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1월23일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한-미 확대정상회담을 마친 뒤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한승주 외무장관(맨 오른쪽)과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맨 왼쪽) 등이 배석한 가운데 악수를 하고 있다. 이날 김 대통령은 사전에 합의한 ‘북핵 포괄적 접근법’에 대해 반대 주장을 관철시킴으로써 미국 쪽은 물론 외교 담당자들을 곤란하게 했다. 사진 대통령기록관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54
1993년 11월21일 김영삼 대통령 일행은 시애틀에서 이틀 동안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회의를 끝내고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여기서 클린턴 행정부를 당혹시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23일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대표단은 김 대통령이 묵고 있는 미국의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에 모였다. 김 대통령을 비롯해 한승주 외무장관, 정종욱 외교안보수석과 박관용 비서실장이 참석했다. 원래 이 회의에는 외무장관이 초청하지 않은 인물은 참석할 수 없었다. 그런데 유종하 유엔대사도 회의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가깝게 지내며 함께 대북강경론을 지지해온 박관용 실장이 그를 부른 것이었다. 치밀한 계산에 따른 행동이었다.
이 자리에서 한 외무는 미국 정부와 이미 합의한 포괄적 접근책을 설명했다. 그러자 유 대사가 반론을 제기했다. 포괄정책 안에 팀스피릿 훈련 중지가 들어 있는데, 이렇게 큰 당근은 남북 상호사찰 때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박 실장은 유 대사의 강경책을 지지했다. 김 대통령도 유 대사의 발언에 찬성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주도적으로 이끌려면 이런 강경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박 실장의 계획이 멋지게 성공한 순간이었다.
한-미 정상회담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먼저 양국 정상이 일대일로 만나는 단독회담이 있다. 두 나라 안보수석과 통역관은 당연히 참석한다. 원래는 주무장관들이 미리 합의한 포괄적 정책안을 단독회담에서 간단히 처리한 다음 각론 회의실에서 두 나라의 여러 현안을 두고 좀더 깊게 논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단독회담에서 돌발상황이 터진 것이다. 로버트 갈루치와 함께 북-미 회담 협상단이었던 조엘 위트와 대니얼 포너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진행된 단독회담은 김 대통령이 볼멘소리로 ‘미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한국에 통보한 일괄타결안을 비롯해 북한에 대한 포괄적 접근방식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됐다. 김 대통령은 ‘일괄타결’ 방식이든 ‘포괄적 거래’든 결국 같은 것으로, 언론에서는 북-미 관계 정상화 같은 북한에 대한 양보를 의미하는 것으로 쓰고 있다고 반복해서 지적했다. 불과 몇 시간 전 블레어하우스에서 유 대사 등이 내세운 강경한 접근법을 설명하면서 김 대통령은 북한이 설사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수용하고 남북대화를 시작한다 하더라도 팀스피릿 훈련 중단 여부는 여전히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남쪽에 증명한 이후에만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클린턴 대통령, 레이크 안보보좌관,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입을 딱 벌렸다. 일반적으로 우방국과의 정상회담은 사전에 철저하게 조율되고 준비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포괄적 접근방식을 옹호했지만 김 대통령은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아예 상대방의 말을 듣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조엘 위트, <북핵 위기의 전말>, 모음북스, 2005년)
결국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장관들끼리 이미 합의한 대북 포괄적 접근책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당시 정종욱 외교안보수석은 참담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고 레이크 보좌관은 증언했다. 이때 클린턴 대통령이 ‘포괄적’이라는 표현 대신에 다른 표현을 찾아보라고 일렀다. 여기서 나온 새로운 용어가 바로 ‘철저하고 광범위한 접근방식’이다. 다소 애매한 표현이었다. 미국은 이것을 단순한 표현의 문제로 보는 듯했지만, 김 대통령, 박 실장, 유 대사 쪽에서는 ‘철저한’ 접근을 당근이 아닌 채찍의 상징으로 보았다.
김 대통령과 주변 참모들은 잠시 승리감에 도취했을 것이다. 반면 실무 차원에서 그간 합의를 위해 노력했던 두 나라 외교 관련 인사들은 크게 당황했다. 한 외무장관은 특히 더 그랬을 것이다. 나 역시 앞으로 문민정부에서는 남북관계의 진전이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광범위한 접근’은 날아가고 ‘철저한 접근’만 남게 될 것 같았다. 앞으로 한-미 간에도 얼굴 붉힐 일이 자주 생길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정상회담에서 미 대통령의 뜻을 꺾었다고 자랑하는 것 같은 김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한없이 울적했다. 앞날에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겨레 인기기사>
■ 성인용품점 사장 “단골와도 모른척”
■ 탄탄한 중견기업 몰락 자초한 ‘1조 갑부 회장님’
■ 무용가 정씨 남편 “아내와 한 호텔 투숙한 김재철 사퇴하라”
■ 미소년들 사랑받은 천하의 추남 소크라테스
■ [화보] 2012 강릉경포해변 비치발리볼 대회
한완상 전 부총리
<한겨레 인기기사>
■ 성인용품점 사장 “단골와도 모른척”
■ 탄탄한 중견기업 몰락 자초한 ‘1조 갑부 회장님’
■ 무용가 정씨 남편 “아내와 한 호텔 투숙한 김재철 사퇴하라”
■ 미소년들 사랑받은 천하의 추남 소크라테스
■ [화보] 2012 강릉경포해변 비치발리볼 대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