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0월 한 언론에서 공개한 ‘김일성(오른쪽) 주석의 마지막 발언’을 통해 필자는 94년 6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카터(왼쪽)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반대하다 여의치 않자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전해줄 것을 부탁한 사실을 확인했다. 사진은 94년 6월17일 카터 전 대통령이 김 주석과 서해갑문을 둘러보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06
1996년 10월19일 새벽 1시에 안병무 박사(한신대 명예교수)가 소천하셨다. 지난 8월말 중국 연변에서 만났을 때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반가워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걸음걸이는 아기처럼 불안했으나, 꿈에도 그리던 간도 땅을 밟으면서 ‘엄마 젖가슴 같은 고향’의 따뜻한 내음에 취하여 마냥 기뻐했다.
그는 한국이 낳은 민중신학자로 제3세계에도 널리 알려졌다. 내게는 서울대 사회학과 대선배이기도 하다. 군사독재 치하에서 인권과 자유, 정의와 평화가 조직적으로 파괴되는 현실을 겪으며 그는 민중의 힘을 새롭게 깨달았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민중운동으로 보았다. 그의 신학과 신앙은 한국의 반민주적·반민중적·반민족적 현실을 종식시키는 운동으로 그를 인도했다. 그는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를 중심으로 민중신학의 비전을 세워 치열하게 투쟁했다. 또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동양사상과 민중신학을 이어보려고 애썼다.
서남동 선생, 유인호 선생, 그리고 며칠 전 이병설 선생도 한 많은 삶을 마쳤다. 이제 안 박사마저 우리 곁을 떠났다. 민중신학을 온몸으로 살았던 이분들의 뜻이 우리의 역사 현실 속에 실현될 수 있도록 나의 남은 시간 동안 여러 몫을 짊어지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정말 어깨가 ‘신나게’ 무겁구나.
새로 나온 <시사저널>(10월24일치)에는 ‘김일성 최후의 발언록-유훈 교시’라는 흥미로운 기사가 나왔다. 사망 하루 전인 94년 7월6일 김 주석이 남긴 말이다.
“김영삼이 나를 만나기 위해 이달 25일 평양에 오게 된다. 그는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내가 한라산에서 만나자고 하면 한라산에서 만나고, 백두산에서 만나자고 하면 백두산에서 만나겠다고 했다. 그 후 미국이 핵문제로 우리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자 그는 핵무기를 가진 상대와는 악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카터가 나를 만나, 김영삼이 김일성 주석을 만나보았으면 좋겠다는 의향을 표시했다고 하면서 그를 만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카터에게 나는 김영삼을 만나지 않겠다고 한 적이 없다. 그가 자기가 한 말을 취소하고 오겠다고 하면 만나겠다고 했다. 그래서 평양에서 북남 최고위급 회담을 하기로 했다. …”
이 글을 읽고 나는 그때 직감한 대로 93년 6월초 취임 100일 회견에서 김 대통령의 “핵 가진 자와 악수하지 않겠다”고 했던 강경발언이 김 주석을 격동케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이로써 김 대통령의 이중성을 확인했다. 94년 당시 문민정부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반대하고 막으려고 애썼는데, 막상 북한 방문길에 서울에 들른 카터에게 김 대통령은 김 주석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 아닌가. 훗날 카터의 회고록을 보면, 카터가 다시 서울로 돌아와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사실을 알려주자 김 대통령은 너무 놀라 입을 닫지 못할 정도로 반겼다고 했다. 이어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반공세력을 향해 그 당위성을 역설하던 김 대통령은 김 주석이 돌연 사망하자 태도를 표변해 이른바 ‘조문 파동’이 일어나게 했으니 이 또한 이중성이 아닐 수 없다.
흔히 남북관계 자체를 상황적 이중성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이중성이 아니라 심각한 모순성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려 하지 않고 상황의 이중성만 얄팍하게 부각시키는 것은 일종의 잔머리 굴리기 대북전술에 불과하다.
10월23일 신라호텔에서 허주(김윤환)와 저녁을 함께 했다. 그는 앞으로 김대중 총재가 내각제나 이원집정제 카드로 보수세력과 권력을 나누는 전략을 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서 디제이가 오래전부터 내각제를 선호해온 제이피(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이익연대’함으로써 전라도의 지역적 한계와 진보라는 이념적 한계를 한꺼번에 뛰어넘으려 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허주의 예리한 판단에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도 그대로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심히 우려했다. ‘양김’ 가운데 디제이마저 보수세력과 연대해 대권을 잡는다면 또다시 새로운 정치와 역사는 좌절되고 말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내년 대선에서 그가 이회창 중심의 신진보수동맹을 과연 이길 수 있을지도 자신할 수가 없다.
12월22일 상고심에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형에서 무기와 17년형으로 줄어든 선고가 나왔다. 재판부는 ‘항복한 장군은 죽이지 않는다’는 희한한 명분을 감형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번도 공개적으로 반인륜적 죄를 시인하고 그 많은 피해자들에게 사과도 항복도 한 적이 없다. 나도 이제 그만 군사독재자들에 대한 증오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래서 그들의 입에서 진솔한 고백이 나오기를 목이 타도록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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