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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옥중서신’ 발간 김정순 별세에 DJ는 무심 / 한완상

등록 2012-09-23 19:41

1980년대 초반 미국 망명 시절 워싱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을 펴냈던 김정순 선생이 96년 새해 초 서울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82년 12월 뉴욕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김 선생(오른쪽부터)과 김형(필자의 부인), 장혜원 박사(장기려 박사의 조카), 임순만 목사(장 박사의 남편)가 함께한 모습이다.
1980년대 초반 미국 망명 시절 워싱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을 펴냈던 김정순 선생이 96년 새해 초 서울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82년 12월 뉴욕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김 선생(오른쪽부터)과 김형(필자의 부인), 장혜원 박사(장기려 박사의 조카), 임순만 목사(장 박사의 남편)가 함께한 모습이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96
1996년 병자년, 올해 나는 회갑을 맞는다. 60년 전, 나는 태어나기도 전에 죽을 뻔했다. 임신 여섯 달쯤 되었을 때 어머니께서 큰 화상을 입어 목숨을 잃을 뻔했고, 그 때문에 나도 세상 구경을 못할 뻔했단다. 어머니는 그때 새로운 삶을 얻은 뒤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나는 어차피 덤의 삶을 살아온 셈이다. 그런 이유로 어머니는 내가 성직자가 되길 은근히 바라셨다.

꼭 12년 전, 갑자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이 새삼 가슴시리게 다가온다. 미국 뉴욕에서 망명중이던 84년 2월24일 나는 정치 해금조처를 받았다. 이 소식을 듣고 아버지는 먼 이국땅의 아들을 생각하고 붓글씨를 남겼다. 그해 8월15일 광복절에 내가 복권되기를 바라는 기원이었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그 예언은 적중했다. 광복절 특사로 내가 복권됐으니 말이다. 나는 귀국과 함께 4년4개월 만인 84년 9월 서울대에 두번째 복직할 수 있었다.

1월6일 새벽. 아까운 인물, 김정순 교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훤칠한 키에 낭만주의자였다. 서울대 사대를 나와 진보적인 가치로 제자를 가르쳤다. 그는 해방 직후 신의주에서 한경직 목사가 보여주었던 진보적 신앙과 기독교 사회당 추진에 매료됐는지 월남한 뒤 실향민들이 모여 만든 영락교회에 다녔다. 열성 신자이자 장로로 한때는 한 목사의 사랑과 신뢰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홍동근 목사와 더불어 영락교회의 보수 신학을 뛰어넘는 분이었다. 70년대 초반 서울대 초년 교수 시절 나는 기독교계 학교 교장들의 요청으로 신앙강좌를 자주 맡았다. 그때 김 교장을 처음 만나 뒤 서로 의기투합했다. 그런데 그는 70년대초 홀연히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이후 80년 ‘서울의 봄’ 때 재미동포 민주화운동 단체의 사무총장으로서 그는 서울을 방문했다. 서울대에 복직한 직후였는데 그가 불쑥 교수실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혹시 신군부에 의해 체포·감금될 수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얼마 뒤 ‘5·17 쿠데타’ 때 남산에 끌려가 가혹한 조사를 받을 적에 김 교장과 만남에 대해 잠시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 망명 첫해 에모리대 초빙교수를 거쳐 82년 여름 뉴욕으로 옮겨간 나는 그곳에서 김 교장을 다시 만났다. 참으로 반가웠다. 그는 이승만 목사, 임순만 교수, 장혜원 박사, 김홍준 선생 등과 함께 뉴욕 목요기도회의 핵심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었다. 서울대 사대 동문인 부인과 함께 델리가게를 꾸려가면서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그는 80년대 후반 돌연 귀국했다. 예수교 장로회 소속인 한 고교에 교장으로 취임한 그는 가족은 뉴욕에 두고 쓸쓸하게 지내다 뇌일혈로 쓰러져 홀연히 눈을 감았다.

병원 영안실에서 나는 새길교회를 대표해 그를 위한 추모예배를 인도했다. 1월8일 발인 예배는 영락교회가 주관해 교회 묘지에 묻혔다. 그런데 평소 친하게 지냈던 교장 서너분과 신도 20여명만 모인 발인 예배는 너무나 초라하고 쓸쓸했다. 나는 가슴이 아팠다. 하기야 예수의 죽음과 장례식에 비하면 그래도 ‘화려했다’고 해야 할까.

다만, 나는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무심함에 말할 수 없이 섭섭했다. 82년 12월말 ‘신병치료를 위한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디제이가 미국 워싱턴에서 망명중일 때, 김 교장은 디제이의 ‘옥중서신’을 보고 감동했다. 디제이는 감옥에서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수많은 이야기를 가득 채웠다. 그는 그 글들을 일일이 돋보기로 확인하며 풀어 <옥중서간집>을 출판했다. 결국 그 때문에 그는 빚더미에 올라앉았지만 조금도 서운해하거나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그런 김 교장이 서울에 와서 홀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는데도 동교동 쪽에서는 아무도 문상조차 오지 않았다. 정치적 이익에 민감한 만큼 인간적 의리에는 둔감한 디제이의 모습을 보는 듯해 참으로 씁쓸했다.

김 교장을 떠나보내며 가슴에 와 닿는 성경 말씀이 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베드로 전서> 1장 25절)

인간은 아무리 장수한다 해도 풀꽃처럼 단명한 존재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으로 육화되어 오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다. 시간 속에서 영원을 만날 수 있고 그것을 뜨겁게 체험할 수 있는 기쁨, 그 기쁨으로 짧은 인생을 넉넉하게 살자고 나는 다짐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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