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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북미 합의’ 불평하는 YS에 클린턴 분노 / 한완상

등록 2012-09-06 19:44수정 2012-09-06 19:48

1994년 10월11일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시엔엔> 국제담당 부사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앞서 10월8일 <뉴욕 타임스> 회견에서 북-미 제네바합의안을 두고 미국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한 김 대통령의 발언이 국내외에서 큰 파문을 빚자 청와대는 다른 매체들과 연속 회견을 열어 이를 무마하고자 했다.
1994년 10월11일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시엔엔> 국제담당 부사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앞서 10월8일 <뉴욕 타임스> 회견에서 북-미 제네바합의안을 두고 미국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한 김 대통령의 발언이 국내외에서 큰 파문을 빚자 청와대는 다른 매체들과 연속 회견을 열어 이를 무마하고자 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85)
1994년 10월7일 민자당의 신상우 의원(2012년 1월26일 작고), 김덕 안기부장과 모처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담소했다. 우리끼리는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문민정부 안에서는 대북 대응과 북-미 회담에 대해 여전히 강경 냉전식 흐름이 강하다.

그즈음 제네바에서 진행중인 북-미 회담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는 여전히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김 대통령은 특히 북핵에 대한 특별사찰을 5년간 연기하기로 합의하자 몹시 화를 냈다. 즉 북한의 경수로 건설 작업이 70% 정도 진척될 때까지는 북의 핵활동에 대한 특별사찰을 하지 않기로 미국이 합의를 해준 것이다. 북한은 경수로가 완공된 뒤에야 특별사찰을 허용하고 싶었겠지만, 미국의 반대를 고려해 70% 또는 75%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특별사찰을 허용할 수 없다고 버틴 것이다.

하기야 김 대통령의 분노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경수로 공사비와 장비 구입비의 대부분을 사실상 한국이 부담할 터인데 5년간이나 북의 과거 핵활동을 검증할 수 없다니 결코 유쾌할 수는 없겠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미국 쪽에 볼멘소리를 내고 있었다. 클린턴 행정부 역시 김 대통령의 불만을 불편하고 불쾌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10월8일 김 대통령의 <뉴욕 타임스> 회견은 클린턴 대통령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대북 대응을 “순진하고 설익은 짓”이라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동맹국의 대통령을 이렇게 순진할 정도로 설익은 방식으로 비난하는 김 대통령의 ‘철학적 성찰 없음’을 나는 안타까워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홍구 통일부총리는 간접적으로 북-미 회담의 미국 쪽 수석대표인 갈루치를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 그가 남북관계 전문가가 아니라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핵 비확산 전문가라는 사실을 새삼 부각시킴으로써 우리 정부의 정서를 이해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한 것이다. ‘미국통’인 그가 미국의 대북 전략이나 입장을 모를 리가 없지만, 김 대통령의 심기를 편하게 하고자 짐짓 그답지 않은 발언을 한 듯했다.

흥미롭게도 김 대통령의 ‘뉴욕 타임스’ 회견에 대해 수구냉전 언론에서 적극 지지를 하고 나섰다. 왜 흥미로운가? 누구보다 친미적, 때로는 숭미적 논조를 펴온 그들 언론에서 문민정부의 대북 강경론을 지지하고자 이례적으로 미국 정부를 비난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반도의 탈냉전을 희구하는 진보세력은 오히려 클린턴 정부의 대북 대응을 이해하려고 했다.

10월11일 점심 전에 나는 레이니 대사와 통화했다. 나는 그를 성서 말씀으로 위로했다. 그 역시 김 대통령의 ‘뉴욕 타임스’ 회견으로 심기가 매우 불편한 상태였다. 그는 내일 청와대에 들어가 김 대통령과 깊고 솔직한 얘기를 나누겠다며 그다음날 오후에 대사관저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런데 약속대로 13일 대사관저로 찾아가니 레이니의 심기는 훨씬 나빠 보였다. 12일 오후 청와대는 레이니 대사에게 후문으로 들어오라며, 그것도 대사 전용차에 성조기를 달지 말고 들어오라고 했던 모양이었다.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한국 대통령을 만나러 갔는데 국기를 내리고 오라 했으니 그는 대사로서 자긍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듯했다.

여하튼 그는 그날 1시간20분 동안 김 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미-북 회담이 결코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님을 설득하면서 한국 정부가 소외감이나 불안감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고 했다. 이에 김 대통령은 제네바합의에 따라 북핵에 대한 특별사찰을 연기한 것은 우리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며 자신도 합의에 동의할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불평을 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그날 김 대통령과 긴 대화를 마친 뒤 레이니는 한승주 외무장관을 만났다. 그 뒤 한 외무는 제네바 합의를 지지해야 한다고 김 대통령을 설득했고, 결국 마지못해 대통령은 마음을 바꿨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자신에게 전화해서 제네바합의를 지지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클린턴은 그 요청대로 김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체면을 살려주었다. 물론 김 대통령에 대한 서운함도 부드럽게 표시했다. 이어 김 대통령은 클린턴에게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한번 더 분명히 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 자신도 제네바합의에 대한 지지 의사를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제네바합의에 대해 한-미 공조는 가까스로 회복됐다. 두 대통령 사이의 불신도 수면 아래로 잠겼다. 그러나 잠시 숨어 있었을 뿐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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