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8월15일 오후 독립문에서 임진각까지 48㎞ 구간을 손에 손을 잡고 연결한 6만여명의 ‘남북 인간띠 잇기 대회’ 참가자들이 임진각 망배단에서 북녘땅을 향해 오색 띠를 치켜들고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고 있다. 냉전세력의 반대 속에서도 대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43
1993년 8월14일 밤 나는 잠을 설쳤다. ‘내일 인간띠 잇기 행사는 반드시 평화롭고 신나게 펼쳐져야 한다. 그래서 해방 이후 최초로 민관이 힘을 모아 통일운동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몰래 긴장이 됐다. 이튿날 아침 일찍 출근해 9시쯤에 이르자 도저히 집무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차질 없이 행사가 진행되는지 차를 타고 독립문에서 임진각 가까운 곳까지 천천히 둘러보았다. 수많은 인파가 마치 소풍 가듯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끊임없이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내내 통일가요제, 평화통일 글짓기·그림그리기, 통일 한마당과 남북 나눔 한마당, 평화통일 기원 예배, 민족화해 강연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렸다. 앞서 7월19일부터 8월14일까지 통일기원 걷기대회, 통일바자회, 대회 설명회, 거리 캠페인 등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통일원은 돌발사태를 예방하고 인간띠 잇기 대회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교통관리, 통신지원, 집회 허가, 행사 집결지 장소 사용 허락 등을 적극 지원했다. 문화관광부에서도 도왔다.
마침내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까지 독립문에서 임진각까지 48㎞를 6만여명이 손에 손을 잡고 인간띠를 이었다. 인간띠의 최북단에는 9살 ‘통일돌이’ 고명산양과 민주화운동의 대부인 박형규 목사, 그리고 서울와이더블유시에이(YWCA)를 대표해서 내 아내인 김형도 서 있었다. 국무위원 부인으로서 용기있게 앞장서준 아내가 참 고마웠다.
그날 저녁 7시가 지나서 곧바로 청와대로 전화했다. 그런데 행사가 무사히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보고를 듣고도 김영삼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맥이 빠졌다. 다행히 저녁 뉴스에서는 모두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내일 조간신문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내심 궁금하면서도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뜻밖에 <조선일보>까지 ‘통일 기원 인간띠 장관’이라며 사진을 소개했다. <동아일보>는 행사 전날부터 일정과 참가자 유의사항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언론의 호의적 협조 아래 시민사회와 정부가 통일의 열망을 뜨겁게 보여준 통일 한마당 잔치였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반응은 통일원 직원들이 정리한 남북 인간띠 잇기의 정책적 의의에 대한 평가였다. 기독교계 주도의 행사임에도 천도교 등 비기독교 단체들과 흥사단·경실련 같은 시민단체가 모두 힘을 합쳐 범시민적·범국민적 평화축제와 통일축제를 치러냄으로써 ‘국민합의’라는 문민정부의 통일기조를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민관 협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면 남북 당국간 신뢰회복에도 그만큼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력적 안보를 중시하는 부처와는 확연히 다른 민주적 평가는 어쩌면 통일원으로서 당연한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원칙 없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새삼 다짐했다. 상황적으로는 패배해도 역사적으로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역사가 눈앞의 상황보다 더 무섭다는 사실을 어찌 잊겠는가.
그 와중에도 8·15 대통령 경축사 연설문 준비를 위해 나는 청와대 이경재 대변인과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나의 심중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청와대 인사였다. 연설문 초안을 보내왔는데 읽어 보니 아주 산만했다. 그래서 의논 끝에 내가 연설문을 작성해서 보내기로 했다.
“타율적 분단의 비극적 현실 속에서 잃어버린 해방의 빛을 문민정부의 성공적 개혁으로 다시 되살려야 한다. 임시정부 요인의 유해봉환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문민정부의 정통성은 바로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나왔고 이것이 우리 헌법의 정신임을 강조한다. …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신념을 다짐해야 한다. 그래서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을 촉구해야 한다. … ‘핵무기 없는 평화는 핵무기 있는 평화보다 더 정당하고 더 강인하며, 핵무기 없는 통일은 핵무기 있는 통일보다 더 안전하고 자랑스럽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 세계사의 새로운 흐름이 한반도를 변두리인 극동에서 자연과 문명의 해가 힘차게 떠오르는 희망의 중심지로 옮겨가게 한다는 점을 밝힌다. … 끝으로 문민정부의 개혁은 제2의 새로운 독립운동이자 민족·민주 운동임을 선언한다.”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연설문 초안을 작성하면서 나는 김 대통령이 2월25일 취임사를 발표하던 때의 정신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야만 문민정부가 민주개혁을 계속 추진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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