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3월10일 필자는 서울 횃불선교회관에서 탤런트 차인표-신애라씨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 당시 인기 절정인 연예인 부부의 탄생인데다 신생 케이블방송사까지 몰려 결혼식장이 시장바닥처럼 어수선한 가운데 신랑 신부가 사랑의 서약서를 읽고 있다. 사진 신영표씨 제공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89)
1995년 3월10일 두 가지 뜻깊은 행사가 있었다. 오후 3시에는 인기 절정인 탤런트 차인표와 신애라의 결혼식의 주례를 맡아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신랑 인표는 생각이 깊은 젊은이다. 일찍이 이스라엘 키부츠에 들어가 사회주의적 공동체 생활도 해보았다. 철학 있는 연기자로서, 사회적 예언자의 구실도 담당할 만한 지식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신부 애라는 착한 젊은이다. 우리 부부와 그 부모가 막역한 사이여서 어릴 때부터 우리 아이들과 교회 안에서 서로 친구로 지냈다. 특히 애라의 어머니는 생각이 아주 깊은 분이다. 진보적 식견과 세련된 문화의식을 지녔다. 애라가 모친의 취향에서 배운 점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결혼식장인 횃불선교회관에는 1000여명의 하객이 들어차 열기가 가득했다. 카메라맨 50여명의 극성스런 취재 경쟁 탓에 신랑 신부가 밀려날 뻔했다. 축가까지 유명한 가수 윤복희가 자청해서 부른 탓에 결혼식이 시장 바닥처럼 어수선했지만 주례의 위엄으로도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신랑 신부가 직접 써서 읽은 ‘사랑 서약서’ 고백은 보기 좋았다.
그날 저녁에는 미국대사관저에서 에모리대학 동창회가 열렸다. 30여년 전 함께했던 소중한 벗들을 보니 반가웠는데 의외로 생소한 얼굴도 많았다. 김대중(디제이) 아태재단 이사장의 처남 이성호가 추억담을 하는 중에 디제이를 에모리 출신 명사로 소개하기도 했다.
3월22일 김 이사장이 지난해 7월 김일성 주석 조문 파동 때 문민정부의 대응이 현명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정부와 보수언론은 반격에 나섰다. 이홍구 총리는 자신이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기 때문인지 주무장관 대신 직접 반박했다. 아마도 김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할 것임을 눈치채고 미리 방어적으로 대응한 것 같다.
사실 김 이사장의 비판은 적절한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그러한 비판을 해야 한다. 다만 그의 발언을 그의 정치적 야망과 연관시켜 과잉해석하려는 사람이 많기에 그 진의가 때때로 왜곡되곤 한다. 하지만 정부의 반격에 신경 쓸 일이 아니다. 항상 긴 역사의 안목에서 오늘의 정치현안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지도자는 특히 그러하다.
3월30일에는 베이징대의 최연구 교수가 찾아왔다. 그는 93년 10월쯤에도 통일부 장관실로 찾아왔었다. 북-미 일괄타결로 핵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할 때였다. 그때 그는 김 대통령에게 전해주길 기대하며 세가지 주장을 했다. ‘첫째 북한은 핵개발을 하지 않는다. 둘째 북한 당국은 김 대통령의 정치적 체면을 고려하고 있다. 셋째 김 대통령은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미국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그런데 그는 지난해 나를 만나고 난 뒤 평양에 갔을 때 북한 당국으로부터 상당한 질책을 받았다고 했다. 93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갔을 때 김 대통령이 했던 발언과 미국의 대북 포용정책을 견제한 것 때문에 김 주석이 격노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가 보는 북한의 상황은 내 판단과 일치했다. “북은 여러 면에서 상대적으로 강해진 남한이 자신들을 위협하기보다는 체제 인정을 해주기 바란다. 흥미롭게도 북한은 약해질수록 자존심과 체면을 더욱더 중요하게 여겨 힘으로 옥죄거나 흡수통일 같은 공격적 대북정책에 더 민감하고 과격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북한의 이중적인 처지를 남쪽 특히 문민정부는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 북한은 냉전시대 활용했던 중-소 줄타기 외교 대신에 이제는 중-미 줄타기 외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은 북한이 혹시나 미국이 바라는 방향으로 개방할까봐, 특히 미국과 함께 대만하고도 관계개선을 할까봐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 따라서 북-미 관계 개선은 외교정책이요 생존전략이기 때문에 경수로 문제로 인해 제네바 합의를 결코 깨지 않을 것이다.”
최 교수의 얘기를 들은 뒤 나는 그에게 북한의 냉전적 강경 대남전략이 의도와는 반대 결과를 낳게 될 것이란 사실을 경고했다. 즉 북이 김 대통령과 문민정부를 비난하면 할수록, 남한의 냉전수구세력을 더욱 결집시키고, 반대로 북한의 냉전강경세력, 즉 군부도 자극해 결속시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남과 북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온건세력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로 이 진실을 최 교수가 북한 당국에 전달해주기를 나는 바랐다.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적대적 상호주의를 이 땅에서 반드시 극복해내야 한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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