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7월16일 미국 순방중에 필자가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나온 발언을 계기로 국내 보수언론의 공세는 한층 노골화됐다. 반기문(뒷줄 오른쪽 둘째) 당시 주미공사 모습도 보인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41)
1993년 7월 중순 2차 북-미 회담 결과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북쪽의 경수로 건설 지원 요구는 예상 밖의 과감한 제안이었다. 그것은 곧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다는 의지를 구체적으로 표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강석주 북한 대표는 경수로 활용 의지는 핵개발 의사가 없음을 뜻한다고 밝혔다. 경수로 제안으로 이제 북핵 문제는 남북한과 미국, 3자 논의가 불가피한 상황에 접어들었다.
7월16일 나는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미국 방문 마무리 간담회를 했다. 그런데 <서울신문>의 관련 보도를 보고 김영삼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소식이 서울에서 날아왔다. “우리 정부는 대북한 군사제재를 반대하며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대북 경제제재는 효과가 없을 것이다. 북핵 문제가 안 풀려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경제제재를 하는 상황으로 악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타노프 차관과 만난 자리에서 내가 한 말이라고 인용해놓은 기사였다. 사실 너무나 뻔한 원론적인 얘기 아닌가. 그런데 김 대통령이 격분했다고 하니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귀국하면 만나지도 않겠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청와대 참모들이 도대체 대통령을 어떻게 보좌하는지 또 한번 개탄스러웠다.
예상대로 7월19일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기자들이 몰려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사이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에서는 ‘일부 우파 강경론자들이 햇볕정책을 감상론적 통일론으로 폄하해 섭섭하다’는 내 얘기를 빌미로 색깔론적 비판을 쏟아놓고 있었다. 특히 조선일보의 김대중칼럼은 나를 나이브한 감상적 통일론자로 단정짓고 물러날 것을 촉구했다.
그럴 때면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니라 북한 체제와 그 지도자들을 악마로 확신하는 냉전원리주의자들의 유사종교단체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좌파’는 종교적 사탄과 같은 증오의 대상이다. 중도자유주의자도, 나처럼 민중의 고통에 민감해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도 예외없이 ‘친북좌파’로 낙인찍히니 말이다.
자매지 <월간조선>은 한술 더 떴다. 그해 8월호 ‘추적-한완상 통일원장관의 문제논문·문제발언’ 기사에서 나의 대북관이 충격적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92년 사회학회장 시절 제자들과 함께 펴낸 <한국전쟁과 한국사회변동> 서문에서 나는 “비판적 연구 태도는 북한 체제 연구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북이 서로 역지사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북한 연구에서 내재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과 상통하기도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런데 이를 수정주의에 가깝고 북한을 옹호하려는 논리라고 악의적으로 왜곡해놓은 것이다. 이를 두고 강준만 교수(전북대)가 정곡을 찔렀다. “자유주의자를 진보주의자로 둔갑시키는 구도 아래선 분단 고착을 원하는 극우주의자가 자유주의자로 행세할 수 있을 터이니 그것 참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한겨레> 93년 7월27일치) 이어 8월19일에는 사회학회 회원 41명이 연대성명으로 반박하고 규탄했다.
귀국 다음날 오후 총리공관에서 통일관계 고위전략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다음날 일부 언론에서 ‘2차 북-미 회담 결과를 두고 통일부는 매우 긍정적, 외무부는 다소 긍정적, 총리실은 다소 회의적으로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총리실의 의견에서 청와대 비서실의 입김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며칠 뒤에는 <세계일보>에 지난 5월25일 북한의 부총리급 특사교환 제안의 뒷이야기라며 소설 같은 거짓 기사가 나왔다. ‘김일성 주석이 한완상 부총리를 밀사로 북한에 파견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비공식 요청했고 우리 정부는 이를 일축했다’는 것이다. 취재원이라는 ‘익명의 고위 당국자’를 짐작해보니 한마디로 실소가 나왔다.
그러나 나는 7월30일 일본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2차 북-미 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혔다. 합의한 대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영변 사찰이 이뤄지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래 금지된 한국 경제인의 북한 방문 금지를 즉각 풀 것이며, 핵 의혹이 완전 해소되면 전면적인 경제협력 교류를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 같은 인도주의 사업은 핵문제와 관계없이 제3국을 통한 재회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사히는 이날 인터뷰 내용을 “경제인 방북 해금”이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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