경의선이 이제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동맥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감회가 벅찼다.
개성에 도착해 자남산 호텔에서 북쪽 대표단과 오찬을 했는데, 권 내각참사가 내게 건배를 제안하면서 뜻밖의 인사를 했다. “우리는 한 총재 선생을 잊을 수 없습니다. 세 가지를 항상 기억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첫째는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는 소신을 높이 평가하고, 둘째로 ‘아~ 40년의 짝사랑’이라는 글을 기억합니다. 셋째로 리인모 노인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 주신 것 잊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40년의 짝사랑’은 서울대 교수 시절인 85년 <월간조선> 신년호의 권두논문으로, 한-미 관계 40돌을 되돌아보면서 쓴 글인데 이를 북쪽 엘리트들이 탐독했다니 나로서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꿈같은 하루,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 평화순례 여행이었다.
바로 다음날인 5월18일 나는 ‘세계의 화약고’ 중동지역으로 또다른 평화순례를 나섰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제7차 유럽지역 적십자회의’에 참석한 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적십자사를 초청 방문하고 두 나라의 인도주의 협력 상황을 점검하는 17박18일간의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5월23일 예루살렘 주재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사무실을 시작으로 팔레스타인의 수도 라말라에서 적신월사 유니스 총재와 회의를 하고 제2도시 나블루스의 지사를 방문했는데, 삼엄하면서도 오만한 이스라엘군의 검문을 직접 겪어야 했다. 2년 전 서울에서 열린 국제연맹 총회 때 두 나라 적십자 사이에 맺은 교류협력 양해각서가 사실상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들 했다. 나는 5월28일 이스라엘 적십자사(MDA) 본사를 방문해 의사 출신인 노암 총재를 만나 양해각서의 불이행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자 그는 한적이 자신과 유니스 총재를 한국으로 초청해서 새로운 협력을 구축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5월30일 요르단의 암만에서는 적신월사에서 주는 최고 훈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6월4일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한반도의 분단보다 더 뿌리 깊은 중동 지역 분쟁의 고통을 확인한 까닭에 한동안 가슴이 답답했다.
7월16일에는 황장엽 박사를 점심에 초대했다. 이른바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로서 북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을 지낸 거물 망명객이지만 적십자인의 눈으로는 그 역시 한 사람의 이산가족이기에 위로하고자 마련한 자리였다. 물론 한두 시간에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할 여유는 없었지만, 그의 심경은 한 자락 엿볼 수 있었다.
남쪽으로 온 이래 주변에 수구냉전세력들만 보인다고 했더니, 그는 슬픈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정말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서울대 같은 곳에서 똑똑한 학생들에게 초기 마르크스주의, 인간적 마르크스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역시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학자다운 모습이, 학자로 살고 싶은 열정이 시퍼렇게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후기 마르크스와 계급환원주의자 마르크스 또는 프롤레타리아 유혈혁명을 선동하는 마르크스가 아닌 휴머니스트 마르크스를 가르치고 싶다는 뜻이다. 나로서는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없어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내내 밖에서 기다리던 서너명의 안전요원에게 둘러싸여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몹시 처연해 보였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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