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재외동포 대상 홍보잡지인 <통일신보> 1992년 5월30일치에 재미동포 조동진(조덕천·맨 왼쪽) 목사 일행이 북한을 방문한 소식이 김일성 주석(가운데)과 찍은 기념사진과 함께 실렸다. 사진은 조 목사의 홈페이지 ‘미스터 미션’에서 갈무리한 것이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6)
1993년 3월 취임 초부터 통일원으로 많은 이들이 찾아와 좋은 조언을 해주었다. 한국교회협의회와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한반도 평화’를 선교과제로 다루었던 분들도 만나러 왔다. 그중에는 세계교회협의회의 박경서 박사, 미국 감리교의 윤길상 목사, 연변과학기술대학을 세운 김진경 총장도 있었다. 김 총장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 사본을 나에게도 건넸다. 이들 모두 북한에 관한 정보를 아는 대로 전해주었다.
미국인 스티브 린튼(한국 이름 인세반) 유진벨재단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92년 3월 말 김일성 주석과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만남을 주선하고 통역까지 했던 인물이다. 외증조부 유진 벨과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이 초대 한국 선교사로 활동한 이래 그의 집안은 4대째 한국에 정착했고 그 역시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완벽한 한국말을 구사했다. 79년부터 이미 10여차례 북한을 다녀온 그는 지난가을에도 그레이엄 목사가 김 주석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하려 했으나 우리 정부가 승인해주지 않아 못 갔다며 올해도 초청을 받았다고 했다.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앙을 지녔으나 국내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달리 ‘평화의 중재자’로 활약해온 그레이엄 목사의 방북은 격려해야 할 일이라 나는 생각했다. 보수적인 닉슨 대통령이 중국 정부의 문을 활짝 열게 했듯이 세계적인 부흥사 그레이엄 목사가 김 주석과 인간적 소통을 통해 북-미와 남북 관계 개선에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린튼 회장에게 ‘평양에 잘 다녀오라’고 격려했고 그는 무척 고마워했다.
3월27일 토요일 오후였는데 조동진(본명 조덕천) 목사가 긴히 할 말이 있다고 전갈을 보내왔다. 보수적인 장로회 교단 소속으로 60년부터 서울 후암동교회 담임목사를 맡았던 그는 78년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주 윌리엄캐리대학 부설 연구소 소장 및 국제선교협력기구 이사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 대학 간부들과 함께 여러 번 북한을 다녀왔다는 그는 특히 지난해 봄 그레이엄 목사의 첫 방북 뒤인 5월23일 평양에서 단독으로 만났을 때 김일성 주석이 했던 말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김 주석은 노태우 대통령이 한동안 정상회담을 하자더니 시간이 지나자 잠잠해졌다고 했다.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씨의 석방을 남북 당국자회담 때마다 우선적으로 요구했는데, 석방이 안 되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이인모 노인을 북으로 보내주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흥미있는 대목은 미국과 일본에 관한 이야기였다. “김 주석은 북과 남이 통일되어 7천만 인구를 가진 국가가 되면 일본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과 힘을 합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우리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강하게 말했다. 그리고 통일 뒤에는 영세중립국을 선언하고 싶다고 했다. 또 그레이엄 목사가 평양을 다녀간 뒤 북에 도움이 되는 말을 많이 했다며 돌아가거든 그레이엄 목사에게 금년 가을 9월에서 11월 사이에 부인과 함께 다시 오라고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조 목사도 함께 오면 좋겠다고 했다. 이제 얼굴을 익혔으니 자기 집처럼 평양에 자주 오길 바란다고도 했다.”
조 목사는 그때 김 주석에게 받은 인상을 이렇게 전했다. “청각이 몹시 약한 듯 보청기가 항상 옆에 있었다. 걸음걸이가 시원치 않고 보폭이 짧았다. 음식은 잘 먹고 많이 먹는데 술은 조심했다. 신발은 바닥창을 두텁게 만들어 키를 늘리려고 한 것 같았다. 여든이 된 자기 나이에 신경을 쓰는 듯 보였다. 90살 생일은 통일된 조국에서 맞이하길 바란다고 하자 ‘고맙소’를 연발했다. 대미관계 개선을 위해 조 목사가 힘을 보태주길 바라는 느낌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 대통령의 외모는 낮게 평가하면서 노태우 대통령이 제일 낫다고 평하기도 했다. 조평통 부위원장 윤기복·한시해 등이 배석했는데 그들에게 직접 묻는 질문이 아니면 말을 하지 않았고 말할 때는 자리에서 꼿꼿하게 일어나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면서 대답했다. 김 주석을 접견하기 전에 윤기복은 유창한 영어로 인사하며 자기도 미국에 초청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런 것을 보면 북한 당국이 미국을 두고 심하게 욕설을 하면서도 미국과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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