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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에모리대 명예박사 받으며 떠오른 윤치호 / 한완상

등록 2012-11-15 20:04수정 2012-11-29 19:42

1999년 5월10일 필자(오른쪽)는 모교인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명예인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날 저녁 총장관저에서 연 축하연에서 윌리엄 체이스 총장(가운데)은 ‘윤치호 지음-애국가 가사’가 적힌 티셔츠를 필자 부부(왼쪽이 부인 김행씨)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윤치호는 첫 한인 미국유학생으로 1890년대 초 에모리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5월10일 필자(오른쪽)는 모교인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명예인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날 저녁 총장관저에서 연 축하연에서 윌리엄 체이스 총장(가운데)은 ‘윤치호 지음-애국가 가사’가 적힌 티셔츠를 필자 부부(왼쪽이 부인 김행씨)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윤치호는 첫 한인 미국유학생으로 1890년대 초 에모리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33
1999년 5월8일. 모교 에모리대학에서 주는 명예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아내와 함께 애틀랜타로 날아갔다. 62년 에모리대 대학원으로 유학왔을 때 이곳에는 한인교회가 없었다. 그래서 에모리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했던 조종남 목사, 구약을 전공했던 문희석 목사 등과 함께 매주 모여 조촐하게 예배를 보았다. 이 모임이 이제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한인교회로 발전해 있었다. 마침 일요일이었던 다음날 우리는 그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오후 2시에는 ‘조국통일과 동포사회- 평화와 기독교 정신’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햇볕정책과 기독교 평화정신의 본질적 유사점을 하나님의 창조 작업에서, 예수님의 취임 설교에서, 그리고 사도 바울의 로마 선교지침(로마서 12장)에서 확인하면서 동포교회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헌신해주길 촉구했다.

이날 저녁에는 에모리대에서 명예박사학위 대상자 5명을 환영하는 리셉션을 열어줬다. 이 자리에서 평생 만나기 힘든 소중한 분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추천으로 명예과학박사 학위를 받는 노먼 볼로그는 일찍이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농업의 ‘녹색혁명’을 일으켜 세계 식량위기를 극복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7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분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박사는 <워킹 네이션>에서 21세기 국가경영의 방향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제시해 유명해진 학자이자 실천가다. 그는 예일대 동기생인 빌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영국 로즈 장학생으로 유학했는데 그때 같은 유학생인 힐러리를 빌에게 소개해줬다며 자신이 클런턴 부부의 ‘중매쟁이’인 셈이라는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기도 했다.

미국 감리교 최초의 여성 흑인 감독으로 감리교 감독회의 집행위원인 레온틴 켈리는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는 72년 에모리 신학대학장이었던 캐넌 감독에게 목사 안수를 받은 뒤 92년까지 샌프란시스코 지역 감리교 감독으로 시무했다. 인도적 인문학 박사학위를 받는 찰스 예이츠는 에모리 출신으로 세계 골프사를 장식한 보비 존스를 기리는 스칼러십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다양한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높이 인정받았다.

5월10일 1만여명이 모인 졸업식에서 윌리엄 체이스 총장은 나를 구한말 최초의 에모리대 한인 유학생이자 선각자였던 좌옹 윤치호 선생의 초기 업적에 비견하는, 과분한 찬사와 함께 명예인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대학 신문인 <에모리 휠>은 명예박사학위 받는 사람들의 경력을 소개하면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와 민주화 투사, 명예박사에 오르다’는 제목으로 볼로그 박사와 나를 대표자로 꼽았다. 진실로 감당하기 힘든 찬사였다. 물론 나를 추천한 사람은 전 에모리대학 총장이자 주한 미 대사였던 레이니 박사였을 텐데 그는 내내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37년 전 에모리대학 유학 초기 나는 도서관 지하 2층의 구석진 자리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그때 우연히 좌옹의 <영문일기>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그가 갑신정변 실패 이후 방황 끝에 1888년부터 5년간 밴더빌트대와 에모리대 등에서 유학할 때 쓴 그 일기를 읽으며, 내 나이와 비슷한 26살 무렵이었던 그의 출중한 영어 실력에 압도되고 말았다. 비록 그가 훗날 친일로 변절하게 되지만, 마음속 깊이 쌓여가는 민족적 한과 울분을 영어로 표현해낸 것을 보고 범상치 않은 인물임에 틀림없다고 느꼈다.

그날 오후에는 에모리대 사회학과 교수들이 나를 위해 특별히 조촐한 축하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62년 당시 사회학과장이었던 도비 박사도 은퇴한 뒤 살고 있는 켄터키주에서 부러 나를 보러 왔다고 했다. 새삼 그 시절 겪었던 불안과 좌절, 기쁨과 보람의 순간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자리였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저녁에는 중세의 고성처럼 고색창연한 총장관저에서도 간단한 만찬이 있었다. 체이스 총장은 졸업식 때 나를 과찬해준 것에 감사 인사를 하자 곧장 옆방으로 가서 흰 티셔츠 한 장을 가져왔다. 그 셔츠에는 우리 애국가 가사가 적혀 있고, 윤치호 지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얻은 소중한 선물이라고 자랑했다. 새삼 70여년 전 좌옹이 애국가 가사를 지을 때 온통 민족의 자강과 자립 그리고 독립과 번영을 타는 목마름으로 갈망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에모리에서 조국과 부모와 백성을 그리워했을 때 이미 그 애국가의 가사가 그의 가슴속에서 살아 움직였을 것이다. 다만 그의 말년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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