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유신시절 장군들과 격세지감 만남 / 한완상

등록 2012-11-13 19:37

1999년 2월24일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첫돌을 맞아 김종필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이 배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필자는 그 무렵 아태재단 초청으로 참석한 ‘국민의 정부 1년 평가’ 세미나에서 디제이의 햇볕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향후 일관된 추진을 제안했다.
1999년 2월24일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첫돌을 맞아 김종필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이 배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필자는 그 무렵 아태재단 초청으로 참석한 ‘국민의 정부 1년 평가’ 세미나에서 디제이의 햇볕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향후 일관된 추진을 제안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31
1999년 2월2일. 점심때 한학자 기세춘 선생 등이 나를 찾아왔다. ‘동서화합 국민연합’이라는 새로운 비정부기구(NGO)가 출범하는데 총재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사양했다. 대신 요즘 권력 실세인 권노갑 전 의원을 추천했더니, 그가 ‘한보 비리 사건’에 연루된 사실과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적절하지 않다고 하면서 내가 나서야 한다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나는 사실 조직이나 재정 관리에 자신이 없는데다 정계에 나갈 뜻도 전혀 없기에 끝까지 사양했다. 순수한 기세춘 선생 같은 분을 실망시켜서 미안했다.

2월22일. 세계적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주필인 노먼 펄스타인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대담을 읽다가 한반도 냉전체제를 해체하는 데 매우 유익한 지혜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특히 펄스타인의 혜안은 부러울 정도였다. “중국과 그 지도자들이 꾸준히 변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마오를 악마쯤으로 보는’ 보수주의자 루스의 냉전적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보고 있다.” “중국 경제가 강력해질 것이 두려워 중국을 봉쇄해야 한다는 보수적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분명 ‘북한 불변론’을 신앙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남한 냉전세력의 인식을 바로잡는 데 의미있는 길잡이가 되는 글이다.

2월25일에는 오전 10시 아태재단에서 주최한 국민의 정부 첫돌 기념 세미나에 ‘대북정책’을 평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참석했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전적으로 찬성하는 만큼 북-미 일괄타결책에 대해서 몇 가지 긍정적 평가를 했다.

‘김 대통령께서 미국 정부에 북-미간 모든 현안들을 일괄해서 타결함으로써 북핵 문제도 풀고 북-미 관계도 향상시키면서 더 나아가 정전협정도 평화협정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을 열도록 권고한 점을 나는 높이 평가한다. 다만 일괄타결의 내용 가운데 한-미 간에 서로 관점이 맞지 않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테면 미국은 북의 금창리 의혹과 미사일 개발 같은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둔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그런 미국의 관심을 이해하면서도 보다 중장기적인 문제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북-미 수교,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 평화협정 문제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차이를 잘 조율할 필요가 있다. 또 북한이 보다 쉽게 지킬 수 있는(또는 실천할 수 있는) 사안과 시간이 걸려야 해결 가능한 문제에 대해서도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

이어 누군가가 일괄타결책보다 단계적 타결책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니냐, 리인모 노인 북송 결정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질문을 해왔다. 나는 단계적 타결만 고집하다 보면 총체적으로 한꺼번에 핵심 문제와 부차적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호기를 놓칠 수 있다고 답했다. 문제가 중요하고 복잡할수록 일괄타결이 힘들겠지만, 그만큼 큰 역사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또 나는 북한이 총체적으로 그리고 특히 경제위기로 인해 안보 위협까지 느끼는 상황일수록, 한반도의 통일과 안정을 위해서는 평화협력책 말고 다른 유효한 선택이 없다고 강조했다.

3월8일 참으로 만나기 쉽지 않았던 분들, 특히 유신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분들과 만찬을 했다. 이제는 사라진 ‘하나회’의 리더이자 경북고 1년 선배이기도 한 이종구 전 국방장관,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 기세춘 선생 등과 함께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핍박받았던 장 장군은 평생 군인으로만 살아 세상 보는 눈이 좁았다고 점잖게 시인했다. 와이에스 시절 내가 색깔론에 시달릴 때 구경꾼처럼 지켜만 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기야 가해자가 아닌, 한 예비역 장군으로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이날 자리는 내게 동서화합을 위한 범국민 운동에 앞장서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이미 지난 2월 그랬듯이 나는 또 한번 사양했다. 그런데 4월2일 이 장군, 기 선생 등과 다시 만났더니 또다시 대표 자리를 강권했다. 티케이(TK) 출신이면서도 티케이 세력으로부터 핍박받던 디제이 편에 있었으니, 디제이가 대통령이 된 지금 내가 적임자라는 것이다. 나는 끝내 고사했다. 대신 공동대표로 이만섭·이돈명·예춘호 선생을 추천하고, 양순직·이종구·장태완·권노갑 그리고 나를 고문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역제의했다. 아무튼 이 기구는 결국 무산된 듯하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대검 ‘구름다리 틴팅’ 사건…막무가내 징조 5년 전 그날 1.

윤석열 대검 ‘구름다리 틴팅’ 사건…막무가내 징조 5년 전 그날

전광훈·윤석열이 이끄는 극우 정당, 국힘 하기에 달렸다 2.

전광훈·윤석열이 이끄는 극우 정당, 국힘 하기에 달렸다

이재명, 외신 인터뷰서 “민주당 주된 가치는 실용주의” 3.

이재명, 외신 인터뷰서 “민주당 주된 가치는 실용주의”

김경수 “대선 승리만이 탄핵의 완성…크게 하나가 돼야 이긴다” 4.

김경수 “대선 승리만이 탄핵의 완성…크게 하나가 돼야 이긴다”

이재명 “국민연금, 2월 중 모수개혁부터 매듭짓자…초당적 협조” 5.

이재명 “국민연금, 2월 중 모수개혁부터 매듭짓자…초당적 협조”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