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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범기독교계, 평화 위해 남북나눔운동 결성 / 한완상

등록 2012-06-17 19:27

1993년 4월27일 범기독교계가 뜻을 모은 첫번째 북한돕기 비정부기구인 ‘남북나눔운동’이 발족했다. 필자는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창립예배에 참석해 평화통일의 밀알이 되어줄 것을 기원했다. 
 사진 남북나눔운동 제공
1993년 4월27일 범기독교계가 뜻을 모은 첫번째 북한돕기 비정부기구인 ‘남북나눔운동’이 발족했다. 필자는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창립예배에 참석해 평화통일의 밀알이 되어줄 것을 기원했다. 사진 남북나눔운동 제공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25)
1993년 4월24일에는 미국 버클리회의에 다녀온 박형규 목사 등의 활동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꽤 흥미로운 보고였다. 문익환 목사와 함께 민족통일과 한국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온 박 목사는 지난 15~1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열린 제2차 한반도 평화통일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는 북한 대표들도 참석했다. 이번 모임에서 북쪽 대표자들은 처음부터 핵문제는 논의하지 않으려고 했단다. 한데 박 목사 등 우리 대표들은 북한 핵개발과 관련한 국제적 의혹을 북한 당국이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새 정부가 이인모씨를 조건 없이 북송했으니 북쪽도 이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북쪽은 기다려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박 목사는 회의 마지막 연설에서 인상 깊은 메시지를 던졌다. ‘칼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예수님의 명언을 비유해 ‘핵무기를 쓰는 자는 핵무기로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비록 그것이 핵무기를 가지고 강해지려는 약소국의 노력이라 하더라도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라고 역설했다. 또 새 정부의 정치적 정통성과 개혁과 통일정책의 정당성을 북한 대표들 앞에서 당당히 밝혔다.

일찍이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군사권위주의 시대 정부와 재야는 항상 격돌했다. 그런데 지금은 재야와 정부 당국이 하나가 되고 있었다. 북쪽에서 보면 통일전선전략이 그만큼 효력을 상실하고 있는 셈이었다. 박 목사는 귀국한 뒤 23일 통일원 기자실에 찾아와 ‘지난날 정통성이 없었던 역대 정권들은 통일문제를 정권 유지에 악용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지금은 새 정부가 국민적 지지와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기에 통일정책 추진에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버클리 행사에 참석하는 과정에서도 정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과거 같으면 도움 자체를 거절했을 거라고 했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따라서 김영삼 대통령도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냉전세력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지난날 그를 뜨겁게 도왔던 재야 민주인사들에게서 더 많은 충고와 권고를 들을 수 있는 커다란 귀를 가져야 했다.

4월27일에는 흥미롭고도 의미 있는 비정부기구(NGO) 단체가 발족했다. 남북나눔운동이라는 단체로 범기독교 세력이 힘을 모아 시작한 평화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사무총장을 맡은 홍정길 목사가 나를 창립 예배에 초청하면서 축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기독교계의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이 합심하여 발족시킨 운동이니만큼 뜻깊은 단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운동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은 대체로 냉전근본주의자들이고 그들의 근본주의 신앙 또한 북한을 사탄으로 정죄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반공주의자들인 그들이 북한과의 나눔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그러나 남북화해와 평화를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열린 보수신앙이 진보신앙보다 더 활력 있게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닉슨의 보수주의가 막혔던 미-중 관계를 뚫어냈듯이 말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창립 예배에는 김준곤·홍순우·박봉양 목사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런 평화와 나눔 운동을 통해 그간 서로 주적으로 정죄하면서 ‘초전박살’ 내려고 했던 남북이 예수의 사랑으로 하나가 될 뿐 아니라, 나아가 갈기갈기 찢어진 한국 교회가 예수의 사랑과 평화와 공의의 빛 아래서 하나가 되기를 나는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축사에서도 ‘참 평화는 이웃 사랑의 수준을 넘어 원수 사랑의 수준에 이르러야 비로소 활짝 꽃피게 된다’는 진리가 이 운동을 통해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남북의 하나됨과 교회의 하나됨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러한 기독교 엔지오 운동이 여러 악조건에서 고투하는 새 정부의 통일 기관차에 의미 있는 격려가 되기를 열망했다. 문익환 목사나 박형규 목사가 정부의 통일정책을 확실하게 밀어주겠다고 했듯이,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나눔운동’이 앞으로 문민정부와 손잡고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랐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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