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5월15일 <한겨레> 창간 5돌 기념 인터뷰에서 필자는 처음으로 ‘햇볕정책’이란 용어로 문민정부의 남북관계 개혁의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햇볕정책은 98년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에서 비로소 조명을 받았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27)
나는 ‘김영삼 독트린’이 햇볕정책이라는 평화정책으로 압축된다면 국내외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93년 5월15일 <한겨레> 창간 5돌 특집 인터뷰(이원섭 정치부 편집위원)에서 ‘햇볕정책’이라는 화두를 처음으로 던졌다.
나는 ‘누가 먼저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의 옷을 벗기느냐’를 놓고 내기를 하는 해와 강풍의 우화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문민정부는 찬바람이 아무리 강해도 옷을 벗길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으며, 해의 부드럽고 따뜻한 볕으로만 두꺼운 옷을 벗길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햇볕정책의 힘으로 북한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북한이 냉전의 두꺼운 옷을 벗게 되면 우리도 냉전의 옷을 함께 벗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간 군사권위주의 정권들은 ‘냉전강한풍’(冷戰强寒風)으로만 북한을 변화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강경한 냉전대결 정책은 남북관계를 오히려 악화시켰고 두 체제에 뿌리 내린 반민주세력에게 힘을 몰아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남북 당국자들이 상대방에게 강경하게 대응하면 할수록 서로 강해지는 적대적 공생의 역설적 비극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강경세력이 기득권을 강화하면 그 체제는 필연적으로 폐쇄적인 반민주·반인권·반민족 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
대담에서는 핵문제 해결을 위해 경협과 이산가족 상봉 추진과 함께 북한의 대미·대일 수교 문제를 하나로 묶는 ‘큰 협상’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북-미 일괄타결’에 관한 문제라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이렇게 에둘러 대답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이 터지기 전만 해도 남북관계의 파격적 개선을 위한 일괄타결의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었지만 핵문제가 북한과 국제기구 사이의 문제가 된 지금은 민족 내부 문제로 끌어들여 일괄타결하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그러기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지렛대가 굉장히 약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성격상 어려움이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현단계에서는 인도적 차원에서 돌파구를 계속 마련하려 애쓰고 있으며, 문화사회 분야에서도 접촉 가능성을 넓히려고 합니다.”
나는 한국 정부가 우리식 일괄타결책을 내놓을 힘이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시인하고, 힘이 충분한 미국 정부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그 지렛대를 힘껏 사용하길 바란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김 대통령 주변의 보수인사들은 내 생각과는 사뭇 다른 것 같았다. 대통령이 그들의 소리에 점차 귀를 기울인다면, 남북관계도 한-미 관계도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인모씨 이외 비전향 장기수의 북한 방문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판문점에 이산가족 면회소가 설치되면 정부는 비전향 장기수들의 가족 상봉도 제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평양을 향해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문제를 즉시 협의하자는 뜻을 간접적으로 보낸 셈이었다.
그다음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들어 개혁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보수층의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은 당시 대통령의 개혁을 좌절시키려는 움직임이 번지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목소리가 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에게서 나온다면 경청해야겠지만, 개혁을 반대하는 기득권층에서 나온다면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개혁은 과거를 들추자는 것이 아니라 더욱 풍요한 미래를 창조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과거 비리라도 청산하려면 지금의 개혁 바람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과거 고질적인 호남 대 비호남식 지역감정이 개혁정치 두 달 만에 눈 녹듯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니, 김 대통령의 개혁에 대한 지지도는 호남 쪽에서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놀라운 개혁 의지의 효력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쉬운 것은 문민정부의 개혁 흐름과 속도가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만 강력했다는 사실이다. 김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엄청났다. 그러나 대북정책에서는 그 의지가 날로 약화되는 듯했다.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뒷걸음질치도록 유도하는 듯했다. 그들은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국내 민주화 역시 뒷걸음질치고 만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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