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운명이 19일에 달렸다. 검찰 항명파동이 한창이던 11월29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검찰 깃발 앞으로 주차장 출구의 빨간 경광등이 돌아가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선거 때 뒷전에 몰린 것은 처음
문재인 되면 고강도 개혁 예고 며칠 뒤면 다음 청와대의 주인이 결정된다. 온 국민이 12월19일 밤 개표 결과를 혹은 애타는 마음으로, 혹은 기대에 차서 기다리겠다. 검찰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어쩌면 다른 어느 집단보다 초조하고 절박할 수 있다. 검찰 처지에서 보면 이번 18대 대통령선거는 지난 몇 차례의 선거와 사뭇 다르다. 검찰이 이렇게까지 뒷전에 선 선거는 좀체 찾기 어렵다. 5년 전 검찰은 사실상 심판 구실을 했다. 2007년 8월, 검찰은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에 대해 ‘(이 후보의 형) 이상은씨 소유가 아니다’면서도 정작 실소유자는 밝히지 않는, 애매한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일주일 뒤 이 후보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뽑혔다. 같은 해 12월5일, 검찰은 이 후보의 비비케이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무혐의 처리했다. 2주 뒤 이 후보는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두 사건은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지금까지도 불쑥불쑥 의혹으로 제기된다. 그럼에도 당시 검찰은 ‘때맞춰’ 의혹을 미봉했다. 2002년 10월 검찰은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해 ‘증거가 없다’는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1997년 12월에는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의혹 수사를 대선 이후로 미뤘다. 대통령 아들들이 구속된 2002년 6월 지방선거, 한나라당의 ‘차떼기’가 드러난 2004년 총선에서도 검찰은 선거의 ‘조연’이었다. 지금의 검찰은 그런 ‘존재감’이 없다. 바람직한 일이다. 검찰 스스로 자제한 결과는 아니다. 지난 몇 달 동안 검찰은 제 몸 추스르기에도 바빴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로 검찰의 터무니없는 부실수사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사건 마사지’를 일삼는다는 비판은 굳어졌다. 김광준 부장검사 사건과 성추문 검사 사건으로 ‘경찰보다는 낫지 않으냐’는 말도 하지 못하게 됐다.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했던 검찰 조직은 이성을 잃은 총장의 전횡과 참모들의 항명 사태로 붕괴했다. 생로병사, 영고성쇠를 떠올리게 한다. 왜 아니겠는가. 한국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쥐고 휘둘러온 지 벌써 60년이다. 검찰은 이제 선거판의 ‘플레이어’는커녕 명백한 개혁 대상이다. 그 방향은 이번 선거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박근혜·문재인 두 유력 후보의 검찰개혁안은 중수부 폐지 등 비슷한 점도 많지만 검찰 입장에선 유불리가 확연하다. 문 후보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주장하지만, 박 후보는 이에 반대하면서 상설특검제를 주장한다. 본의 아니게 검찰의 ‘속내’를 드러냈던 윤아무개 전 검사는 실수로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공수처는 별도 법률로 별도 조직이 생기는 것이므로 우리 검찰에는 큰 타격”이라고 말했다. 상설특검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 기존의 단발성 특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검찰의 기소독점권 견제에서도, 재정신청 전면 확대와 공소유지 변호사 도입, 검찰 항소권 제한을 주장하는 문 후보 안이 검찰엔 훨씬 불편해 보인다. 박 후보는 ‘기소대배심 구실을 하는 검찰 시민위원회’를 주장하지만, 윤 전 검사는 “미국의 대배심을 보면 검사의 뜻대로 대부분 관철된다”고 말했다. 그런 안은 “뭔가 큰 개혁을 한 것처럼 보여”질 뿐이라는 것이다. 검찰 인사 문제에서도, 박 후보 안은 검찰인사위에 실질적 권한 부여 등 기존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반면, 문 후보 안은 총장 등 검찰 고위직의 외부 개방 확대, 검사장급 인사청문회 실시 등 상대적으로 큰 변화를 예고한다. 검경 수사권 문제에서도 ‘검찰 직접수사 기능 축소’(박 후보 안)와 ‘경찰 수사, 검찰 기소 원칙의 확립’(문 후보 안)은 온도가 다르다. 윤 전 검사는 “검찰 직접수사 자제는 …우리가 마치 큰 양보를 하는 것처럼 비치게” 한다고 말했다. 그 정도라면 나중에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안에는 그런 ‘부활’을 꿈꾸는 이들이 적지 않을 터이다. ‘정치검사’로 지목된 이들부터 자신의 장래가 다시 열릴 것을 기대하면서 버티고 있는 모양이다. 그 기대에는 어느 한쪽에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계산과 기대대로 될지 지켜볼 일이다. 여현호 선임기자yeopo@hani.co.kr
문재인 되면 고강도 개혁 예고 며칠 뒤면 다음 청와대의 주인이 결정된다. 온 국민이 12월19일 밤 개표 결과를 혹은 애타는 마음으로, 혹은 기대에 차서 기다리겠다. 검찰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어쩌면 다른 어느 집단보다 초조하고 절박할 수 있다. 검찰 처지에서 보면 이번 18대 대통령선거는 지난 몇 차례의 선거와 사뭇 다르다. 검찰이 이렇게까지 뒷전에 선 선거는 좀체 찾기 어렵다. 5년 전 검찰은 사실상 심판 구실을 했다. 2007년 8월, 검찰은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에 대해 ‘(이 후보의 형) 이상은씨 소유가 아니다’면서도 정작 실소유자는 밝히지 않는, 애매한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일주일 뒤 이 후보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뽑혔다. 같은 해 12월5일, 검찰은 이 후보의 비비케이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무혐의 처리했다. 2주 뒤 이 후보는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두 사건은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지금까지도 불쑥불쑥 의혹으로 제기된다. 그럼에도 당시 검찰은 ‘때맞춰’ 의혹을 미봉했다. 2002년 10월 검찰은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해 ‘증거가 없다’는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1997년 12월에는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의혹 수사를 대선 이후로 미뤘다. 대통령 아들들이 구속된 2002년 6월 지방선거, 한나라당의 ‘차떼기’가 드러난 2004년 총선에서도 검찰은 선거의 ‘조연’이었다. 지금의 검찰은 그런 ‘존재감’이 없다. 바람직한 일이다. 검찰 스스로 자제한 결과는 아니다. 지난 몇 달 동안 검찰은 제 몸 추스르기에도 바빴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로 검찰의 터무니없는 부실수사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사건 마사지’를 일삼는다는 비판은 굳어졌다. 김광준 부장검사 사건과 성추문 검사 사건으로 ‘경찰보다는 낫지 않으냐’는 말도 하지 못하게 됐다.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했던 검찰 조직은 이성을 잃은 총장의 전횡과 참모들의 항명 사태로 붕괴했다. 생로병사, 영고성쇠를 떠올리게 한다. 왜 아니겠는가. 한국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쥐고 휘둘러온 지 벌써 60년이다. 검찰은 이제 선거판의 ‘플레이어’는커녕 명백한 개혁 대상이다. 그 방향은 이번 선거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박근혜·문재인 두 유력 후보의 검찰개혁안은 중수부 폐지 등 비슷한 점도 많지만 검찰 입장에선 유불리가 확연하다. 문 후보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주장하지만, 박 후보는 이에 반대하면서 상설특검제를 주장한다. 본의 아니게 검찰의 ‘속내’를 드러냈던 윤아무개 전 검사는 실수로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공수처는 별도 법률로 별도 조직이 생기는 것이므로 우리 검찰에는 큰 타격”이라고 말했다. 상설특검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 기존의 단발성 특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검찰의 기소독점권 견제에서도, 재정신청 전면 확대와 공소유지 변호사 도입, 검찰 항소권 제한을 주장하는 문 후보 안이 검찰엔 훨씬 불편해 보인다. 박 후보는 ‘기소대배심 구실을 하는 검찰 시민위원회’를 주장하지만, 윤 전 검사는 “미국의 대배심을 보면 검사의 뜻대로 대부분 관철된다”고 말했다. 그런 안은 “뭔가 큰 개혁을 한 것처럼 보여”질 뿐이라는 것이다. 검찰 인사 문제에서도, 박 후보 안은 검찰인사위에 실질적 권한 부여 등 기존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반면, 문 후보 안은 총장 등 검찰 고위직의 외부 개방 확대, 검사장급 인사청문회 실시 등 상대적으로 큰 변화를 예고한다. 검경 수사권 문제에서도 ‘검찰 직접수사 기능 축소’(박 후보 안)와 ‘경찰 수사, 검찰 기소 원칙의 확립’(문 후보 안)은 온도가 다르다. 윤 전 검사는 “검찰 직접수사 자제는 …우리가 마치 큰 양보를 하는 것처럼 비치게” 한다고 말했다. 그 정도라면 나중에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안에는 그런 ‘부활’을 꿈꾸는 이들이 적지 않을 터이다. ‘정치검사’로 지목된 이들부터 자신의 장래가 다시 열릴 것을 기대하면서 버티고 있는 모양이다. 그 기대에는 어느 한쪽에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계산과 기대대로 될지 지켜볼 일이다. 여현호 선임기자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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