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7월10일 방한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1차 북-미 고위급회담 타결로 불안해하던 한국의 냉전세력을 특유의 친화력으로 진정시켰다. 취미가 같은 김영삼 대통령과 7월11일 오전 청와대 녹지원에서 15분간 ‘민주주의를 위한 조깅’을 함께 하기도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34
1993년 6월14일 레이먼드 버가트 주한 미 대리대사가 집무실로 찾아와 사흘 전 뉴욕에서 발표된 북-미 공동성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미국은 북한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잔류시킨 것에 만족한다고 전한 그는 청와대 비서실이나 안기부와 달리 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내게 고마움을 표했다.
늘 ‘혈맹’을 부르짖던 친미 반공주의자들이 이번에는 미국에 퍽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마치 클린턴 정부가 북한을 너무 꼭 껴안아준다고 질투하는 모양새였다. 실제로 북한과 회담을 진행했던 로버트 갈루치 미 국무부 차관보를 비롯한 대표단은 한국의 태도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동족인 북한을 미국보다 우리가 더 미워하고 북-미 관계가 개선될 여지가 보이자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하는 모습은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민주개혁정부의 각료나 핵심 부서의 책임자들이 아직도 냉전체제 안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 역사 앞에 부끄러웠다. 일례로 국회 본회의에서 박계동 의원이 황인성 총리에게 ‘12·12 사태’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이미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밝혔으니 대통령과 같은 생각이라고 답하면 되었을 터였다. 그러나 군 장성 출신인 황 총리는 머뭇거리며 입을 떼지 못했다. 소신 없는 황 총리의 태도보다 그의 냉전적 정치의식을 확인하는 듯해 입맛이 썼다. 특히 대북정책에서 황 총리는 대결지향적이고 냉전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그런 그를 남북대화와 협상의 중심에 세우려는 정부 인사들이 나로서는 심히 걱정스러웠다.
7월10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다. 친화력과 설득력이 탁월한 클린턴은 이틀간 한국에 머물면서 그간 김 대통령의 설익은 강경발언으로 서먹해진 한-미 관계를 말끔히 정리했다. 한국의 보수여론을 무마하고자 그는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역설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사용한다면 스스로 정권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대통령과 냉전보수세력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한 강경발언이었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확고했지만, 우방국 대통령의 불안을 달래주는 일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클린턴은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해 주한미군들을 격려했고, 클린턴을 수행한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유엔 안보리의 북한 제재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이 남한을 따돌리고 북한에 지나치게 너그럽다는 참모들의 의견에 신경을 쓰던 김 대통령도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조깅과 식사를 하면서 미국에 대한 의구심을 풀었다. 이런 과정에서 김 대통령은 논리적 일관성보다 정서적 친밀성을 중시하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미국에 심어준 것 같다.
그 이전까지 1차 북-미 회담의 성과를 폄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통령 주변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게 여러 부분에서 감지되었다.
앞서 7월6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6기 출범 회의에서 김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3단계 통일정책과 통일정책의 3대 기조를 함께 언급했다. 기자들은 나와 김 대통령의 통일정책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예의주시하는 것 같았다. 특히 보수언론은 김 대통령이 <비비시>(BBC)와 <뉴욕 타임스>(NYT)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 나의 정책 노선과 다르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싶어했다. 나는 나대로 김 대통령의 회견 내용, 특히 뉴욕 북-미 회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문민정부의 통일정책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국 쪽에서도 불편해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부 언론에서 이날 연설 가운데 “내실 없는 통일을 감상적으로 바라서는 안 된다”는 대목만 부각시켜, 이것이 나의 통일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부정적 평가라고 해석했다. 이는 내가 2월26일 부총리로 취임할 때부터 줄곧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감상적 통일론을 비판하면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북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왜곡보도였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사실 그날 대통령의 연설문 초안도 내가 잡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청와대 뜰에서 재외 평통 자문위원들을 초청해 연회가 열렸을 때도 그랬다. 그날 이홍구 평통 수석부의장을 대동하고 조금 늦게 모습을 드러낸 김 대통령의 걸음걸이는 유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 뒤뚱거릴 정도였다.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의 그림자에 탄식과 걱정이 솟구쳤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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