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조동진 목사는 92년에 이어 93년 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돌아와 필자에게 김 주석이 김영삼 정부에 보내는 직간접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은 조 목사의 주선으로 94년 1월 북한을 두번째 방문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김일성 주석과 만나는 장면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7)
재미 조동진 목사는 92년 5월에 이어 93년 3월31일부터 4월12일까지 다시 평양을 방문했다. 그는 4월10일 오전 10시20분부터 12시30분까지 2시간10분 동안 김일성 주석과 만나 오찬을 함께 했다. 방북을 마치고 미국을 거쳐 5월 말께 서울로 온 조 목사는 다시 나를 찾아왔다. 김 주석과 오찬을 나눈 사진과 식단을 보여준 그는 깨알같이 적은 노트를 보면서 대화 내용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인상적인 몇 부분만 살펴보도록 하자.
“김일성 주석은 먼저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경애심을 각별히 표현했다. 그날 대화가 모두 김 대통령에게 전달될 거라고 생각하고 말한 것 같았다. 전두환 대통령을 지칭할 때는 ‘빈대 머리’ 같은 점잖지 못한 표현을 쓰면서도 반드시 ‘김영삼 대통령께서’라는 경어를 썼다. 김 대통령의 훌륭한 취임사를 몇 번씩 읽었다며 기대가 크다고 말했는데, 그 순간 배석했던 북한 고위층 인사들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또 김 주석은 김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는 종전 정부와 다르다고 말했다. 방북 직전 서울에 왔을 때 만난 문익환 목사가 새 정부에 대해 아주 좋게 평가하고 평양에 가서 김 주석에게 알리라고 했다. ‘새 정부를 지지하기 때문에 예전과 달리 비합법적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며 합법적 활동을 펼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얘기를 전하자 김 주석은 ‘정말 문민정부 같다’며 좋게 말했다. 그리고 이인모씨를 가족의 품으로 보내준 것에 상응하는 조치를 강구하라고 그 자리에서 지시하기도 했다.”
조 목사는 자신이 평양에 머물던 기간인 4월7~9일 열린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에서 ‘10대 강령과 4개 조건’을 제시한 것은 김 대통령의 취임사에 대한 김 주석의 대답이라고 했다. 취임사에 나타난 민족 우위 또는 민족 당사자 원칙을 존중하여 공존·공영·공리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다만 김 주석은 이 강령과 함께 남쪽에 요구한 4개 항에 대해 종래의 호전적인 요구들을 반복한 것이니 김 대통령이 염려하지 마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선상 총리가 제의한 4개 조건은 ‘외세의존정책 포기, 미군 철수, 외국 군대와 합동군사훈련 중지, 미국 핵우산 탈피’ 등이었다.”
이 대목에서 김 주석은 아주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 ‘원래 아랫사람들은 강경하게 표현하는데 그것은 내 뜻이 아니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얘기를 듣고 ‘어쩌면 이것이 전술적 분업이거나 그가 이미 강경한 부하들을 관리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 목사는 김 주석이 대미관계에 대해서도 몇 가지 언급을 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북한에 올 수 있도록 해준 것에 고마워했다. 그 뒤 그레이엄 목사가 연례 조찬기도회 때 평양에 갔던 얘기를 좋게 한 것에 대해 특히 감사했다. 그리고 최근(4월 초순) 닉슨 전 대통령이 서울을 거쳐 중국으로 간 것을 언급하면서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에 오면 만나야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92년 3월31일부터 닷새간 평양을 처음 방문해 김 주석과 면담했다. 외국인 성직자로는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을 공식 방문한 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면 메시지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북쪽에 전달하고 교황에게 보내는 김 주석의 친서를 받았다고 밝혀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레이엄 목사는 일찍이 73년 5월 서울 여의도 5·16광장에서 열린 전도대회 때 세계 최대 규모인 연인원 500만명의 청중을 동원해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조 목사는 바로 그 ‘한국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의 기획총무와 진행위원장을 맡은 이래 그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침례교 목사로 복음주의자인 그레이엄은 아이젠하워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조언자이자 영적 지도자로 커다란 영향력을 지녀 그의 방북을 계기로 북-미 직접대화 등 관계개선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94년 1월 두번째 평양을 방문해 김 주석과 면담을 했다. 그러나 그해 7월 김 주석의 돌연한 사망과 그 자신의 와병 등으로 북-미 평화사절 행보도 중단됐다. 하지만 지금도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를 통해 대를 이어 북한 지원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겨레 인기기사>
■ ‘29만원’ 전두환, 손녀는 톱스타급 ‘초호화’ 결혼식
■ ‘나꼼수’ 김용민이 창간한 <조일보>, 무슨 내용?
■ [친절한 기자들] 기자가 말하는 ‘임수경 막말’ 뒷담화
■ 이해찬 “인터뷰 계속 이렇게 할거냐?” 전화 ‘뚝’
■ 75일간의 기록, 우리는 6남매 ‘다~람쥐’
한완상 전 부총리
<한겨레 인기기사>
■ ‘29만원’ 전두환, 손녀는 톱스타급 ‘초호화’ 결혼식
■ ‘나꼼수’ 김용민이 창간한 <조일보>, 무슨 내용?
■ [친절한 기자들] 기자가 말하는 ‘임수경 막말’ 뒷담화
■ 이해찬 “인터뷰 계속 이렇게 할거냐?” 전화 ‘뚝’
■ 75일간의 기록, 우리는 6남매 ‘다~람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