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조동진 목사는 1992년 5월에 이어 93년 4월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돌아와 필자에게 평양의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은 92년 방북 때 오찬에 초청받은 조 목사(왼쪽) 일행이 김 주석과 건배하는 장면으로, 조 목사의 홈페이지 ‘미스터 미션’에서 갈무리한 것이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8
1993년 5월 재미 조동진 목사가 서울에 와서 전해준 북한 방문기 중에서 핵문제에 대한 김일성 주석의 언급이 특히 흥미로웠다. 그해 4월10일 김 주석과 오찬 면담에서 조 목사는 ‘핵무기는 한반도 어디에도 없어야 한다. 특히 북한에 핵무기가 없어야 한다’는 문익환 목사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김 주석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는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도 없다. 그것 가져봐야 미국 핵탄두가 남쪽에 1000개 이상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평양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 핵무기 한두 개 있어봐야 소용없다. 이번 핵 압력은 미국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을 붕괴시킨 것처럼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것이다. 나는 고르바초프가 200만㎾ 핵발전소를 하나 만들라고 했을 때도 반대했다. 그러다 200만㎾ 핵발전소 대신 50㎾ 핵발전소 4개로 하자고 제의했다. 그런데 고르바초프가 몰락하자 기술자들도 모두 물러갔다. 지금 캐나다와 스웨덴이 핵발전소 건설에 협조하겠다고 하는데, 협력을 받을 바에야 평화적 핵 이용이니까 미국으로부터 받고 싶다. 세상에는 영원한 적국이란 없는 법이다.”
조 목사는 김 주석이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도 관심을 표시했다고 했다. “김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따뜻한 봄날 한라산 기슭에서도 좋고 더운 여름날 백두산 천지 못가에서도 좋다’고 했던 제의를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노태우 대통령도 자꾸 만나자고 했는데 문 목사와 임수경씨를 석방시키기 전에는 만날 수 없었다고도 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과는 만날 수 없다면서 김 대통령은 언행이 일치하고 문민정부를 세웠으니 고맙다고 했다. 이에 배석했던 사람들도 놀랐다. 김 주석은 ‘김 대통령에게 문안 전해주시오’라고 정중하게 말하기도 했다.”
오찬 뒤 김 주석은 조 목사에게 모란봉 밑에 있는 지하지휘본부를 방문하도록 특별히 허락했다. 1951~53년 한국전쟁 당시 김 주석이 그곳에서 인민군을 총지휘했다고 한다. 조 목사는 자기 나름대로 김 주석과의 대화를 이렇게 평했다.
“김 주석의 언어에는 자유로움이 있다. 그의 말 속에 전술적 계산과 모략이 있겠지만, 동시에 그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거기에 진실이 있기에 이 두 가지를 잘 가려 해석해야 한다. 그의 말을 모두 술책으로 보거나 모두 진실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김 주석은 김영삼 정부를 역대 군사정권과 다르게 보고 있다. 따라서 너무 냉전적 불신으로 김 주석의 말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북의 경제사정은 어렵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정신적 자존심은 더 강해진 것 같다. 지난 한달 동안 국제적 압력을 당당히 이겨냈다고 자부하는 듯했다. 허나 앞으로 다가올 국제압력에 대한 대응은 좀더 현실적으로 나올 듯하다. 미국과 남쪽이 강경하게 나오면 북한도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북한 당국은 우리 생각처럼 중국을 그렇게 신뢰하는 것 같지 않았다. 미국과 ‘직접접촉·직접대화·직접협상’을 원한다. 핵문제를 풀기 위해서 미국과 차관급 수준의 책임있는 대화를 바란다. 남북대화를 위해서도 곧 무슨 제의를 해올 듯하다. 북-미 대화와 남북 대화를 반드시 상호배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최근 미국은 이 점에서 전보다 신축성 있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 스테이플턴 로이 주중 미대사가 탕자쉬안 중국 외무차관과 면담했는데, 그때 북-미 대화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국도 유엔이 북에 제재를 가하지 않는 한 유엔의 방침에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나는 곧바로 청와대로 들어가 조 목사와 김 주석이 함께 찍은 사진과 오찬 식단을 보여주고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보고했다. 김 주석이 대통령의 취임사에 감동을 받았다는 얘기를 비롯해 그가 했다는 말을 전했다. 가만히 듣기만 하던 김 대통령의 첫 반응은 이랬다. “믿을 수 있는가?” 그는 진지하게 듣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김 주석이 말한 10대 강령이 김 대통령의 취임사에 대한 정중하고 사려깊은 반응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인모씨 북송 발표 다음날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선언을 하는 상황을 막지 못하는 등 김 주석에게 아쉬움이 컸던 때였지만, 우리는 그때 조 목사에게 토로한 김 주석의 메시지를 좀더 전략적으로, 또 좀더 신중하게 분석했어야 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