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8월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준비위원회’ 결성식이 열려 상임준비위원들(왼쪽부터 오자복·한광옥·이창복·이우정·강문규)이 인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해 ‘8·15 민족통일대축전’은 참가 단체 범위를 둘러싼 이견으로 남과 북에서 따로 열렸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22
1998년 7월1일 ‘8·15 민족통일대축전’ 개최 준비를 협의하기 위해 참으로 오랜만에 옛 재야 민주인사들이 함께 모였다. 성공회 성당 회의실에서 강만길·이우정·구중서·김중배·이창복 선생과 김상근 목사 그리고 조성우 민화협 집행위원장이 모였다. 7월4일 남쪽 준비위원회 결성식 때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축하 메시지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김상근 목사가 청와대에 타진해보기로 했다.
7월3일에는 이튿날 발족할 남쪽 준비위원회에 대한 폭넓은 시민의 참여와 지지 방안을 논의하고자 방송대 내 집무실에서 공동대표자 회의를 했다. 중도보수 이미지의 원로인 서영훈 선생과 이영덕 전 총리의 참여를 설득하기로 했다. 또 정부와 조율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내가 직접 임동원 외교안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를 부탁했다.
그날 오후 이 전 총리에게 제안을 했더니, 그는 정부와 협의해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30분쯤 뒤 다시 전화한 그는 강인덕 통일부 장관과 의논해보니 7월6일 열릴 4당과 8개 시민단체 대표의 간담회 이전에는 남쪽 준비위 공동위원장 자리를 수락하기가 곤란하다고 했다. 그 얼마 뒤 서 선생도 전화로, 강 장관의 뜻에 따라, 약속했던 내일 회의에 참석할 수 없겠다고 한다. 나는 퍽 언짢았다. 과연 통일부 장관이 청와대의 뜻, 특히 김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디제이피 체제가 주는 불안감을 또 한번 떨쳐버릴 수가 없구나.
통일부는 먼저 북쪽의 진행과정을 살펴가며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북한 당국은 민족화해협의회 산하에 8·15 민족대축전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두는 듯하다. 우리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를 먼저 구성해 그 아래 8·15 축전 준비위를 두려는 것 같다. 민화협은 정당과 시민단체 대표자들을 포함시키는 범국민적 조직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통일부는 준비위의 공동대표자들이 내일 모여 북쪽에 남북간 준비위 회담을 먼저 제의할까봐 신경을 쓰는 것 같다. 특히 중앙정보부의 핵심 간부 출신인 강 장관은 임동원 수석과 코드가 잘 맞지 않는 눈치다.
그날 오후 명사들의 초상화 전시회에 내 그림도 있다고 해서 들렀다가 설훈 의원을 만났더니 무척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 “북쪽은 남한의 보수우파 가운데 돈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려고 하지, 운동권이나 재야와의 대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사실 그럴 것이다. 나 역시 그의 관찰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미묘한 시점에 재야의 중심에 섰던 설 의원까지 그런 냉소적인 촌평을 계속한다면, 이번 8·15 축전을 통해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려 애쓰는 민주세력에게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7월4일 오후 1시30분 나는 부랴부랴 남쪽 준비위원회 결성식이 열리는 서울 프레스센터로 갔다. 행사장에는 참석자들로 가득 찼다. 나는 공동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인사 말씀을 했다.
‘세월이 빠르다. 5년 전 내가 통일원 장관으로서 햇볕론적 대북정책을 펼치려 했을 때 정부 안팎에서 심한 색깔론적 저항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클린턴 대통령을 위시해 한반도 주변국 지도자들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고 있다. 격세지감이 든다. … 햇볕정책은 한반도에서 냉전 악순환을 지속·강화해온 적대적 공생관계를 불식시키는 정책이다. 햇볕정책은 북한만이 아니라 남쪽도 변화시켜 민족공영을 도모하는 평화정책이다. 그간 음습한 냉전제도와 냉전문화에 의해 부당하게 고통받아온 국민들에게 평화의 배려를 해주는 따스한 정책이다. 그간 고생한 많은 평화 인사들이 이번 8·15 대축전을 계기로 복권되기를 희망한다.’
뒤이어 열린 공동위원장 회의에서 나는 우리가 배타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하기보다는 열린 자세로, 정당 대표자들과 시민운동가들을 잘 모시면서 연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7월8일 오후 통일축전준비위 공동상임대표 회의에서도 나는 모든 민주세력이 지역이나 세대차를 뛰어넘어 합의하고 공동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월10일 오후 서울와이엠시에이 자원방에서 열린 남쪽 준비위 공동상임대표 회의를 통해 대체로 의견이 수렴되었다. 정부와 맞서지 말고 정부의 햇볕정책을 성공적으로 펼쳐낸다는 관점에서 이번 8·15 축전을 추진하기로 했다.
7월15일 저녁 박상천 법무장관과 만나 ‘광복절 대특사’를 제안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첫 경축일에 8·15 대축전으로 남북이 화합하고, 대사면으로 양심수와 생활범죄형 국민들을 석방한다면 한층 뜻깊은 날이 되지 않겠는가.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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