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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베이징 마중온 전금철 ‘비료회담 결렬’ 항의

등록 2012-11-05 19:47수정 2012-11-05 21:22

1998년 4월14일 중국 베이징에서 김대중 정부 이후 첫 남북차관급회담 이틀째 전체회의에서 합의에 실패한 뒤 기자들과 만난 남쪽 대표인 정세현(왼쪽) 통일부 차관과 북쪽 대표인 전금철(오른쪽) 정무원 책임참사가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이후 8월21일 베이징에서 필자와 만난 전 책임참사는 이 비료회담의 결렬 후유증을 신랄하게 토로했다.
1998년 4월14일 중국 베이징에서 김대중 정부 이후 첫 남북차관급회담 이틀째 전체회의에서 합의에 실패한 뒤 기자들과 만난 남쪽 대표인 정세현(왼쪽) 통일부 차관과 북쪽 대표인 전금철(오른쪽) 정무원 책임참사가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이후 8월21일 베이징에서 필자와 만난 전 책임참사는 이 비료회담의 결렬 후유증을 신랄하게 토로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25
1998년 8월21일 오후 3시, 베이징의 자오룽호텔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전금철 북한 정무원 책임참사와 김경남 사회과학연구소 부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1층 회의실에서 저녁 7시30분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는 나와 김승균 사장 그리고 전 책임참사와 김경남, 이렇게 4명이 마주했다. 김 부소장은 주로 대화 내용을 적기만 했다.

4시간 넘게 대화를 한 뒤 일행은 북쪽의 제안으로 북한 직영식당인 평양관으로 옮겨 만찬을 함께 했다. 하지만 나는 대단히 불쾌했다. 식사 도중 언짢은 심경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참으로 힘들었다. 전 책임참사가 그 눈치를 채고 접대하는 젊은 북한 여성들에게 자꾸 노래를 시켰다. 마침내 밤 9시40분 호텔로 돌아온 나는 곧장 우리 대사관의 윤아무개 통일부 참사관에게 내일 평양 방문 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짧게 알려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먼저 전 참사의 인상부터 얘기해야겠다. 그의 얼굴은 면풍으로 입이 약간 삐뚤어져 있었다. 그는 전날 갑자기 상부에서 베이징으로 가서 나를 만나라는 명령이 내려왔는데, 평양과 베이징을 오가는 비행기편이 일주일에 한번밖에 없어, 기차를 타고 23시간 걸려 고생하며 왔노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내일 평양에 가서 충분히 대화할 수 있을 터인데 왜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여기까지 미리 나왔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하지만 그는 즉답을 피하면서 평양 가는 문제는 대화를 마친 뒤 다시 하겠다며 자신이 준비해온 얘기를 쉬지 않고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쪽에서 내게 의견을 듣고 싶어 하는 문제는 대체로 4가지였다. ‘첫째 남쪽 집권당의 진로와 권력구조 문제, 둘째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 셋째 김 대통령의 대외정책, 넷째 햇볕정책과 비료문제.’ 이 가운데 둘째와 넷째는 중첩되는데, 아마도 햇볕정책의 본질에 대한 북쪽의 회의와 불신 때문인 듯싶었다.

전 책임참사는 지난 와이에스 정부도 그렇고 남쪽 정부에서 북쪽 식량난의 원인을 제도와 체제의 문제로 보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한 뒤 디제이 정부의 대북정책을 본격적으로 비판했다.

먼저 그는 햇볕정책은 강풍정책과 수단만 다를 뿐 위장된 흡수통일정책이라고 단정했다. 따뜻한 햇볕을 비추면서 북한 체제를 궁극적으로 흡수해버리려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정경분리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정경연계 정책이고, 바로 지난 4월 비료회담의 실패에서 그 본색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김 대통령이 ‘8·15 제2건국 선언’에서 발표한 대북제안들, 즉 남북공동위 가동, 장차관회담 상설기구 운영, 특사 파견 등도 언뜻 보기에 괜찮은 것 같으나, 따지고 보면 근본 철학과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점차 분노에 찬 목소리로 지난 비료회담 실패의 정치적 의미와 자기 신변의 변화 등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디제이 정부에 대한 큰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했다. 서울 쪽에서 비료 20만t을 제공해줄 것이란 기대로 ‘비료가 그리워서’ 나왔는데 디제이 정부는 ‘다급하고 인도적인 비료문제’를 이용해 평양 쪽에 수모와 고통과 한을 심어주었다고 했다. 더구나 남쪽에서 주장한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 사안이기에 최대한 융통성을 발휘해 6차 남북적십자회담을 언제든지 열도록 하겠다고 했는데도 끝내 회담을 결렬시켰다고 꼬집었다. 그의 결렬 원인에 대한 해석이 흥미로웠다. 북의 절박성을 잘 아는 남쪽 정부가, 특히 통일부 장관이 보수여론을 업고 결렬을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에서는 와이에스 정부 때의 조문 파동과 같은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개인적으로도 그는 회담 결렬로 빈손 귀국한 뒤 “인민에게 볼 면목이 없어 대의원 출마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디제이가 자기의 대의원(우리의 국회의원) 자리를 떼어내버린 셈이라고 항의하듯 말했다. 비료회담이 남북관계의 전반적 개선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기회이자 첫 시험이었는데, 모두 놓쳐서 너무 아쉽고 너무 아프다고 했다. 앞으로도 디제이 정부가 북의 처지를 무시하고 남쪽의 보수여론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남북관계는 계속 어려울 것이라는 그의 마지막 얘기는 일종의 경고로 들렸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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