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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대북 강경책 역효과” 연설에 보수쪽 맹비난 / 한완상

등록 2012-07-23 20:01

1993년 10월26일 필자가 통일부총리 취임 8개월을 계기로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에서 주최한 관훈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북핵 등 남북관계를 놓고 보수언론과 집권 민자당 의원들까지 가세한 수구냉전세력의 집중공세를 받던 시점이었다.
1993년 10월26일 필자가 통일부총리 취임 8개월을 계기로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에서 주최한 관훈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북핵 등 남북관계를 놓고 보수언론과 집권 민자당 의원들까지 가세한 수구냉전세력의 집중공세를 받던 시점이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51)
1993년 10월18일 민족통일연구원 주최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나는 주무장관으로서 기조연설을 했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려면 북한 지도부로부터 긍정적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을 강경하게 옥죄는 전술은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역효과가 난다고 판단한다. 초기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던 미국이 최근에는 좀더 융통성 있게 일괄타결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요지였다.

그런데 이 연설에 대한 ‘냉전 전사’들의 반응은 실로 뜨겁고도 호전적이었다. 수구 정치인들은 여당인데도 국정감사와 본회의 때 비판의 날을 세웠다. 비판을 넘어 비난에 가까웠다.

바로 다음날 ‘스스로를 묶는 발언’이라며 나를 직접 겨냥한 <조선일보> 사설을 보면서 국회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많은 정치인이 공격할 거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10월20일 국정감사에서 이세기 의원이 “북한을 고립시킬 필요가 없으며, 또 고립시켜서도 안 된다”고 했던 내 발언을 국제공조에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는 시점에 ‘김 빼기’라고 몰아붙였다.

“정책 결정자는 무릇 생각은 뜨거운 가슴으로, 대책은 차가운 머리로 해야 하는데, 부총리는 대책도 뜨거운 머리로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속으로 실소를 했다. 이 의원 말과는 반대로 ‘생각은 차가운 머리로 하되 대책은 뜨거운 가슴으로 실천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그래야 정당하고 효과적인 실천을 할 수 있는 법이다.

앞서 이날 오전 열린 집권 민자당의 당무회의에서도 민정계 박정수 의원이 나를 지목해 정책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고 일갈했다. 고향 선배이기도 한 박 의원은 당시 내가 혹시나 자기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을까 하여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국회의원이 될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에 선배의 기우가 오히려 걱정스러웠다.

여당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을 소리 높여 비난하는 배경에는 사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특히 여당 내 민정계 의원들은 김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아주 불편해했다. 하나회 해체,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실시가 대표적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금융실명제에 대해 사유재산제 부정이라며 반발하며 분노했다. 그래서 국정개혁을 부추긴 것으로 짐작되는 청와대 참모들, 김정남 교육문화사회수석이 비난의 표적이었다. 이인제 노동부 장관이 ‘무노동 부분임금’이라는 ‘무노동 무임금’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자 그것도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10월26일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토론회에서도 총체적 공격이 쏟아질 것을 예상한 나는 최대한 여유있게 대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침 통일부총리로 취임한 지 꼭 여덟달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새 역사, 새 정부 그리고 통일’ 제목의 기조연설에서 나는 “통일문제나 대북정책을 미시적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세계 역사의 흐름과 새로운 정부의 개혁 비전의 연장선상에서 조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토론자로 나온 패널 4명 가운데 세번째 질문자로 나선 조갑제 <조선일보> 월간조선부 부장은 흡수통일을 반대하는 나의 확고한 입장에 대해 반론을 펼쳤다. 그는 ‘비록 대다수 국민이 당장의 흡수통일은 반대하지만, 최종적으로 북한이 자본주의체제와 민주주의체제로 흡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다’며 정부 당국자가 흡수통일 반대론을 공언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새 정부의 단계적 통일 방안을 “그냥 말장난”이라며 국민들도 무시할 거라고 장담하기까지 했다.

“아주 좋은 질문을 하셨는데,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점진적 통일 방안을 지지하는 비율이 최소한 4분의 3은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동서독과 같이 짧은 시간에 어느 한쪽이 다른 쪽으로 흡수되는 것을 흡수통일이라고 불러야지, 장기적으로 가는 것에 꼭 흡수라는 공격적인 용어를 써야 하는가? 거기에 대해 저는 의문을 갖습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그러자 조 부장은 지금 정부에서 말하는 흡수통일은 단기적인 체제통합으로 알아서 해석하면 되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그것은 각자가 자유롭게 생각하시되, 정부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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