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0월9일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통일안보장관회의에서 필자는 북핵문제 일괄타결 방안 등을 직언했으나 다른 국무위원들의 무소신과 침묵으로 묵살되고 말았다. 맨 오른쪽이 정종욱 외교안보수석이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47)
1993년 10월에 접어들자 골치 아픈 일이 여럿 머리를 쳐들었다. 10월9일은 토요일이었는데도 아침 8시부터 김영삼 대통령 주재로 통일안보장관회의가 열렸다. 이미 핵강대국인 중국이 핵실험에 돌입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회의였다.
이는 분명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한층 자극할 수 있는 악재였다. 일본의 핵민족주의자들 역시 평화헌법 개정의 빌미로 삼아 중국에 맞설 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하려 할 게 뻔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핵강대국들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만약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중국의 핵실험에 속수무책으로 나오면 북한은 그 불공정성을 더욱 부각시킬 것이다. 핵강대국에는 비겁하리만치 온순하면서 북한 같은 약소국에는 지나칠 정도로 강력한 제재를 서슴지 않는다고 말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장 10월15일로 예정된 2차 남북 실무접촉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노심초사했다.
바로 전날인 8일 국정감사에서도 작은 돌출사건이 터진 상태였다. 김시중 과학기술처 장관이 관련 부처와 한마디 논의도 없이 ‘평화 목적이라면 우리도 핵 재처리 시설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이다. 자칫하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인상을 주는 얘기였다. 이 발언은 단숨에 톱뉴스가 됐다. 당장 북한의 반응이 염려되었다. 그동안 북한의 핵투명성을 강조해온 우리 정부가 난처해질 수 있었다. 새로운 위기를 몰고 올 수도 있었다.
9일 오전 취임 이래 세번째 안보장관회의를 소집한 김 대통령은 측근 강경론자들로부터 대북 강경책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는 권고를 미리 받은 듯 안보태세 강화를 강조했다. 중국이 핵실험을 하고, 런던에 체류중인 김대중 전 총재가 북-미 포괄적 타결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상황에서 김 대통령은 북한의 적화노선에 따른 군비증강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나는 남북이 서로 강경대응을 선택하면 또다른 비극적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주체사상이라는 신념체계 위에 최고지도자를 신적 존재로까지 숭배하는 북한은 일종의 종교국가로서, 강한 외압이 작용하면 내적 단합이 더 강해질 것이었다. 따라서 이런 비이성적 체제를 다룰 때는 좀더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김 대통령에게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였다.
이날 나는 작심하고 두 가지 얘기를 꺼냈다. 우선 어떤 사안이든 대통령이 발언을 할 때에는 극단적인 표현을 삼가야 한다고 진언했다. 비록 해결책에 관한 발언이라도 대통령은 항상 한발 뒤에 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해 강경발언을 해야 할 때는 국방부나 안기부 같은 관련 부처 책임자가, 반대로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온건발언을 해야 할 때는 대화와 협상 담당 부처에서 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래야 아랫사람들의 발언으로 위기가 닥쳤을 때 대통령이 좀더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통령이 자주 극단적인 발언을 하면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내친김에 나는 대북전략에 대해 지금은 북-미간 일괄타결로 핵문제를 풀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내 말에 긴장하는 듯했다.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이 역력했다. 내 발언이 런던에서 날아온 ‘디제이’(DJ)의 발언과 비슷하다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김 대통령은 디제이에 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체질적으로 싫어했다.
그러나 그날 내 발언은 일괄타결을 고려하는 클린턴 행정부의 기류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나는 근본적으로 북-미간 일괄타결이 한반도 핵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라고 판단했다. 북한은 이를 끈질기게 요구해왔고 최근에는 미국도 이 문제를 신중히 검토하는 듯했다. 김 대통령도 이런 정황을 한승주 외무장관을 통해 들었을 법한데 여전히 완강해 보였다.
내 말을 듣고 김 대통령은 다른 국무위원들과 비서실장에게 직접 의견을 물었다. 그런데 권영해 국방장관, 김덕 안기부장, 박관용 비서실장은 모두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 누구보다 워싱턴의 기류를 잘 아는 한 외무마저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마지막으로 외교안보수석인 정종욱 박사에게 의견을 묻자, 그 역시 종잡을 수 없이 오락가락하더니 끄트머리에 일괄타결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그의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김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강한 동의를 표하면서 회의를 끝내버렸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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