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자당이 참패를 하자 김영삼 대통령은 필자 등을 불러 수습방안을 들었다.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왼쪽)과 김종필 자민련 총재(오른쪽)는 6월15일부터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서 각각 연고지인 호남과 충청에서 승리함으로써 ‘지역분할 구도’를 굳혔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92
1995년 6월27일 지자체 선거에서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의 후보들이 서울시장을 비롯해 주요 광역자치단체장으로 당선됐다. 국민의 선택이었다. 집권여당은 15개 광역단체장 중 겨우 5석만 건졌다. 서울의 25개 구청장 가운데 야당이 23개 구에서 승리했다. 야당의 압승이다. 자민련도 ‘충청도 핫바지론’에 힘입어 세를 과시했다. 문민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는 혹독했다. 국민들은 냉전적 대북정책을 지지하지 않았다. 문민정부의 개혁 후퇴와 대통령의 독선적 국가운영을 가혹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심판한 셈이다.
7월3일 청와대에서 긴급하게 연락이 왔다. 92년 대통령 선거 때 한국사회문제연구소란 이름으로 나와 함께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위해 애썼던 사람들을 부른 것이다. 이명현 교수, 차동세 박사와 함께 청와대로 갔다. 그날 오후 6시 만찬을 대통령과 함께 했다. 밤 10시까지 자유롭게 의견교환을 했다. 내가 주로 얘기했다. 지자체 선거 실패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찾을 수 있어야 위기를 이겨낼 수 있기에 먼저 개혁 실종의 문제부터 지적했다.
“무엇보다 개혁의 목표가 애매하고 일관성이 없다. 윗물 맑기 운동 같은 개혁은 중단 없이 항상 계속되어야 한다. 또 마땅히 시스템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즉흥적 결단만으로 이런 개혁은 지속되기 어렵다. 대통령의 ‘3즉 정치’는 체계 있는 개혁을 오히려 어렵게 한다. 공직자들이 개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대통령은 그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올곧게 끌고 가면 된다. 그런데 개혁 주체는 안 보이고 대통령만 보인다. 깜짝깜짝 놀랄 즉흥적 결단을 대통령이 내릴수록 보이는 것은 대통령뿐이다. 이때까지의 개혁들을 서로 논리적으로 연관시켜 개혁의 체계적인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지지부진한 개혁 때문에 국민들은 문민정부의 개혁이 실종되었다고 느끼는 것 같고 그 느낌이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 잘 드러난 것이다.”
김 대통령이 북한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미국과 지나치게 삐걱대면서 대북 강경노선을 고집하는 것이 몹시 염려스럽다고 했다. 국내 정치를 즉흥적으로, 즉각적으로, 즉물적으로 해내가는 것에 대해 국민 특히 비판적 지식인들은 크게 실망한 듯 보이고, 그들은 김대중 총재의 대북 포용책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나의 따가운 지적에 대통령은 허심탄회하게 듣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속으로 공감을 했을까? 그날 우리와 대화하는 중에도 <에스비에스>(SBS)의 뉴스를 확인한 김 대통령은 일부 보도 내용에 화를 내면서 사장을 못마땅해했다. 정말 걱정되었다. 2년4개월 대통령직을 수행하다 보니 이젠 자신감을 지나치게 많이 얻은 것 같다. 지난주 선거에 참패했음에도 김 대통령은 여전히 제왕적 자세로 즐기는 듯했다. 이에 나는 에둘러서 말했다. “선거 결과에 대해 대통령께서 겸허하게 수용한다는 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대통령의 부덕의 소치라고 국민에게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말도 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7월7일 저녁에는 만델라 대통령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지난해 5월 대통령 특사로서 그의 취임식에 참석해 전달한 우리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그가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만찬사에서 그는 남아프리카 민주화 과정에서 투옥되었던 그의 외무장관과 통상장관을 특별히 소개했다. 나는 특히 신념 있는 각료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아끼는 만델라의 마음이 부러웠다. 김 대통령은 한번도 외국에 가서 이처럼 각료들을 자랑한 적이 없었다. 하기야 지금 문민정부에서 민주화·인권·평화의 가치를 위해 투쟁한 동지들은 단 한 사람도 없는 듯하다. 지난날 반민주·반인권·반평화의 정권에서 일했거나 그 권력에 아첨했던 인사들이 적지 않게 김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그 며칠 뒤 11일 ‘소산’이 오찬을 함께 하자고 했다. ‘거산’(김 대통령의 호)의 둘째 아들 김현철을 세간에서 그렇게 불렀다. 그는 지금에야 겨우 위기의 심각성을 감지하는 듯했다. 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청문회에 자기가 제일 먼저 끌려나올 것임을 자학적으로 자인하는 듯했다. 생각보다 그는 영리하다. 그런데 선거에 참패한 집권당의 위기에 그 자신의 영향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지난 2년간 대통령이 지극히 사적인 영향력으로 아들이 전달해주는 정보를 즐기는 사이 민심이 등을 돌린 것이 아니겠나. 바로 이 점 소산은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까 그는 부친의 곁을 떠나야 한다. 아니 정치 영향권에서 완전히 떠나야 한다. 아직 나이가 있으니, 외국에 가서 대학원 수준의 깊은 연구에 몰입했으면 좋겠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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