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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4·11 총선’ 3김 지역주의 부활에 ‘답답’ / 한완상

등록 2012-09-26 20:10

1996년 4·11 총선 직후인 13일 김영삼 대통령(왼쪽 둘째)은 이회창 선거대책위원회 의장(맨 왼쪽)을 비롯한 신한국당의 수뇌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총선에서 집권 여당은 ‘장학로 실장 비리’의 악재를 ‘북풍’으로 맞선 덕분에 서울에서 승리했으나 국민회의(김대중)의 호남, 자민련(김종필)의 충청권 석권으로 ‘3김 지역주의’가 재현됐다.
1996년 4·11 총선 직후인 13일 김영삼 대통령(왼쪽 둘째)은 이회창 선거대책위원회 의장(맨 왼쪽)을 비롯한 신한국당의 수뇌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총선에서 집권 여당은 ‘장학로 실장 비리’의 악재를 ‘북풍’으로 맞선 덕분에 서울에서 승리했으나 국민회의(김대중)의 호남, 자민련(김종필)의 충청권 석권으로 ‘3김 지역주의’가 재현됐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99)
1996년 2월7일. 미국에 있는 형제자매·조카들까지 함께 모처럼 대가족이 일주일간 말레이시아 여행을 다녀와 쉬고 있는데 미국 시턴홀대학의 토니 남궁 교수가 오랜만에 찾아왔다. 그는 미국 국무부와 북한 당국 사이에 소통역을 맡고 있는 듯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숭실대 학장이었던 부친의 뜻을 이어 미국에서나마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애쓰는 지식인이다.

그는 지난 1월31일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김용순 위원장이 남북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 수 있는 연설을 했으며, 그 내용이 서울에 잘 전달되고 수용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또 김영삼 대통령의 강경 일변도 대북정책에 워싱턴에서도 실망을 넘어 역겨워하고 있는데 정작 대통령만 그 분위기를 잘 모르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그 사흘 뒤인 2월10일 미국 조지아대학의 박한식 교수(정치학)가 북한을 방문한 뒤 돌아가는 길에 서울에 들러 방송대 총장실로 찾아왔다. 그는 북한 당국자들은 레이니 대사 재임기간에 남북관계를 함께 개선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김용순 위원장이 레이니 대사와 나의 관계를 잘 알고 있다고도 했다. 박 교수는 4월말쯤 에모리대학이 있는 애틀랜타에서 북-미 기독학자회의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 회의에 레이니와 내가 꼭 참석해주면 좋겠다고 초청했다. 이 부탁을 하려고 일부러 찾아온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참석을 약속했다.

박 교수는 3월11일 또 한번 북한을 다녀오는 길이라며 나를 찾아왔다. 김용순 위원장과 함께 리종혁 부위원장을 만났는데 다음달 말 에모리대학 부설 카터센터에서 열릴 북-미 기독학자회의에 리 부위원장이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하기로 했단다. 그는 레이니 대사가 참석하므로 북에서도 격에 맞는 거물이 와야 한다고 설득했던 것이다.

그는 이어 북한의 식량부족 상황이 매우 심각해 5월을 넘기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전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미국에서는 식량지원을 해주려 하는데도 남한 정부가 가로막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역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북한의 김일성 유훈통치를 2000년 전 초대교회 신자들이 지녔던 예수 부활 신앙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김일성 주석이 여전히 주민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북한은 경제적 악조건 속에서도 ‘김일성 부활 신앙’으로 잘 뭉쳐 있다고 했다.

4월5일. 북한이 느닷없이 초강경 대남 협박과 함께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했다. ‘휴전협정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휴전협정 서명 당사자인 중국과 미국을 위협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끝내 서명하지 않아 협상 당사자 자격을 잃어버린 남한을 향한 분노이자 협박이다. 문민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맞선 강경대응인 것이다.

그런데 하필 ‘4·11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북한이 호전적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참으로 불행하고도 어리석은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북의 이번 돌발행동이 문민정부를 도와주려는 명백한 의도로 나왔다고는 보지 않는다. 의도 차원에서 보면, 평양은 지금의 문민정부를 지난 군사권위주의 정권보다 더 증오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결과적으로 북의 강경세력은 문민정부를 크게 도와주는 전술적 오류를 또다시 범한 것이다. 지난 87년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때처럼.

이른바 ‘북풍’은 당장 김 대통령의 오랜 가신인 ‘장학로 부정축재 사건’으로 곤경에 빠진 청와대와 여당에 뜻밖의 구원군이 되고 있는 듯하다. 앞서 지난 3월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 쪽은 ‘와이에스의 집사’로 알려진 장 제1부속실장이 무려 17개 기업으로부터 수십억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을 증인을 통해 폭로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마침내 4월11일. 총선 결과는 염려한 대로 걱정스럽게 나타났다. 북풍 덕분에, 지난 2월 민자당에서 ‘신한국당’으로 문패를 바꾼 집권여당은 서울에서 체면을 지켰다. 전체적으로 지역주의 판도가 강화됐다. 제이피(김종필)의 자민련이 충청도에서 약진하고, 와이에스는 부산·경남에서, 디제이의 국민회의는 호남을 휩쓸며 전국을 삼분했다. 특히 민주당을 깨뜨리고 나온 국민회의는 예상 밖으로 부진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지역주의 정치 극복과 세대교체 그리고 깨끗한 정치를 외쳤던 통합민주당이 참패한 사실이다. ‘3김씨’의 정치적 장악력 또는 그 마력에서 한국 정치가 어서 빨리 깨어나야 하는데…, 민주당은 또다시 ‘꼬마 민주당’이 되고 말았다.

한국 정치의 앞날이 지역주의와 냉전정치의 지속으로 한층 어두워질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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