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용천역 폭발사고 복구현장 이례적 답사 / 한완상

등록 2012-12-23 19:37수정 2012-12-23 21:12

2005년 6월23일 대한적십자사 총재로서는 처음 방북한 필자는 전년 용천역 폭발사고 때 지원물품을 보냈던 평북 신의주 용천의 복구 현장을 직접 답사했다. 사진은 장재언 북한 적십자회 위원장의 이례적인 배려로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한 일반 주민의 집을 방문한 모습이다.
2005년 6월23일 대한적십자사 총재로서는 처음 방북한 필자는 전년 용천역 폭발사고 때 지원물품을 보냈던 평북 신의주 용천의 복구 현장을 직접 답사했다. 사진은 장재언 북한 적십자회 위원장의 이례적인 배려로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한 일반 주민의 집을 방문한 모습이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59
2005년 1월1일. 역사적인 을유년이 밝았다. 을사늑약 100돌과 대한적십자사 100돌이 맞물려 있는 해다. 국가의 외교권이 강탈당한 때 한국의 인도주의 운동이 탄생했다는 것은 역설이면서도 희망의 빛이기도 하다. 올해는 광복과 분단 60돌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런 때 대한적십자 운동을 총책임맡은 나로서는 어깨가 무겁다.

1월1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장재언 위원장 이름으로 ‘비료 50만톤을 5월 이전에 지원해달라’는 전통문이 왔다. 그러나 통일부를 비롯한 우리 정부 쪽과 협의가 원활하지 않아 지원 결정은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 그런데 4월15일 북쪽에서 뜻밖의 전통문이 왔다. 지난 4월13일 강원도 고성군 해금강 북한지역으로 넘어온 우리 어선 황만호를 선원과 함께 인도주의와 동포애의 원칙에서 우리 쪽에 넘겨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즉각 장 위원장에게 최근 북쪽에도 심각하게 번지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 퇴치에 필요한 약품과 장비를 전달해주겠다는 답례의 편지를 보냈다. 5월16~19일 6·15 공동선언 5돌 기념으로 개성에서 열린 남북 차관급 회담에서 마침내 비료 문제가 풀렸다. 우리 쪽에서 비료 20만톤을 보내주기로 합의했다.

6월7일 현대아산이 정몽헌 회장 기념 묘소에서 여는 추모식에 초청을 받아 금강산으로 갔다. 마침 금강산 관광객 100만명 돌파 기념으로 <한국방송>의 ‘열린 음악회’도 온정각에서 열렸다. 6월8일 예상대로 북한 대표로 나온 리종혁 조평통 부위원장과 단둘이 만나 남북관계의 교착상태에 대한 솔직한 의견 교환을 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동안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한 대북 관련 발언을 모두 정리한 자료를 보여주며 그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풀 것을 설득했다.

6월21일 나는 북한의 고려항공 편으로 평양으로 향했다. 지난주 평양에서 ‘6·15 통일대축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데다, 대통령 특사로 간 정 장관과 김정일 위원장의 면담도 성사된 덕분에 가능해진 방북이었다. 마침 같은 기간 서울에서 열리는 ‘제15차 남북장관회의’의 북쪽 대표단이 타고 온 고려항공기를 이용한 것이다.

이날 저녁 고려호텔에서 북적의 장 위원장이 주재한 환영만찬이 열렸다. 우리는 초면이었으나 전통문으로 이미 여러 차례 만난 것과 같아 소통이 잘되었다. 마침 동갑이기도 했다. 부산 출신인 그는 거구였으나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6월22일 오전 북한 적십자위원회 사무실을 방문했다. 장 위원장은 지난해 용천 폭발사고 때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가 긴급구호품과 자재장비 등 337억원가량의 복구물품을 신속하게 지원해준 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를 표시했다. 6월23일 장 위원장은 내 요청대로 용천 복구현장 답사를 하게 해주었다. 날이 흐리다가 비까지 오는데 헬리콥터를 타보니 너무 낡아서 겁이 날 정도였다. 한 시간쯤 지나 무사히 용천지역에 도착했다. 먼저 사고 때 학생과 교사들이 희생된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우리 일행을 위해 3·4학년생들이 노래와 춤을 보여주었다. 너무 고마웠으나 미리 예상을 못한 일정이어서 선물을 준비해 오지 못한 게 아쉬웠다.

이어 북한 당국은 복구지역에 살고 있는 현지 주민의 집을 직접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참으로 파격적인 일이다. 방 2개, 부엌 한 칸의 작은 공간이었는데 부엌에 서울에서 보낸 ‘린나이 버너’가 보였다. 유치원생 딸과 함께 우리를 맞은 여주인은 복구가 잘되어 예전보다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다시 헬기로 평양으로 돌아온 우리는 밤 10시께 북적 대표들과 호텔 회의실에서 ‘남북적십자간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검토했다. 나와 장 위원장은 기분 좋게 이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착공을 빠른 시일 내에 진행한다. 둘째는 북한 적십자 종합병원 현대화에 필요한 의약품 및 의료 장비를 성의껏 단계적으로 지원한다. 연 1회 의료진 교류도 한다. 셋째, 남북적십자 청소년 단원간 우정의 나무심기 행사를 금강산에서 식목일에 연례적으로 한다. 이로써 남북간 인도주의 협력의 물꼬가 터지게 된 것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이 합의서는 곧 남북장관회담에서 뒷받침해주었다. 8월26일부터 화상상봉을 포함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하고, 면회소 건설을 위한 측량과 지질조사를 7월 중으로 끝내기로 했다. 또 8월 중에 남북적십자 회담을 열어 한국전쟁 실종자 생사 확인 등 인도주의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다.

8월24일 서울로 돌아오면서, 대체로 6·15 남북공동선언보다 구체적이고 진전된 합의 내용에 만족스러웠다. 설사 남북간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해도 인도주의적 소통력으로 남북 대화를 지속시켜 합의를 실천하게 해야 한다는 소명감으로 새삼 어깨가 무거웠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1.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2.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3.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4.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5.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