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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이인제 의원 만나 “노무현 후보 도와라” / 한완상

등록 2012-12-16 19:26수정 2012-12-16 21:22

2002년 3월20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다투던 이인제(오른쪽)·노무현(왼쪽) 고문이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당 후원회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이후 5월초 필자는 이 고문을 만나 노 후보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적극 지원하라고 조언했으나 그는 거부했고 12월초 끝내 탈당해 자민련에 입당했다.
2002년 3월20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다투던 이인제(오른쪽)·노무현(왼쪽) 고문이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당 후원회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이후 5월초 필자는 이 고문을 만나 노 후보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적극 지원하라고 조언했으나 그는 거부했고 12월초 끝내 탈당해 자민련에 입당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54
2001년 9월 교육부총리에서 물러난 지 반년 넘게 지났다. 존경받는 언론학자이자 서울대 선배인 이상희 교수를 만났다. 상지대 총장 자리를 추천했던 그는 이번엔 자신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성대 총장으로 오라고 권유했다. 한성대도 설립자 가족의 불화로 시끄러운 상황이다. 또다시 문제 사학을 맡으라니, 묘한 인연이다. 교수 직선으로 선출돼 10월15일 총장으로 취임했다. 상지대, 방송대에 이어 세번째 총장직이다.

학교 밖 세상은 12월 대통령 선거를 향해 거칠게 치닫고 있다. 야당인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대선 후보가 당내 반노와 비노 세력으로부터 심각한 협공을 당하고 있다. 이인제 의원이 앞장서 노 후보를 맹공하고 있다. 하기야 국민경선 방식 도입 전까지만 해도 이 의원은 민주당내 부동의 1위였으나 지난 3월16일 광주지역 경선에서 지지율 5%에 불과했던 노 후보가 뜻밖의 1위를 하면서 돌풍을 일으키더니 마침내 4월26일 서울 경선에서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한국 정치사에 특이한 변종으로 등장한 ‘노풍’은 국민 지지율을 60%까지 끌어올리며 견고해 보였던 여당의 이회창 대세론까지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바람은 ‘노사모’ 같은 국민들의 자발적이면서 비주류적인 정치행태에서 나온 것이기에 대선 후보가 된 뒤에도 당내 주류세력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나는 노 후보 선출 직후인 5월초 이인제 의원과 저녁을 함께 하며 그의 정치 진로와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당내 경선 훨씬 전부터 그는 내게 후원회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그를 오랫동안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관찰해왔다. 1993년 문민정부 때는 나는 초대 통일부 장관, 그는 노동부 장관으로서 함께 일하기도 했다. 이후 경기도지사를 거치며 대통령의 꿈을 키워가던 그는 중도진보의 시각에서 보수에 맞서며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자 애썼다. 그런 모습에 호감을 갖고 있었기에 나는 그의 후원회를 돕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광주 경선에서 뜻밖의 패배를 당한 뒤 그는 민주당을 떠나 독자 노선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이 의원에게 노 후보를 적극 밀어주라고 권했다. 비록 마음은 내키지 않겠지만 그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라고 했다. 일단 노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켜서 민주정권을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자신의 꿈을 접어두고 ‘노무현 정부’의 성공을 위해 헌신한다면, 5년 뒤 나는 기꺼이 그의 후원회를 맡겠노라고 했다. 내 말을 듣고 그는 퍽 불편해했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박근혜 의원,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와 손잡으면 이회창 대세론을 분명히 꺾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 제안을 거부했고, 나 또한 그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와 씁쓸한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양보의 미덕과 그 힘이 보장해주는 더 감동적인 역사의 선물을 미리 꿰뚫어보지 못하는 그의 조급한 야망이 안타까웠다. 마치 와이에스와 디제이가 87년 대선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11월 들어 노 후보는 정 대표와 힘겨운 단일화 협상을 했다. 민주당내에서조차 정 대표로 단일화되기를 바라는 상황에서, 노 후보는 자신에게 유리한 국민경선제 대신 정 대표 쪽에서 주장하는 여론조사 방식을 전격 수용했다. 주류 정치인은 할 수 없는, 살신성인적인 자기 비움의 결단은 그의 지지도를 더욱 높여주어 단일후보로 최종 선출됐다. 그러자 이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했다. 그리고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참으로 허망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몽준 대표는 그보다 더 충격적인 선택을 했다. 대선 바로 전날인 12월18일 밤 10시 무렵 민주당과의 공조를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단일후보 지지 철회의 이유가 더욱 한심했다. ‘만일 미국과 북한이 싸우게 된다면 우리는 (혈맹인 미국을 돕는 게 아니라) 그 싸움을 말려야 한다’는 노 후보의 말을 꼬투리 잡은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미의 무력충돌을 막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일인데…. 이는 노 후보를 색깔론으로 낙선시키겠다는 그의 본심을 드러낸 것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12월19일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대선 결과는 참으로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치열한 선거과정에 나타난 정치꾼들의 행태는 진절머리가 났다. 과연 ‘노무현호’가 거친 한국 정치의 바다를 제대로 순항하게 될까 염려된다. 정권교체가 정치문화의 교체로, 나아가 역사교체와 시대교체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우리의 앞날은 잠시 반짝 밝아질 뿐 긴 암흑의 계절이 올 수도 있으니!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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