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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감방동지’ 한화갑 의원의 질문에 “아멘” / 한완상

등록 2012-07-24 19:48

1993년 10월30일 열린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의원들이 대정부질문을 하고 있다. 이날 야당인 민주당의 한화갑 의원은 ‘햇별론에 입각한 북핵 일괄타결안 검토’를 제의하며 유일하게 필자를 지지해줬다.
1993년 10월30일 열린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의원들이 대정부질문을 하고 있다. 이날 야당인 민주당의 한화갑 의원은 ‘햇별론에 입각한 북핵 일괄타결안 검토’를 제의하며 유일하게 필자를 지지해줬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52
1993년 10월28, 29일에는 제165회 정기국회가 열렸다. 첫날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 의원들은 역시나 관훈클럽 패널들의 비판을 되풀이하는 듯 나의 대북유화책을 꾸짖고 강경 대응을 요구했다. 그나마 이튿날 야당의 한화갑 의원이 색다른 각도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해줘 숨이 트였다. 그는 나 자신 얘기하고 싶었지만 국무위원이기에 감히 하지 못하던 얘기도 꺼내줬다.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핵문제 우선 해결이라는 정부 방침을 뛰어넘어 햇볕론에 입각한 일괄타결 방안을 김일성 주석이 생존해 있을 때 제시하고 실현해야 한다’면서 내 의견을 물은 것이다.

속으로 나는 “아멘” 하며, “한 의원 당신 질문이 옳소”라고 화답했다.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일단은 원론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청와대 일부 강경론자들의 비위를 거스를 줄 알면서도 말미에 한마디 동의를 표시했다.

한 의원은 이어 문민정부의 통일 방안 가운데 김대중(디제이) 전 총재의 ‘공화국 연합제 통일 방안’을 수용하여 범국민적 통일 방안으로 채택할 용의가 없는지와, 정부 내에 흡수통일론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하면서 내 의견을 물었다. 앞 질문은 런던의 디제이가 주문한 것 같고, 둘째도 디제이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김 전 총재의 통일 방안과 새 정부의 통일 방안은 둘 다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추진 구도여서 본질적 차이가 없다. 디제이는 두 단계, 새 정부는 세 단계로 나뉘었을 뿐이다. 나는 국가연합 단계 또는 연방 단계에 들어가려면 남북 교류협력이 상당기간 가속화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첫 단계로 교류협력 단계를 공식적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두 안 모두 흡수통일을 배제한 것에 주목해야 했다.

“한 의원이 적절히 지적하신 것처럼 흡수통일이 남북한 사회에 가져올 엄청난 후유증을 독일 통일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현실적 여건을 감안하더라도 흡수통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거듭 말씀드립니다. 정부가 통일정책 추진 3대 기조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공존공영의 정신은 북한을 고립시키거나 봉쇄시키지 않고, 오히려 국제사회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도와주는 참여 정책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실 나는 이미 여러 차례 보수언론의 질의를 받고 현 정부는 흡수통일을 할 능력도, 할 필요도, 할 의지도 없다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하지만 이날 국회 답변에서는 에둘러 표현했다. 북한 당국으로 하여금 우리 정부의 흡수통일 반대정책이 바로 그들이 그토록 염려하고 비난하는 국제공조 압력을 흡수통일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오히려 공존공영 정신이 북한 옥죄기의 반대임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국회 본회의에서 질문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면 때때로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만 다그쳐 하고는 정작 국무위원들이 대답할 때는 자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질문하는 것으로 자기 할 일은 다했다는 식이다. 그래서 허공에 대고 홀로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허공이 아니라 역사를 보고 대답하는 것이요, 모든 것이 역사의 기록에 남기에 성실히 대답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한편 그날 한 의원과 질의응답을 주고받은 뒤 나는 13년 전 우리가 ‘감방 동기’였던 그때를 떠올리며 잠시 감회에 젖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엮였던 80년 9월 서대문 교도소 2층의 내 방 바로 앞방에 그도 갇혀 있었다. 김 전 총재에게 계엄사령부의 군사재판에서 사형이 구형되던 9월17일,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게 내게 물었다. “걱정하지 마시게. 선생님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고 살아서 미국으로 가게 될 것이니.” 내 말에 놀란 눈으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따지듯 묻는 그에게 내 나름대로 분석한 당시 정세와 상황을 설명해줬다. 인권 보호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가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탄압받는 한국 야당 지도자를 구하려 할 것이고, 전두환 군부 역시 디제이가 국내에 있으면 계속 야권과 민주화 진영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미국 망명’을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였다. 그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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