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월초 필자는 지난해 11월 ‘사상검증 논란’에 시달렸던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 만나 ‘조선일보식 마녀사냥’의 경험을 공감하며 위로했다. 사진은 94년 6월 두 사람이 ‘김영삼-김일성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겨레신문사에서 대담을 나누던 모습이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30
1999년 1월1일 아침 새해를 맞는 기도를 드렸다. ‘20세기의 마지막 해를 맞아, 자신과 가족, 민족과 인류 모두가 파란만장의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교훈을 얻게 하소서. … 이제는 남과 북이 함께 승리하는 상생의 길로 나아가게 하소서. 그 길에 부족하나마 당신의 심부름꾼으로 쓰임 받게 하소서.’
1월5일. 점심때 최장집 교수와 만났다. 그는 내가 지난해 11월 일본에 갔을 때 ‘조선일보의 마녀사냥식 표적’이 된 그의 신념을 알리고 변호해준 것에 대해 답례를 하고 싶은 듯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최 교수는 지금 국민의 정부의 개혁 의지에 대해 회의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는 퍽 외로웠다고 한다. 청와대에 자신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주는 보좌진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와이에스 정부 때 나와 김정남 수석의 처지가 오히려 부러울 정도라고 토로했다. 나는 이 말을 듣기가 거북했지만, 왜 디제이가 최 교수를 보호해주지 않는지 궁금하다. 국가정책자문위원장까지 맡고 있던 그가 여태껏 한번도 디제이와 독대를 못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니 어쩌면 그의 외로움은 내가 이미 겪었던 것보다 더 아플 수가 있겠다.
최근 들어 <조선일보>는 박지원 공보비서관을 통해 화해의 신호를 보내는 듯한데, 정작 최 교수는 실감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조선일보’와의 싸움은 개인적인 사건이 전혀 아니다. 제도와 세력과 역사 간의 싸움이기도 하다. 아마도 디제이는 냉전기득권 세력을 너무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걱정스럽다.
1월6일. 한-일 국방장관이 만나 두 나라의 군사협력을 위한 핫라인을 설치할 모양이다. 이는 물론 북한에 군사적으로 공동대응하려는 전략이다. 한마디로 부끄럽다. 민족사의 눈으로 볼 때 더욱 부끄럽다. 군사력으로 우리 주권을 찬탈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어제를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데 말이다. 북한에서 볼 때 이를 주한미군의 위협보다 더 심각한 공세로 보지는 않겠지만 치욕적인 반민족적 국제공모라고 비난할 것 같다. 정부가 남북 당국자 대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평양을 더욱 자극할 듯하다. 디제이는 왜 이 시점 한-일 안보협력을 과시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이런 시점을 조정할 능력도 없는 것인가, 아니면 이 또한 디제이피 때문인가?
1월14일. <대구매일신문>에 매주 ‘한완상 칼럼’을 쓰기로 했다. 이제는 티케이(TK) 문화도 변해야 한다. 배타적 지역정치가 정치적 삶의 양식처럼 이 땅에 뿌리내리게 된 데는 대구·경북 지역 출신 정치인들의 책임이 적다 할 수 없다. 나 자신도 티케이 출신이지만, 바로 그 세력에 의해 정치·사회적으로 ‘티케이오’(TKO)당한 쓰라림을 겪어야 했다. 나는 작심하고 자랑스러운 티케이 문화를 위해 글을 쓰기로 했다.
1월25일 남궁진 의원, 최장집 교수와 만나 모처럼 유익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김 대통령은 비장한 각오로 정계를 개편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개편작업이 성공하려면 잡스러운 여러 인물과 세력들을 규합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또 반개혁적 인물들이 요직을 차지할 것이며, 그만큼 개혁은 가로막히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개혁은 무조건 사람들 많이 모아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할 적절한 인물들을 발탁해 써야 한다. 개혁은 항상 주도세력을 중심으로 추진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지금 디제이는 제이피(JP)에 전두환 정권 세력까지 껴안고 정계를 개편하려는 것 같은데, 이는 스스로 개혁을 좌절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와이에스의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정말 혁명보다 어려운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려면 좋은 사람들을 모셔와야 된다. 원칙에 확고히 서되, 수단 선택에는 부드럽고 넓게 일을 처리하려는 실력과 신념을 갖춘 개혁인사들을 자연히 모이게 해야 한다.’
나는 지금 논의되는 내각제나 이원집정제도 개혁 주도세력이 추진해야만 개혁 정신을 살리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경남(PK)만 고립시켜 정계를 개편하려 든다면, 지난날 호남지역만 소외시킨 3당통합과 다를 바 없다. 명분 없는 짓이다. 디제이는 와이에스를 존중하지도 않으면서 왜 그의 잘못된 전철을 따르려 하는가!”
나는 디제이가 미래의 역사에서 들려올 박수 소리를 미리 들을 수 있는 경세가적 능력을 갖추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 오늘 여기서 쏟아지는 쓴소리까지도 들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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