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월15일 북한 김달현 부총리의 초청을 받아 두번째 북한을 다녀온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남포공단 합작공장 등 상당한 성과를 풀어놓아 남북경협 활성화의 기대를 한층 높였다. 당시 김일성 주석과 만난 김 회장 일행의 기념사진을 <문화방송>이 보도한 장면이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⑧
1993년 3월2일 김영삼 대통령과 조찬 독대 이후 11일의 이인모씨 북송 발표와 바로 이튿날 터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발표로 새 정부의 대북정책은 만만찮은 시험대에 올랐다. 이런 돌발사태의 경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즈음 나라 안팎의 분위기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통일 부총리 취임 직후인 2월 말 나는 <한국방송>과 진행한 첫 인터뷰에서 남북관계의 개선을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새 정부에서 핵사찰과 이씨 송환 문제가 타결되면 올해 안에 남북 정상이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남북간에 깊어질 대로 깊어진 불신은 정상이 만나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눔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3월 말에 팀스피릿 군사훈련까지 끝나면 북한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사찰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거라고 예견했다.
당시 새 정부의 통일·외교·안보팀은 모두 북한 핵문제가 남북관계를 너무 오래 교착시키고 있는 상황을 깊이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청와대 외교수석이 평소 소신대로 남북관계 교착에 대한 이런 우려를 표명하자, 안팎에서 호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핵문제 해결 없이는 경제협력도 있을 수 없다’는 냉전적 적대주의 분위기가 여전히 팽배했다.
그즈음 이미 북한과 경제교류를 추진하고 있던 대기업이 몇몇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대우 김우중 회장이다. 김 회장은 91년 5월 대한축구협회 회장 자격으로 ‘제6회 청소년축구대회’ 단일팀 평가전에 참가하고자 북한을 방문했다. 이듬해 1월에도 그는 김달현 부총리의 초청을 받아 북한을 다녀왔다. 대우는 남포공단의 합작공장 건설과 흑연·아연·무연탄 등 자원개발 사업 추진에도 합의했다. 이뿐 아니라 1만명에서 2만명가량 북한의 싼 노동력을 활용해 리비아·파키스탄·이란·수단 등 해외 건설 사업에 남북이 공동 진출하는 문제까지 북한 당국과 협의했다. 김 회장은 연형묵 총리와 김일성 주석도 면담한 뒤 김달현 부총리와 여러 번 만나서 경협 문제를 협의했다. 9월과 10월에는 김달현 부총리가 ‘선 핵문제 후 경제협력’이라는 남한 정부의 방침을 존중해 대우로부터 기계설비를 현금으로 구매하여 임가공 형태로 추진하는 방안을 제의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핵문제에 발목이 잡혀 대우의 남포공단 경공업공장 건설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니 핵문제와 별개로 남북 경협을 추진하는 데 우려를 표하고 저지하려는 보수 쪽의 움직임이 정부 안팎에서 드러났다. 93년 3월2일에는 미국 <워싱턴 타임스>가 보수 쪽의 이런 염려를 담아 한국 대기업들이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북한과 경제교류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많은 기업가와 전문가들이 “한완상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과 김덕 안기부장에게 남북간에 정치·안보 분야의 대화 진전이 없더라도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허용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워싱턴 타임스>는 반공 이념을 표방하는 신문으로 통일교가 경영하는 미국 언론이다. 새 정부가 핵문제와 별개로 북한과 경제협력을 추진할까봐 염려한 보수 쪽에서 이를 견제하고자 이런 정보를 퍼뜨린 것이다.
3월8일 오전에는 주한 미국 부대사가 내 집무실을 찾아왔다. 대사는 아직 부임하지 않아 공석인 때였다. <중앙일보>는 이날 부대사가 마치 새 정부의 대북 경제교류 추진을 만류하고자 나를 만난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 노태우 정부 말기부터 이미 많은 대기업이 정부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북경협을 추진하고 있었다. 어쩌면 보수언론은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대기업들보다 앞서나갈까봐 두려워한 것인지도 모른다.
레이먼드 버그하트 부대사는 그날 내게 새 정부의 대규모 대북경협 가능성을 신중하게 타진했다. 그동안 이뤄진 경제교류 정도는 괜찮지만 새로 대규모 경협을 추진하는 것은 염려하는 듯했다. 당시 클린턴 정부가 새 정부를 견제하려고 부대사를 나에게 보냈다거나 나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염려했다는 일부의 기사는 명백한 왜곡보도였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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