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2월29일 남북 국회회담 제7차 예비접촉을 위해 채문식 수석대표를 비롯한 남쪽 대표들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 통일각으로 향하고 있다. 85년 7월 첫 예비접촉 때부터 야당 대표로 참가해 남북문제 전문가로 꼽혀온 박관용 의원(맨 오른쪽)은 93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냉전세력’을 대변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30)
1993년 5월25일 북한의 부총리급 특사교환 역제의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한총련을 대표하는 젊은이들이 인사차 집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사실 나는 새 정부의 통일정책을 국민합의의 정신에 따라 설명하기 위해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날 생각이었다. 그 일환으로 지난 정부의 통일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한총련 대표자들이 나를 방문했고 나는 그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신문에서는 이날의 만남을 흥밋거리처럼 보도했다. ‘한 부총리, 한총련 대표 회동’, ‘당국·비당국의 통일마당’ 등으로 지면을 장식했다. 극우 냉전세력들이 이 만남을 두고두고 우려먹을 것을 알았으나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이미 문익환·박형규 목사 등 재야의 여러 지도자가 새 정부와 투쟁하지 않고 손을 잡고 함께 통일문제를 의논하기로 했듯이 한총련 젊은이들도 정부를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로 여기고 서로 도우며 나아가자고 뜻을 모았다. 나는 한총련 대표자 6명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이렇게 말했다. “오는 길이 멀던가요. 나도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막상 와서 보니 그렇게 멀지는 않던데….” “우리가 이런 데 오다니 변화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바꿔야지요.” 김아무개 연세대 총학생회장의 대답이었다. 우리는 함께 설렁탕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애초 귀순한 북한 학생, 박갑동·이철승씨 같은 우익 지도자들, ‘대한항공 폭파 테러범’ 김현희씨도 만나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북쪽의 제의 이후 내 입지가 좁아지면서 각계각층과 소통해야 하는 짐이 더 무거워졌다. 아니나 다를까, 보수언론들은 북한의 특사교환 제의를 일제히 부정적으로 보도했다. ‘재야 출신의 한완상 부총리를 시험대에 올려 우리쪽 반응을 떠보거나 국론분열을 꾀하려는 다목적 계산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5월27일치 <한겨레>에서는 “청와대가 드러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북쪽의 제안에 대해 일단 부정적”이라고 전하며 꽤 흥미로운 분석을 전했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제의에 대해 긍정적 논평을 냈는데도 청와대에서는 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북-미 접촉이 6월2일로 예정돼 있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의 효력이 6월12일 이후 발생한다는 시점의 미묘함 때문이다. 청와대는 북한이 미국에 호의를 보이는 한편, 유엔의 경제제재를 피하고자 특사교환을 제의한 것으로 본다. 또 북한의 제의 가운데 핵문제에 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음을 들어 핵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는 ‘빈 제의’로 평가한다. 앞서 20일 문민정부 최초의 남북대화 제의 역시 통일부총리가 북한의 핵문제 해결 의지를 낙관했기에 나온 것으로 폄하하고 있다.” 이 기사에서 인용한 ‘청와대’란 물론 박관용 비서실장이다. 기사는 “정종욱 외교안보수석은 박 실장에게 눌려 독자적인 목소리를 삼가고 있는 형편이다”라고도 썼다. 사실 야당 시절 박 실장은 국회 통일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는데, 연방제 수용과 같은 ‘진보적’ 정책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때는 꽤 합리적이고 열린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보았는데, 새 정부에 들어온 뒤에는 아주 냉전적인 대북 인식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정 수석의 자유주의적 성향을 관리·통제하면서 야당 때와 달리 대북 강경책을 내세우고 있었다. 한번은 내가 그의 관저로 찾아가 “박 실장이 특사로 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대답 대신 “내가 왜 이렇게 보수적이 되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실토한 적도 있었다. 이때 나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사의 정신에서 끊임없이 멀어지고 있는 데는 박 실장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박 실장은 <한겨레>기사에서 이런 말도 했다. “과거에는 정상회담에 매달려 남북관계가 파행적으로 운영됐다. 새 정부는 그렇게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재임 중 통일 기반을 닦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 성급하게 정상회담을 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잠시 자신을 통일원 장관으로 착각해 정상회담을 비롯한 통일정책까지 뜻대로 좌지우지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불과 석달 전 취임사에서 대통령이 민족 당사자 원칙 아래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했는데, 비서실장이 그것을 뒤집은 셈이었다. 그 방자한 태도로 미뤄 그가 대통령 곁에 있는 한 신한국의 대북정책은 결코 새로워질 수 없을 것이란 사실을 직감했다. 자칫 잘못하면 군사권위주의 시대 끝자락이었던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 정책보다 더 보수적인 방향으로 후퇴할 수도 있었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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