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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자유의 메달’ DJ “날 죽이려한 이들 용서” / 한완상

등록 2012-11-18 19:29수정 2012-11-19 08:44

1999년 6월 필자는 최근 북한을 다녀온 월드비전(옛 한국선명회) 오재식 회장을 만나 북의 식량사정 등을 전해들었다. 사진은 그 무렵 오 회장과 월드비전 친선홍보대사였던 김혜자씨 일행이 북한의 국수공장을 방문해 가동 현황을 살펴보는 모습이다.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중에서
1999년 6월 필자는 최근 북한을 다녀온 월드비전(옛 한국선명회) 오재식 회장을 만나 북의 식량사정 등을 전해들었다. 사진은 그 무렵 오 회장과 월드비전 친선홍보대사였던 김혜자씨 일행이 북한의 국수공장을 방문해 가동 현황을 살펴보는 모습이다.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중에서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34
1999년 5월31일. 온 나라가 ‘옷 로비 사건’으로 시끌시끌하다. 아침에 권노갑 의원과 김정남 전 수석을 함께 만났다. 마침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방문중인 김대중 대통령께서 귀국하게 되면 그에게 어떤 지혜를 줄 수 있을까를 논의했다. 나는 이 사건이 단순히 ‘고급 옷’ 문제가 아니라, 자칫 잘못 다루게 되면 국민의 정부의 도덕적 위기를 불러올 심각한 사태라고 했다. 마치 와이에스가 취임 1년3개월 만에 이회창 총리 ‘파면 사건’으로 민심 이반을 겪었듯이, 디제이 역시 취임 1년3개월 만에 ‘옷 로비 사건’을 맞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나는 그동안을 개혁을 위한 준비기간이었다면, 이 사건을 개혁을 본격 추진하라는 국민과 역사의 명령으로 보자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혁 몸통을 시스템으로 구축하고 시스템으로 작동시켜야 한다고 했다.

6월1일. 한국선명회 오재식 회장이 북한에 다녀왔다고 해서 오찬을 함께 하며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세계선명회 총재와 함께 방북한 그는 국수공장 경영과 수경농법 기술을 전수해줬다고 했다. 북한 아태평화위원회의 김용순 위원장과 리종혁 부위원장도 만났는데, 특히 리 부위원장은 만날 때마다 각별하게 내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도 전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가 내부 강경세력들에 의해 상처받지 않고 견디는 것을 보면 대단히 지혜로운 분임이 틀림없다. 지난 96년 북의 식량난 지원을 호소한 그에게 아무 보탬이 되어주지 못한 나로서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6월2일. 오늘은 내내 마음이 들떠 있었다. 아침에 서부전선의 25사단에서 사단장 이하 군 간부들에게 ‘21세기에 대비한 군 간부의 의식전환’ 제목으로 특강을 했다. 57년 당시 학보병으로 징집된 나는 가을과 겨울을 이 지역 모범사단 모범연대 모범중대에서 사병으로 근무했다. 42년 전 한 학보병의 일상적 고통과 고뇌, 특히 배고픔을 증언하자 모두들 선사시대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그만큼 지금 군대는 좋게 달라졌다는 뜻이리라.

6월20일. 지난 15일 서해 연평도 일대에서 남북 해군이 무력충돌을 빚어 양쪽 모두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남북의 강경세력은 때를 만난 듯 서로 극단적인 증오와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신북풍’ 얘기도 계속 나온다. 특히 이번 충돌에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해군은 심각한 수모를 당한 셈이다. ‘패배’를 당했다고 생각할수록 북한 군부는 더욱더 디제이 정부에 강경으로 나올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 당국은 <평양방송>을 통해 지난 16일 선군정치의 필승불패론을 들고나왔다. 이미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 지 10년 가까이 되는 이때 북한 당국의 선군정치 찬양은 빛바랜 그림처럼 처량하게 들려온다. 북의 강경세력은 코소보 분쟁이 끝나가는 요즘, 제국주의 세력이 북한을 공격해올 것이라며 과잉대응을 하고 있다. 이런 때 남쪽에서 의기양양해하며 북을 경멸하는 발언을 계속한다면, 남북관계는 처참하게 뒷걸음칠 수밖에 없다.

6월30일 저녁 경실련에서 햇볕정책의 적합성과 정당성을 강조하는 강연에서 나는 전쟁 위험이 높은 때일수록 합리적이고 용기있게 남북관계를 관리해나가는 지도력이 절실하다고 전제하고, 이제야말로 디제이가 냉전세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대통령답게 더 따뜻한 햇볕정책으로 남북관계를 평화롭게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날 경실련에서는 민간 중심의 통일운동체를 결성하려 한다며 내게 대표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생각해보겠다고 했으나, 속으로는 나보다 더 적합한 인물을 모시라고 말하고 싶었다.

7월2일 오후 3시쯤 <연합뉴스> 기자가 베이징에서 진행중인 남북 차관회담이 또 결렬될 것 같다고 전하며 내 의견을 물었다. 최근 남북관계가 연평해전으로 미묘하게 민감해지고 있는 터에 이번 회담이 또다시 상호주의적 잣대 때문에 결렬이 된다면, 남북관계는 그 어떤 파격적 계기가 생기지 않는 한 더 악화될 것 같다고 했다. 지난 정부처럼 국민의 정부도 냉탕과 온탕을 들락날락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7월4일. 김 대통령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자유의 메달을 받고 수상 연설에서 자신을 사형수로 몰아 죽이려 했던 사람들을 용서한다고 말해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깊은 종교적 신앙에서 나온 숭고한 결단처럼 들린다. 다만, 아직도 광주학살의 주범들이 공식적으로 사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용서 발언이 그 어떤 정치적 계산에서 나왔다면, 그와 함께 고생했던 동지들의 아픔을 역지사지 못한 탓이 아닐까, 염려스럽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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