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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나인가 너인가, 문재인-안철수 캠프의 피말린 1주일

등록 2012-11-23 19:54수정 2012-11-23 20:01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가 접점을 찾지 못한 23일 오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의 우상호 공보단장(왼쪽)과 진선미 대변인(오른쪽)이 어두운 표정으로 서울 영등포 당사 기자실 앞을 지나고 있다.(왼쪽 사진)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에서 정연순 대변인이 야권 단일화 협상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가 접점을 찾지 못한 23일 오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의 우상호 공보단장(왼쪽)과 진선미 대변인(오른쪽)이 어두운 표정으로 서울 영등포 당사 기자실 앞을 지나고 있다.(왼쪽 사진)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에서 정연순 대변인이 야권 단일화 협상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단일화, 피말린 1주일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이 본뜻과는 무관하게 실감나는 나날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실무협상 중단과 재개, 후보 회동, 캠프 간 제안과 역제안의 숨가쁜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캠프 관계자들은 꼬박 날밤을 새우는 게 다반사가 됐다. 기자들도 자정 이전 퇴근은 포기한 지 꽤 됐다. 밤마다 상황이 급변하고 있어서다. 단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눈그늘도 점점 짙어지고 있다. 단일화 막판협상으로 길었던 닷새를 돌아본다.

문재인 캠프의 5일
“안 후보 토론은 한 수 아래였죠, 아 ‘한 수 아래’는 취소!”

19일: 단일화 협상이 재개됐다. 14일 협상이 중단된 지 닷새 만이다. 12월19일 대선까지는 30일을 남겨뒀다. 앞서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전날 밤 전격 회동해 새정치 공동선언을 발표하는 등 파행 상태를 봉합했다.

협상단은 낮 12시에 만났다. 장소는 비공개였다(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 방을 잡고 협상을 벌인 것으로 나중에 확인된다). 문재인 후보 캠프에선 기자들의 거듭되는 회담 상황 확인 요청에도 ‘묵비권’을 행사했다. 마감시간인 오후 5시까지 단 하나 확인된 건 ‘티브이 토론을 21일 밤에 열기로 합의했다’는 내용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단일화 방안’과 관련해선 공보단은 물론, 협상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을 법한 핵심 관계자들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여기서 핵심 관계자란 문 후보 캠프에선 이른바 ‘7인 회의’ 참석자를 핵심으로 본다. 김부겸·박영선·이인영 공동선대위원장, 노영민 비서실장, 홍영표 종합상황실장, 이목희 기획본부장, 우원식 총무본부장이다. 캠프 전반의 상황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운영회의’의 멤버다. 여기에 전략 파트와 후보 비서실의 핵심 실무자, 협상팀 등을 더해 15명가량을 핵심 관계자로 분류할 수 있다.)

다만 뭔가 이상하다는 기류는 감지됐다. 오후 3시께 한 핵심 관계자는 “상황이 아주 안 좋은 것 같다. 저쪽이 아주 세게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격앙된 표정으로 “나중에 저쪽이 어떻게 나왔는지 자세하게 말해주겠다”고 했다. 협상 내용에 관한 결정적 단서가 떠오른 건 저녁 8시쯤이었다. 안 후보 쪽이 이른바 ‘여론조사 +알파’를 제안했는데, 알파가 민주당에 매우 곤혹스런 내용을 담고 있다는 얘기가 안 후보 캠프에서 흘러나왔다. 문·안 캠프 담당 기자들의 공조 취재 끝에 안 후보 쪽이 민주당 대의원과 안 후보 지지자(펀드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공론조사를 ‘플러스 알파’로 들고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좀더 상세한 취재 경위를 밝히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안철수 펀드’ 가입자는 100% 안 후보 지지 성향인 반면, 민주당 대의원은 상당수가 ‘비노’ 성향이다. 문 후보 캠프에선 안 후보 쪽이 도저히 문 후보 쪽이 받지 못할 불공정 경쟁 방안을 들고나온 뒤, ‘문 후보가 양보한다더니 사실은 유불리를 따진다’며 공격하려고 의도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어렵게 재개된 협상에 또다시 이해타산과 불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20일: 아침부터 캠프가 소란스러웠다. 문 후보 캠프는 “안 후보 캠프가 ‘여론조사 +공론조사’를 제안했으나, 문 후보 캠프가 거부했다”는 <한겨레> 단독기사의 출처를 안 후보 캠프로 단정하고 거센 비판에 나섰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9시30분 긴급 브리핑을 통해 전날 밤 협상 내용을 공개하고, ‘안 후보 쪽이 일방적인 패널 구성 방안을 들고나와 놓고는 언론플레이를 한 것은 어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캠프 전체가 나서 “안 후보 쪽이 제시한 공론조사 방안은 받아들인 것이지만, 공론조사의 세칙은 실무팀 협상을 통해 조율돼야 하는 것 아니냐”며 ‘통큰 양보 한다더니 첫 제안부터 거부했다’는 안 후보 쪽 주장을 거세게 되받았다.

협상은 결국 여론조사를 중심으로 진행되기에 이르렀다. 공론조사는 패널들에게 티브이 토론 등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한 뒤 실시해야 한다. 21일 티브이 토론 전에 패널을 확정해야 조사가 가능한데, 하루 전인 20일까지 대상 선정에 합의하지 못한 탓에 사실상 가능성이 사라졌다. 캠프 핵심 관계자는 오후 2시께 기자와 만나 “이제 남은 방안은 여론조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와 관련해선 문항을 어떻게 작성할지를 두고 접점 찾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문 후보 쪽은 처음 ‘적합도’ 조사를 제시했다가 ‘단일후보 지지도’로 조사 문항을 수정 제의했다. 하지만 안 후보 쪽은 ‘박근혜-문재인’, ‘박근혜-안철수’ 간 가상 양자대결 결과를 비교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문 후보 캠프는 저녁께 돌발 브리핑을 통해 조사 방식 수정을 제의했다는 점은 공개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수정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일부 핵심 관계자들은 “가상 양자대결은 역선택 우려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반면에 단순 지지도 방식은 조사 결과 왜곡이 가장 적은 방식이고, 외국에서도 보편적으로 쓰고 있다”며 지지도 방식으로의 수정을 확인했다. 이런 내용은 21일치 <한겨레>에 단독기사로 실렸다.

문쪽, 공론조사 제안 거부에
안쪽 “그럴 줄 알았어요
문 후보 통큰 맏형 이미지를
깼으니까 성공했어요”

공론조사 물건너간 뒤엔
여론조사 문항이 문제
문, 양자대결+적합도 제안하자
안, 양자대결+지지도 역제안
“저게 무슨 소리야, 정말”
문쪽선 볼멘소리가 나왔다

안 후보 쪽에 대한 문 후보 캠프 쪽의 신경전도 치열했다. 한 실무자는 “안철수펀드가 200억원도 못 채우고 사실상 모집 중단 상태다. 또 광주에서 열린 안 후보 팬클럽 모임 때 일부에서 버스 동원을 시사하는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며 안 후보 캠프의 이중성을 비판했다.

21일: 단일화의 분수령으로 예상돼온 티브이 토론의 날이 밝았다. 협상팀은 계속해서 설문 방식을 두고 팽팽하게 맞붙었다. 캠프에서도 이를 거들고 나섰다. 진성준 대변인은 아침 브리핑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또는 안철수 후보의 일대일 상황에서 지지후보를 묻는) 가상대결 조사는 불합리하다”고 안 후보 쪽 방식을 비판했다. 진 대변인은 “단일후보 경선은 문 후보와 안 후보 중 누가 더 나은 후보인가를 가리는 것이다. 또한 가상대결은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의 역선택이 가능해진다. 박근혜 지지자들이 더 약해 보이는 후보를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협상에 진전이 보이지 않자, 캠프에선 슬슬 후보 회동 가능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후보들이 만나지 않고서는 룰 협상의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캠프 핵심 관계자는 오후 2시께 기자와 만나 “우리가 아무리 각종 방안을 내놔도 안 후보 쪽 협상팀은 계속해서 ‘우리는 재량권이 없다’는 얘기만 한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후보끼리 만나야 풀 수 있다는 얘기 같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밤 11시15분에 열린 티브이 토론에서 안 후보에게 회동을 제의하면서 같은 얘기를 했다. 협상팀에서 동일한 보고가 올라간 것이다.

티브이 토론을 지켜보며 캠프 관계자들은 문 후보의 한마디, 표정 하나에 웃었다 찡그렸다 했다. 토론 중 안 후보가 “문 후보께서 말한 세대당 민간보험료 부담 20만원은 월 단위냐, 연 단위냐”고 묻자, 문 후보가 잠깐 멈칫했다가 ‘월 부담액’이라고 답했다. 순간 공보단 정명수 부대변인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그는 재빨리 태블릿피시를 검색하고 나서야 “월 단위가 맞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티브이 토론 뒤 문 후보 캠프는 고무된 표정이 역력했다. 문 후보가 적극적 태도로 토론을 주도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진성준 대변인은 ‘토론 총평’에서 “안철수 후보도 좋은 토론을 보여줬다. 그러나 문 후보에 비해서는 한 수 아래였다”고 안 후보를 평가했다. 하지만 공보단은 5분여 뒤 “‘한 수 아래였다’고 한 부분은 취소한다”고 밝혔다. 캠프 고위 관계자는 “서로 좋은 토론을 하고, 만나기로 한 마당에 상대를 자극해선 안 될 것 같아 취소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다음날 후보 회동을 통한 극적 합의의 기대를 품고 하루가 저물었다.

22일: 긴 하루였다.

두 후보는 오전 10시30분 비공개로 만났다. 장소를 공개하지 않아 기자들과 숨바꼭질이 벌어졌다. <한겨레>는 협상팀의 협상 장소가 그랜드힐튼호텔임을 알게 됐다. 공평동 캠프를 떠난 안 후보 차량이 광화문에서 서대문 쪽으로 이동했다는 정보도 포착됐다. 협상팀 인근에서 후보 회동이 이뤄질 수 있겠다고 보고, ‘펜 기자’와 사진기자를 호텔로 급파했다. 하지만 후보 회동은 이미 끝난 뒤였다.

후보 회동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문 후보 캠프 박병온 대변인은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 근처 식당에서 기자들과 점심을 함께 하다가 전화를 받더니, 즉석에서 짤막하게 회동 결과를 발표했다. “두 분 회동에서 성과가 없었다. 한 걸음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캠프 핵심 관계자들이 전하는 회동 결과는 한층 심각했다. 한 핵심 관계자는 오후 5시께 기자와 만나 “두 후보 회동에서 ‘후보를 양보하라’는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후보 회동에서 룰 협상이 아닌 사실상의 ‘후보 양보’ 담판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후보끼리 만나서 설문 문항을 놓고 이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만 할 수 있었겠나. ‘제가 돼야 합니다, 양보하십시오’ 하는 얘기도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문 후보가 안 후보와 만나고 굉장한 벽을 느낀 것 같다”고 말해, 사실상 안 후보가 문 후보에게 ‘양보’를 요구했음을 비쳤다. 다른 핵심 관계자는 좀더 구체적인 말을 했다. “안 후보가 ‘제가 단일후보가 돼야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있다’고 얘기를 꺼냈다. 그러나 문 후보는 이런저런 지표를 들어 ‘그렇지 않다. 제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두 후보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본선 경쟁력을 내세우며 사실상 상대방의 ‘양보’를 요청했다는 얘기다.

후보 회동 결렬 뒤에도 양 캠프의 핑퐁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문 후보 캠프의 우상호 공보단장은 저녁 8시께 브리핑을 통해 “안철수 후보가 제안한 양자 가상대결 50%와 문 후보가 제안한 후보 적합도 50%를 합산해 단일후보를 결정하자는 문화예술·종교인들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했다”며 안 후보 쪽에도 수용을 제의했다. 안 후보 쪽은 처음엔 “우 단장이 밝힌 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유민영 대변인)며 거부했다. 하지만 3시간여 뒤인 밤 11시10분께 박선숙 선대본부장이 “적합도가 아닌 지지도 50%와 양자 실제대결(가상대결) 50% 방식으로 하자”고 역제안을 해왔다. <와이티엔>(YTN)으로 생중계된 박 본부장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문 후보 캠프 관계자들 사이에선 “저게 무슨 소리야, 정말”, “흥분하지 말자고, 실무적인 제안이잖아” 같은 얘기가 오갔다. 캠프 협상팀이 다시 소집돼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비로소 긴 밤이 시작됐다.

23일: 문 후보는 오전 9시40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중앙선대위원장단 및 본부장단 회의를 주재했다. 문 후보는 별다른 의견 표명 없이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이 참석자는 “발언에 나선 사람들은 한 명도 예외없이 ‘안 후보 쪽의 태도가 지나치다. 그런 일방적인 제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얘기를 쏟아냈다”고 말했다.

회의 뒤 캠프는 안 후보 쪽에 협상팀 협의 재개를 제안했다. 문 후보는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협상팀의 논의 상황에 따라서 타결에 도움이 된다면 후보들 간 만날 수 있을 텐데 그 부분은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곧이어 안 후보가 직접 문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와 “(기존 협상팀과 별도로) 후보 대리인 간 회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문 후보는 이를 즉석에서 수용했다. 돌파구를 내기 위한 협상 채널 변경이다. 단일화 협상이 또 한번의 고비를 맞았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왼쪽)와 안철수 후보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두 사람은 단일화 협상 잠정중단 뒤 처음으로 다시 만났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왼쪽)와 안철수 후보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두 사람은 단일화 협상 잠정중단 뒤 처음으로 다시 만났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안철수 캠프의 5일
“문 후보에게 ‘깊은 실망’이란 표현 썼을 때 아찔하더라”

악수(惡手)는 악수를 부른다. 바둑 격언이다. 돌을 한번 잘못 두면 그 돌을 살리려고 무리수를 두게 되고 거기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럴 땐 버려야 이긴다.

안철수 후보는 ‘돌부처’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창호 기사를 닮았다. 바둑을 둘 때 이창호는 표정이 없다. 무겁다. 상대방에게 읽히지 않는다. 불리한 바둑도 곧잘 뒤집는다. 끝내기에 강하기 때문이다. 막판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집 한 집 벌어서 바둑을 다 두고 집 계산을 해보면 반 집으로 이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창호도 때론 악수를 둔다.

‘정치 초년생’이면서도 ‘정치 9단’ 못지않은 정무적 감각으로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정국을 흔들어온 안 후보도 최근 들어 악수를 간혹 둔다. 안 후보의 주종목인 ‘정치개혁 경기장’에서 ‘단일화 구장’으로 옮긴 뒤에는 더 잦아졌다. 서울 공평동 안 후보 캠프 기자실에서는 간혹 ‘평가회’가 열리는데, 그런 악수를 축구에 빗대 “똥볼을 찼다”고 표현한다.

7월19일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하고 9월19일 출마선언을 한 안 후보는 10월2일 캠프를 차렸고 10월19일 처음으로 단일화를 입에 올렸다. 첫 ‘똥볼’은 국회의원 정원 축소 발언이었다. 그는 10월23일 인하대 강연에서 “국회의원 숫자를 줄여야 한다. 줄이는 만큼 예산이 절약되는데 계산하기에 따라 여러 숫자가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을 100명 줄인다 치자. 1년에 500억~1000억원 정도가 절약된다. 4년이면 2000억에서 8000억원이다. 그러면 그 돈을 청년실업에 쓸 수 있고, 민생에 필요한 정책개발비로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여야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기성 정치권, 특히 야권후보 단일화의 상대방인 민주통합당에 강도 높은 정치개혁을 요구해온 터라 안 후보의 정치개혁 구상에 관심이 쏠린 때였다. 모든 문제의 근원에 정치가 있고 정치를 바꿔야 한다면서, 정치의 복원이나 강화가 아닌 약화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안 후보의 정치인식이 의심받기 시작한 첫 계기였다. 정치마저도 비용과 효율성에 최상의 가치를 두는 경영자이거나 아마추어 아니냐는. 국회의원 축소 주장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새정치 공동선언’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하고 지역구를 줄이는 과정에서 의원 정수를 조정하겠다”로 ‘봉합’됐다가, 11월21일 후보 단일화를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린 텔레비전 맞짱토론에서 다시 불거졌다.

안 후보의 두번째 ‘똥볼’은 11월15일 “깊은 실망”이다. 이틀 전인 13일 ‘단일화 협의 실무팀’이 논의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중단됐고, 다음날인 15일 문 후보는 부산에서 두차례나 공개적으로 “혹여라도 우리 캠프 사람들이 뭔가 저쪽에 부담을 주거나 자극하거나 불편하게 한 일들이 있었다면 제가 대신해서 사과를 드리고 싶다”, “서울에 올라가는 대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 필요한 조처를 다 취할 테니 조금 화를 푸시고 다시 단일화를 협의하는 장으로 돌아와 주십사 부탁 말씀 드린다”고 사과를 했다. 그런데 안 후보는 문 후보의 사과에 대해 묻자 “문 후보님 발언에 대한 것보다는 그냥 제 심경을 말씀드리면 깊은 실망을 느꼈다. 단일화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보다 결과에만 연연하고 이것을 경쟁으로 생각한다면 그 결과로 이기는 후보는 대선 승리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때부터 안철수 후보 캠프의 공격적인 논평도 문 후보를 직접 겨냥하기 시작했다. 문 후보가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해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안 후보 쪽의 한 전략가는 그 순간이 아찔했다고 회고한다. “만약 뭐뭐했다면이라는 식의 사과에 화가 날 수는 있다. 그런데 야권 지지자들은 문 후보가 통 크게 사과를 했다는 점만 기억한다. 거기에 대놓고 ‘깊은 실망’이라는 표현으로 들이받아버린 것이다. 만약 문 후보가 몸을 더 낮춰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서울로 올라와 안 후보를 당장 만나겠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안 후보가)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었다.”

다행히 그 전략가의 우려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문 후보도 같이 똥볼을 차버렸기 때문에” 상쇄가 됐다는 것이다. 문 후보는 16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저한테 보고되지 않은 것은 없다. 협상 깨지고 난 뒤 새롭게 제기된 문제는 저도 워낙 바쁘기 때문에 정확히 알지 못할 수 있고 그런 점은 안 후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안 후보 주변에서 상황을 과장해서 자극적으로 보고드리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두 후보의 갈등과 긴장이 높아진 순간이었다.

바둑 격언 중엔 ‘선수(先手)를 따라 두면 진다’는 말도 있다. 상대방이 먼저 공격적인 돌을 놓았을 때 그 수를 따라 방어만 하다 보면 상대방이 주도하는 흐름에 말려들기 때문이다.

티브이토론 다음날 후보 회동
룰에 대한 극적 합의 없이
서로 ‘양보’ 공방하다가 끝나
안쪽 “원래 단일화 과정은
아름다울 수가 없죠
된 다음에나 아름다운 거지”

후보등록 마감 나흘 앞두고
안 “기존 협상팀과 별도로
후보 대리인끼리 회동하시죠”
문 후보도 즉석에서 수용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국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안 후보의 “깊은 실망”에 이은 문 후보의 ‘버럭’ 이후 어느 정도 균형점을 찾은 상태에서는, 누가 상황을 주도하기 시작했을까. 문재인 후보다.

안 후보도 시도는 했다. 11월18일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민감한 지역인 광주를 찾는다. 출마선언 즈음을 포함하면 네번째다. 오전 11시 이해찬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총사퇴한 직후인 낮 12시 안 후보는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과 만나 “서울에 올라가는 대로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문 후보를 만나서 단일화를 재개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고자 한다”고 말한다. 오후 1시께 열린 광주지역 언론사 합동 인터뷰에서는 “서울로 올라가서 ‘빠른 시간 내에’ 만나서 실무자에게 맡기지 말고 두 사람이 함께 뜻을 모아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한다. ‘가까운 시일 내’가 ‘빠른 시간 내’로 바뀌는 사이, 12시30분께 문 후보도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 후보가 광주에서 단일화 경색 국면을 풀기 위해 준비한 “모든 것을 걸고 단일화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메시지는, 문 후보의 “단일화 방안을 안 후보 쪽 결정에 맡기겠다”에 묻혀버렸다. 그날 저녁 서울에서 두 후보가 만났다. 다시 단일화 협상이 시작됐다.

이때부터 선수를 빼앗긴 안 후보 쪽은 초조해진 것 같다. 문 후보의 ‘통 큰 맏형’ 전략은 여론조사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안 후보 쪽이 흐름을 바꾸지 않으면, 단일화 논의 이후 시작된 문 후보 상승세와 안 후보 하락세의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었다. 11월19일 단일화 협상에서 나온 반전 카드는 공론조사(지지자 집중조사로도 표현)였다. 혹자는 이를 세번째 ‘똥볼’로, 혹자는 묘수로 본다. 엇갈린다.

안 후보 협상팀이 제안한 내용은, 문 후보 쪽이 단일화 방식으로 여론조사 외에 국민 참여형의 ‘무엇’인가를 원하므로 민주당 대의원 1만4000명과 안 후보 후원자·펀드참여자 1만4000명을 표본집단으로 삼아 ‘맞짱토론’ 이후 각각 3000명씩의 의사를 묻자는 것이었다. 밤사이 한때, 표본집단이 ‘민주당 당원+국민’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문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당원·국민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앞섰지만 대의원 투표에서 절반에 못미치게 득표한 점과 안 후보 펀드 참여자가 안 후보 지지 성향이 강한 균질한 집단임을 고려하면, 누가 보더라도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라고 볼 수 없는 제안이었다. 안 후보는, 문 후보가 ‘맞짱토론’에서 이를 “공정하지 않은 룰”이라고 지적하자, “제 펀드 참가자 중에 문 후보님 지지자도 있다”며 비켜갔다.

그렇다면 안 후보 쪽은 이 공론조사 제안이 협상에서 타결될 것으로 봤을까. 그렇지 않다. 협상 전략이었다. 안 후보 캠프의 한 핵심 인사는 “문 후보의 ‘통 큰 맏형’은 허상 아닌가. 우선 그것을 깨뜨려야 했고 공론조사 제안과 문 후보 캠프의 거부로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안 후보 캠프의 유민영 대변인은 20일 문재인 후보 캠프를 향해 “점잖게 말씀드리는데 이제 맏형 얘기는 그만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안 두 후보는 22일 세번째로 마주 앉았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비밀스럽게 만나 ‘담판’에 가까운 솔직한 대화를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후보를 양보하라는 수준의 얘기까지. 두 후보 사이의 긴장감은 최고조로 높아졌다. 동시에 단일화 협상단 활동도 사실상 끝났다. 안 후보는 이후 모든 선거운동 일정을 접고 숙고에 들어갔다. 이날 저녁 문 후보의 우상호 공보단장은, 소설가 황석영씨 등 문화예술인들이 제안한 ‘단일후보 적합도+가상대결’을 받아 안 후보 쪽에 제안하나, 안 후보의 박선숙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은 밤 11시께 ‘지지도+가상대결’을 역제안하면서 “마지막 제안”이라고 했다. 더이상 협상은 없다는 뜻이었다.

23일 오전, 안 후보는 공평동 캠프에 나타나 핵심 관계자들과 단일화 관련 논의에 집중했다. 이날 낮 두 후보의 특사들이 만났다.

야권후보 단일화가 합의 이후 파행을 거듭하다 파국 직전까지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두 후보와 진영이 자신들로 단일화되도록 이길 수 있는 룰을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일화 룰은 어느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진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서로 제 아이라고 다투는 어미를 보고 내린 ‘솔로몬의 지혜’가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시점이 올지도 모른다.

문-안 후보 단일화 협상 이후 언론들은 단일화가 성공한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사례와 실패한 2007년 정동영-문국현 후보의 사례를 주로 들여다봤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 캠프는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유시민-김진표 후보 케이스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모델로 삼은 것 같다. 당시에도 후보가 가장 큰 자산이었고 후보를 뒷받침하는 조직은 상대에 비해 미약했다. 그럼에도 조직 열세를 뒤집어 단일후보직을 거머쥐었다. 당시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는, 안 후보 쪽이 제안한 공론조사와 유사한 전화투표 방식의 선거인단 투표에서 밀렸다. 그러나 지지도와 가상대결을 합친 여론조사 결과에서 뒤집어 1%포인트 차이로 김진표 민주당 후보를 꺾었다.

안 후보 쪽이, 안 후보에게 가장 유리한, 혹은 가장 불리하지 않은 환경에서 여론조사 방식으로 단일화를 이룬다는 전략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야권후보 단일화가 막판까지 몰려 다른 방법은 불가능한 상황까지 온 점은 분명하다. 단일화 협상팀이 파행을 거듭할 소재들은 널려 있었다. 안 후보 쪽은 11월6일 두 후보의 단일화 합의 이후에도 언론을 향해서는 “안 후보가 국민의 부름을 받고 나온 ‘국민후보’인 만큼 단일화를 원하는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그 길을 열어주지 않겠느냐”는 정치적 수사로 일관했다. ‘안철수 사람들’은, 안철수만이 박근혜를 이길 수 있다는 신념으로 그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것 같았다.

기자는 10월2일 공평동 캠프가 문을 연 날부터 50일가량 안철수 후보와 그 진영을 취재했다. 야권후보 단일화가 임박한 며칠 동안 양쪽 지지자들에게서 “문이냐, 안이냐”는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어떤 이들은 “<한겨레>가 그렇듯 진실과 사실의 편”이라고 답하면 실없는 사람 취급을 하기도 했다. 단일화와 관련해 안 후보 캠프의 한 핵심 인사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원래 단일화 과정은 아름다울 수 없다. 단일화 이후 아름다워지는 거지.” 제발, 그 이후에라도, 아름답기를 바랄 뿐이다. 기자로서, 시민으로서….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잠 좀 잡시다, 쫌!” 야권 단일화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며 협상 중단과 재개, 두 후보의 칩거와 전격 만남, 양 쪽의 제안과 역제안 등 모든 돌발변수가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취재를 전담하는 기자, 곧 ‘마크맨’의 하루는 길기만 합니다. 심야까지 이어지는 티브이토론과 긴급 기자회견까지 모두 챙겨야 하니까요. 야권 단일화 협상, 그 피말리는 5일(19~23일)을 따라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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