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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북 핵조약 탈퇴 유보는 미와 대화의 끈 / 한완상

등록 2012-06-27 19:59

1993년 6월2일 북-미 고위급회담 1차 회담의 미국쪽 수석대표인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쪽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이 뉴욕의 유엔주재 미국대표부 사무실에서 회담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양쪽은 4차례 회담 끝에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유보’ 합의를 끌어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3년 6월2일 북-미 고위급회담 1차 회담의 미국쪽 수석대표인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쪽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이 뉴욕의 유엔주재 미국대표부 사무실에서 회담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양쪽은 4차례 회담 끝에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유보’ 합의를 끌어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33
 남북은 여전히 냉전 불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그때 북-미 관계는 어떠했나? 1993년 6월2일 뉴욕에서 열린 북-미 고위회담에서 북한 대표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은 무슨 메시지를 던졌을까. 미국은 거기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강 부부장의 기조발언은 정중하면서도 단호했다. 북-미 회담 자체가 핵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올바른 길에 들어섰다는 뜻이라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그리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야무지게 설명했다. 북한을 끊임없이 압박하는 미국의 강경 대북정책이 불러온 논리적 귀결이 바로 조약 탈퇴 결정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는 주목할 내용이 몇 가지 있다. ‘세계의 냉전시대가 끝났는데도 미국이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은 냉전적 적대정책을 강화해왔다. 92년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을 북한은 충실히 이행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협정에 서명했고 6회에 걸친 임시사찰을 성실히 받았으며 남북대화에서도 큰 진전을 이루었다.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발효시킨 것을 말한다. 이는 미국에 보인 최대의 선의였고 양보였는데도 미국은 팀스피릿 한미합동군사훈련을 강행해 북한 체제의 존립을 심각하게 위협했을 뿐 아니라 남북대화도 교착시켰다. 또 원자력기구의 특수사찰을 강요함으로써 북한의 무장해제를 꾀했다. 그래서 자위를 위해 부득이하게 조약 탈퇴를 결정했다.’

 강 부부장은 미국이 국제적 공조를 통해 북한을 압살하려 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유엔 안보리를 통해 제재를 꾀하는 미국이야말로 북한과 직접 회담을 통한 핵문제 해결을 거부해왔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우여곡절 끝에 북-미 고위급 회담이 이뤄졌으니 핵문제 해결을 위해 성실하고 진실한 입장에서 대화하자고 제의했다.

 그는 핵무기에 대한 김일성 주석의 평소 주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현재까지 핵문제와 관련한 우리의 일관된 입장은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핵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핵무기 제조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핵폭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는 앞서 조동진(덕천) 목사가 전해준 김 주석과의 대화록에서도 확인했던 얘기였다.

 강 부부장은 이처럼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 앞에 상대적으로 허약한 북한의 군사력을 솔직히 시인했다. 그리고 북한이 가지고 있는 재래식 무기로 자주방위를 유지하는 데 충분하다며 그것이 바로 북한의 긍지라고 했다. 그는 이어 미국 쪽에 탈냉전시대의 국제관계 변화에 부응하는 대북정책의 변화와 수정을 촉구하며 몇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북한은 미국이 정책적으로 북한을 압살하지 않겠다고 확약을 한다면,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기로 확실히 약속하겠다고 했다. 또 이런 정책적 약속은 북-미 쌍방이 수긍하는 형식을 따라 공동성명 문서로 기록되고 보존되어야 할 것이며, 이런 문서가 채택된다면 북쪽은 이미 제의한 약속을 보장하고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기꺼이 제시하겠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뉴욕 회담에서 미국은 북한 쪽으로부터 조약 탈퇴 유보라는 성과를 얻어냈고, 북한은 강대국 미국으로부터 압살정책의 수정 약속을 얻어냈다. 공동발표문의 전문에서는 쌍방이 핵문제 근본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앞으로 북-미 대화를 지속하기로 합의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철회’가 아니라 ‘유보’였다. 북한 체제의 내적 단합을 위해서 유보라는 전술을 쓴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6월19일 북한 <중앙방송>은 강 부부장의 ‘조미회담’ 관련 담화를 발표했다. 탈퇴 선언의 철회를 요구하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북한 주민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담화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전술의 일환으로 조약 탈퇴를 임시로 연기했다고 보도한 점에 주목했다. 탁월한 회담 전술이었다. 또 <중앙방송>은 이런 회담 결과를 미국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협상 대표자들은 탈퇴 유보 결정에 만족했다. 북쪽도 만족했다. 특히 북한은 상호존중과 불가침을 뼈대로 한 공동성명을 통해 적대관계 해소, 상대방의 제도와 자주권 존중, 내정불간섭 등의 원칙을 관철시킨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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