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2월17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그러나 1년 뒤 문민정부는 기대와 달리 6공화국 때보다 남북관계를 계속 후퇴시키고 있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46)
이쯤에서 북-미 회담을 통해 북한이 요구하는 조건을 정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1993년 7월 제네바에서 열린 2차 북-미 회담에서 미국에 다음 6개 항을 요구했다.
‘핵무기 불사용을 양자적 문서로 보장할 것, 핵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하지 않는다고 선언할 것, 팀스피릿 및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지할 것,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것, 북한에 대한 테러국가 지정을 철회할 것,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지지할 것’ 등이다.
특히 앞의 세가지는 ‘한반도 비핵지대화’ 요구와 연관되어 있었다. 한반도에 미국의 막강한 핵무기가 배치되는 한 북핵 문제는 풀릴 수 없다고 북은 믿었다. 그래서 미국 쪽에 남한에 배치한 핵무기로 북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보장하는 문서를 작성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팀스피릿 같은 대규모 군사훈련에는 미국의 핵항공모함도 동원되기 때문에 북한은 이를 핵 공격을 위한 훈련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의 ‘한반도 비핵지대화’ 요구는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아무 연관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이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지만 당시 우리에게는 그런 융통성과 여유가 없었다. 3차 북-미 회담이 열리면 북쪽은 다시 같은 주장을 반복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갈루치가 오면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우리의 의견을 물을 수도 있었다. 물론 냉전세력은 판에 박은 답을 내놓을 터였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사찰을 받고 남북대화를 통해 상호사찰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당시 나는 미국과 한국이 이제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연결해 포괄적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할 때라고 보았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92년 2월19일에 발효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제1항은 이렇다.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配備)·사용을 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미국의 핵탄두가 남한에 배치되는 문제와 군사훈련 때 미국의 핵항공모함 동원 문제도 융통성 있게 논의하면서 그 대가로 북한에 핵 투명성을 강력히 요구할 수도 있었다. 공동선언 4항은 이렇게 이어진다.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하여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하여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한다.” 이처럼 남북이 직접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그런데도 문민정부가 군사정부 때보다 더 경직되고 옹졸해졌으니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북한의 넷째 요구 조항인 평화협정 문제는 남북의 상호불신에 따라 북한의 ‘통미봉남’ 정책이 강화되는 한 우리 쪽에서 끼어들기 어려운 사안이었다. 북한은 평화협정에 관한 한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중국과 협상하려 할 터였다. 이승만 대통령의 단견으로 우리는 한국전쟁의 당사자이면서도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섯째 요구는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한 테러국가 지정을 철회하도록 미국에 요청한다면 북-미만이 아니라 남북 대화의 문도 활짝 열게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강경세력에게는 턱도 없는 얘기였다.
마지막 여섯째는 사실 북한이 미국에 요구할 사항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에게 북의 고려연방제와 남의 국가연합제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논의하자고 제의해야 옳았다. 북한이 강조하는 민족 당사자 원칙이나 ‘우리 민족끼리 먼저’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요구였다. 그럴 정도로 북한이 김영삼 정부에 실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씁쓸했다.
어쨌거나 북한의 대미 협상 의지는 확실했다. 9월 중순 주창준 주중 북한 대사가 김일성 주석의 뜻을 다시 한번 밝혔다. 김 주석은 어떻게 하든 북-미 회담을 성사시켜 핵문제를 일괄타결하고 중국처럼 개방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야 자신이 북한 주민들에게 여러차례 밝힌 ‘쌀밥과 고깃국’을 먹일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는 김 주석의 진정이자 소박한 염원 같았다.
이어 10월5일 북한 외교부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국제원자력기구 총회의 결의를 비난했다. 원자력기구가 남한 정부와 마찬가지로 북-미 대화를 방해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원자력기구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이번 담화에도 김 주석의 ‘흰쌀밥과 고깃국’ 의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런 그의 솔직한 의지를 우리가 계속 무시하기만 해야 하는 것일까?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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