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8월2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은행 강당에서 박형규 목사(왼쪽 셋째), 홍성우 변호사, 장기표 전 의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정치개혁을 위한 시민연합 발기대회가 열렸다. 필자는 이 자리에서 축사를 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93
1995년 7월27일 재야 민주화운동 동지인 예춘호(전 의원)·장을병(성균관대 교수)·김승균(전 <사상계> 편집장)과 오찬을 함께 했다. 우리는 지자체 선거 참패의 위기를 개혁을 가속화시키는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나는 개혁의 동력을 상실한 문민정부와 여권은 시민사회로부터 새로운 피와 새로운 활력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참신한 개혁정치세력이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고 했다. 88년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해 대표를 맡았던 예춘호 선생은 그 쓰라린 기억 탓인지 내 제안에 다소간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는 사실을 그도 시인했다. 지금은 와이에스(김영삼)·디제이(김대중)·케이티(이기택) 모두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래도 기대를 걸어볼 만한 정치세력은 ‘힘은 작지만 당을 구해내겠다’는 구당파 젊은 의원들 아니겠나. 이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시민사회와 연대할 수만 있다면 내일의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동의했다. 이 연합세력이 내년 총선에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만한 힘을 모을 수 있다면 정치개혁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내는 일을 해낼 것 같다.
그 다음날 이부영·제정구·원혜영·유인태·박계동 의원(민주당) 등을 오찬에 초청했다. 격의 없는 대화 끝에 우리는 몇 가지 주요 사항에 대해 의견일치를 보았다. 첫째, 민주당 이기택 총재를 설득해서 당권을 장악해야 한다. 다만 볼품없는 싸움은 해서는 안 된다.(앞서 7월13일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은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이기택 총재와 결별을 선언해 민주당은 분당 위기에 놓여 있었다.) 둘째, 당권을 잡게 되면 시민사회 특히 인권·평화·복지·민주화 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는 비정부기구(엔지오)들과 폭넓게 연대하여 내년 총선에 임해야 한다. 셋째로, 내년 총선에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되면 곧 대통령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 그래서 97년 참신한 새 세대가 충실한 국내 개혁과 한반도 평화를 동시에 이룩해내는 정치 마당을 마련해야 한다.
이날 저녁에는 이만섭 전 국회의장과 만찬을 함께 하며 시국의 심각성을 논의했다. 그는 탈당의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는 당의 쇄신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지난날 군부통치 때의 수구냉전 인사들의 서명까지 받고 있었다. 나는 이 의장에게 김 대통령이 새로운 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8월8일 김정남·이명현·차동세와 함께 오찬하면서 ‘위기’ 극복의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김 전 수석이 김 대통령에게 우리의 의견을 전달하기로 했다. ‘첫째, 청와대 참모진은 개혁 주체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 지금의 비서실장 체제로는 안 된다. 둘째, 비서실장은 재야 시절부터 보좌해온 김덕룡 의원이 맡아야 한다. 셋째, 내각은 정당·지역·세대를 가리지 않고 민주화의 내실을 뚝심 있게 밀고 가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개혁적 인물로 새로 짜야 한다.’
며칠 뒤 만난 김 전 수석은 우리의 의견을 대통령께 전달했다며 다소 낙관적으로 얘기했으나 나는 회의적이었다. 김덕룡 비서실장의 발탁은 쉽지 않은 듯하다. 본인이 이제는 비서실장보다 훨씬 더 큰 자리를 맡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나는 91년 너무나 애석하게 병사한 김동영 전 정무장관 생각이 난다. 그는 김 대통령의 약점을 가장 잘 보완했던 지혜로운 참모요 동지였다.
며칠 지나 8월18일 김 전 수석과 다시 만났다. 그는 집권 후반기에 즈음한 대통령의 연설문에 좋은 아이디어를 달라고 했다. 나는 ‘개혁 몸통을 단단히 구축해 남은 임기를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문했지만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 대통령은 8월21일 ‘허주’ 김윤환을 민자당 대표로 지명했다. 허주는 그야말로 융통성 있는 정치인이지만, ‘좋은 것이 좋다’는 식의 무원칙한 융통성이 개혁과는 어긋날 것이기에 은근히 걱정됐다. 그의 당 대표 지명은 한마디로 김 대통령의 정치적 한계를 더욱 드러내는 듯하다.
8월2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은행 강당에서 정치개혁을 위한 시민연합 발기대회가 열렸다. 나는 서울대 사회학과 제자이기도 한 서상섭의 부탁으로 축사를 했다. 오늘의 발기대회가 생산적 발기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 모임은 이 시대, 우리 상황에서 적합하고 정당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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