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5월10일 필자(가운데)는 대통령 특사로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직후 데클레르크 부통령(왼쪽)의 요청으로 면담을 했다. 직전 백인정권의 대통령으로서 사상 첫 흑인정권의 탄생을 도운 그에게 필자는 존경의 찬사를 전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75)
1994년 5월10일 취임식이 끝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새 대통령 만델라는 저녁 8시부터 아시아에서 온 특사들을 접견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데클레르크 부통령으로부터 그에 앞서 오후 5시20분쯤 한국 특사를 만나고 싶다는 전갈이 왔다. 나는 약간 의아했다. 이렇게 바쁜 취임식 날 부통령이 무슨 연유로 특사를 찾는 것일까?
사실 나는 데클레르크에게 이미 놀라고 있었다. 그의 너무나 특이한 정치적 선택이 이번 여행 내내 내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이었던 인물이 혁명적으로 바뀐 새 정부에서 부통령을 맡는다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변종’이 아닌가. 그의 선택은 정치학적 상식을 뛰어넘는 결단이었다. 그는 장기수요 반체제 지도자인 만델라를 석방시키는 특단에 이어 사면복권 조처를 단행함으로써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게 했다. 이로써 그는 일약 세계적인 인물로, 폴리티션(정치꾼)이 아니라 존경받는 스테이트맨(정치 지도자)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그래서 이 이례적인 인물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지만, 와서 보니 명망 높은 하객들이 줄지어 있어 기대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그 행운이 내게 찾아온 것이다.
오후 5시15분, 최상덕 주남아공 대사와 함께 부통령 집무실에 도착했다. 대기실로 가니 일본 특사 일행도 와 있었다. 혹시 경제적인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일본과 먼저 만날 줄 알았는데, 우리에게 먼저 들어오라고 했다.
데클레르크는 활짝 웃으며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예상대로 경제협력 문제를 끄집어냈다. 나는 속으로 찔끔했다. 우리 정부의 공식 축의금은 물론이고, 경제협력에 대한 구체적 지침도 갖고 있지 않았기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오늘 아침 워싱턴으로부터 6억 달러의 축하지원금 약속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순간 화제를 바꿔야겠다고 판단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부통령 각하, 저는 현재 살아있는 정치 지도자들 중에서 고르바초프를 퍽 존경해왔습니다. 그런데 여기 오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각하께서 고르바초프 전 소련 서기장보다 두 가지 점에서 더 위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말에 그는 놀란 얼굴로 쳐다보며 되물었다. “고르바초프처럼 저도 노벨평화상을 받긴 했지요. 그분은 정말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분인데, 어떻게 해서 내가 그분보다 더 위대하다고 하십니까?”
나는 즉각 대답했다. “첫째,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무너뜨린 냉전체제는 반세기가 조금 넘었었지만, 부통령 각하께서 해체시킨 아파르트헤이트는 300년 이상 버텨온 체제 아닙니까? 그러니 각하께서 훨씬 위대한 역사적 위업을 이룩한 것이지요.”
“또 하나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존의 잘못된 체제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실권했지만, 각하께서는 감동적으로 다시 집권했기 때문입니다. 각하께서는 고르비보다 더 위대한 정치예술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한 번 더 기분 좋게 웃고 나서 자기 자랑과 함께 만델라가 이끌었던 아프리카민족회의를 탄압했던 일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나는 대통령 시절 고르바초프가 공산체제를 붕괴시키는 과정을 지켜봤어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나도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해체시키는 일에 지도력을 발휘해야겠다고 결단을 내렸지요.”
20분의 예정된 접견시간이 훨씬 넘은 뒤 나는 “경제협력 문제는 언제든지 여기 최 대사와 의논해 주세요”라고 마무리를 하고는 부통령실을 나왔다.
오후 7시30분께 만델라 대통령의 집무실로 갔더니 먼저 와 있던 일본 특사가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아까 데클레르크 부통령이 한국 정부에는 얼마나 내라고 요구합디까?” 나는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부통령께서 우리에게는 돈 내라는 말씀을 하지 않았는데요. 우리는 서로의 정치철학 얘기를 진지하게 나눴지요.” “괜히 둘러대지 마시고, 얼마나 달라고 요구하던가요?” “정말입니다. 그런 얘기한 적 없어요. 부통령 비서실에 물어보세요. 그런데 도대체 일본 정부에는 얼마를 요구하던가요?” “혹시, 한국 정부에도 2억달러 정도 내라고 합디까?” 끝내 내 말을 믿지 못하는 일본 특사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흐뭇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정에 없던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외교야말로 수준 높은 국제정치의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냉전 중인 한반도를 떠올리자 갑자기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뜨거운 남아공 햇볕 아래 내 가슴을 시리게 스치며 지나가는 듯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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