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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한완상 비망록 “YS취임 16일 대형 악재가…”

등록 2012-05-14 20:52수정 2012-05-15 15:06

한완상(76) 전 통일부총리
한완상(76) 전 통일부총리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이인모 노인 전격송환 발표 이틑날 북 NPT 탈퇴
문민정부 출범 이후 숨직이던 수구세력 불만 터져

YS정부 초대 통일부총리…‘햇볕정책’ 상징

<한겨레> 창간 24돌을 맞아 한완상(76) 전 통일부총리의 공직생활 비망록이 독자를 찾아간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정을 헤쳐온 한완상 전 부총리는 90년대 이후 통일부총리(문민정부), 교육부총리(국민의 정부), 적십자사 총재(참여정부)를 차례로 지냈다. 우리 사회 원로들의 회고록 연재기획인 ‘길을 찾아서’의 12번째 이야기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는 민주화 이후 내리 세 정부에서 경험한 공적인 활동의 기록인 셈이다. 한 전 부총리는 문민정부 초기 남북관계의 전환을 모색하는 ‘햇볕정책’을 주창한 이래,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정책구상을 다듬고 설파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비망록은 특히 93년 2월 초대 통일부총리로 임명돼 그해 12월 물러나기까지, 냉전수구세력에 포위되어 가는 김영삼 대통령의 대북정책 비사를 자세히 밝힌다.

■ 신한국 창조의 비전을 밝히다

1993년 1월1일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았다. 내 인생만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는 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전해 12월 14대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는 예상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나는 대통령 당선에 깊이 개입했기에 반드시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의식을 갖고 있었다.

1월8일쯤 김영삼 대통령 당선인은 내게 취임 연설문을 작성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역사에 남을 만한 내용과 듣는 이를 감동시킬 힘이 있는 메시지를 연설문에 담고자 했다.

그즈음 세계는 새로운 질서와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었다.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으로써 세계적 냉전체제도 막을 내렸다. 그런데 유독 한반도만 여전히 냉전체제에 묶여 있었다. 새 대통령은 두 가지 심각한 역사적 도전 앞에 서 있었다. 하나는 세계적 탈냉전 흐름에 적극 대응하여 민족 화해와 평화, 궁극적으로는 통일로 나아가는 물꼬를 트는 일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 땅에서 민주화를 전면 확대하고 심화하여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어야 했다. 바로 ‘신한국 창조의 비전’이었다.

‘희망은 아침 햇살처럼 번지고, 정의는 곧 강물 되어 흐르며, 신뢰는 높은 산처럼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아! 이것이 신한국의 자랑스러운 모습이구나 하고 기뻐할 것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2007년 말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마지막으로 15년간의 공직에서 물러난 뒤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교수 시절부터 써온 일기 수첩과 1993년 문민정부 출범 때부터 기록하기 시작한 업무일지 노트를 토대로 비망록을 정리해왔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완상 전 부총리는 2007년 말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마지막으로 15년간의 공직에서 물러난 뒤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교수 시절부터 써온 일기 수첩과 1993년 문민정부 출범 때부터 기록하기 시작한 업무일지 노트를 토대로 비망록을 정리해왔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YS는 단둘이 만난 자리
비서실장을 맡아달라 했다
“5년간 줄기차게 개혁하려면
한 박사하고 일해야지!”
그로부터 16일 뒤
당선인이 전화로 깨웠다
“통일부총리를 맡게 될 것”
“알겠습니다” 얼떨떨했다

■ 비서실장 제의를 받다

2월1일 당선인은 단둘이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덜컥 겁이 났다. 비서실장 자리는 노련한 정치 경험과 경력을 갖춘 인물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그 자리를 맡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보다 적격이라 여긴 세 사람을 추천했다. 야당 시절 오랫동안 그의 곁에서 동고동락한 김덕룡 의원, 전략적 사고에 능하고 경제문제를 제대로 파악해 정책 자문이 가능한 황병태씨, 그리고 ‘이기택계’의 박관용씨를 추천했다.

그러나 김영삼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5년간 줄기차게 개혁하려면 한 박사하고 함께 일해야지!” 나를 추천한 이는 노태우 정부 시절 안기부장을 지낸 서동권씨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선인은 오늘 오간 이야기는 당분간 비밀에 부치라고 당부했다. 심지어 아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다.

그날부터 나는 혼자 속병을 앓았다. 누구와도 마음을 터놓고 의논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막중한 직책을 잘해낼 수 있을지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속앓이의 이유는 또 있었다. 연초 신년모임에서 만난 당선인의 맏사위 이창해씨가 장인어른을 잘 보필해달라며 ‘마닐라 봉투’를 건네주었다. 별생각 없이 받아두었던 그 봉투를 비서실장 제의를 받은 뒤 열어보니 새삼 중압감이 느껴졌다. 그 안에는 ‘대통령 친인척 관리에 대한 지침서’가 들어 있었다. 지난해 성탄절 상도동 가족모임에서 이창해씨와 둘째아들 현철씨 사이에 ‘정치 참여’를 두고 심각한 언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뒤이기도 했다.

1993년 3월2일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초대 통일부총리로 임명된 필자가 독대를 하고 있다. 한 전 부총리는 문민정부 출범 직후 국무총리에 앞서 대통령과 독대해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1993년 3월2일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초대 통일부총리로 임명된 필자가 독대를 하고 있다. 한 전 부총리는 문민정부 출범 직후 국무총리에 앞서 대통령과 독대해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 뜻밖의 새벽 전화를 받다

2월17일이었다. 당선인이 새벽 조깅 나가기 전에 전화로 나를 깨웠다. 그날 오전 발표할 청와대 비서실 인사에서 내 이름은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런 통지에 수화기를 들고 잠시 아무 대꾸도 않고 있으니 그는 “한 박사는 부총리직 중 하나를 맡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평소 관심을 기울여온 통일 및 평화 문제를 담당하는 통일부총리를 맡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얼떨떨해서 겨우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날 청와대 주요 인사들이 소공동 롯데호텔에 모였다. 그런데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유력했던 이명현 교수가 빠져 있었다. 대신 뜻밖에도 전병민씨가 사회문화수석으로 임명되었다. 현철씨의 입김이 작용했음을 직감했다.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비서실장에는 박관용 의원이 임명되었다. 내가 추천했던 세 사람 중 하나였으니 놀랄 일은 아니었다.

지난 2주일 사이 당선인에게 어떤 심경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짐작은 갔지만 굳이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신한국호가 참신한 개혁의 깃발을 올리고 새로운 민주정치와 평화정치로 가는 험난한 항해를 힘차게 해나갈 수 있을지가 염려되었다. 과연 이 인선이 개혁의 새 부대가 될 수 있을지 일말의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무거운 짐이 일순간 사라지는 듯해서 심신이 가뿐하기도 했다.

■ 동고정치를 꿈꾸다

2월25일 제14대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식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이제부터 이 땅에 인간적 정치, 따뜻한 정치, 체휼의 정치가 이뤄지길 바랐다. 억울한 약자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정치를 꿈꿨다.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이러한 동고정치의 비전이 제시되는 것을 보고 나는 긍지를 느꼈다. 동지들과 취임사의 내용과 정신, 문장을 정성스럽게 다듬었던 지난 몇 주간을 떠올리며 가슴이 벅찼다.

취임사 중에서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긴 부분은 역시 통일과 평화였다. 특히 통일 관련 메시지는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감동이 되기를 바랐다. 지난 반세기 동안 분단으로 말미암아 너무나 억울하게 고통을 겪어온 우리 민족 아닌가. 나는 김일성 주석에게 던지는 메시지에도 주목하길 바랐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훗날 나에게 많은 고통과 보람을 함께 안겨주었다.

■ ‘문민정부’ 명칭을 제안하다

3월2일 나는 김영삼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조찬 독대를 했다. 취임식 이튿날인 2월26일 통일부총리 임명장을 받은 이후 처음이었다. 총리에 앞서 내가 먼저 대통령과 독대하게 되니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그러나 이날 나는 대통령과 크게 두 가지 문제를 놓고 진솔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첫째는 새 정부의 명칭이었다. 언론에서 새 정부를 ‘7공화국’ 또는 ‘6.5공화국’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대통령이 물었다. 그래서 이제 정부에 숫자를 붙이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때 ‘김영삼 정부’라는 표현이 처음 나왔다. 대통령은 선뜻 내켜하지 않았다. 나는 새 정부가 기나긴 군사권위주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구현하는 민주정부임을 선언하는 뜻에서 ‘문민정부’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둘째는 통일정책과 대북정책의 기조에 관해 말씀드렸다. 북한이 우리의 눈을 치고 우리의 이를 때리더라도, 우리가 그들을 껴안을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주적인 북한을 증오하기보다는 껴안음으로써 남북간 적대관계의 악순환을 극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1993년 2월25일 열린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김 대통령은 필자를 비롯한 연설문 작성팀에서 준비한 취임사를 통해 이날 ‘신한국 건설’을 국정지표로 제시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3년 2월25일 열린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김 대통령은 필자를 비롯한 연설문 작성팀에서 준비한 취임사를 통해 이날 ‘신한국 건설’을 국정지표로 제시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인모 얘기를 했다
대통령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9일 뒤 전격 송환발표
그런데 이튿날 악재가 터졌다
북 “NPT 탈퇴” 선언
충격스런 소식이 전해지자
숨죽이고 있던 수구세력이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 이인모씨 송환 발표 다음날 ‘북핵’ 터지다

청와대 첫 독대 자리에서 나는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씨의 송환을 둘러싼 안기부와 통일원의 견해차를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당시 안기부는 이씨를 당장 송환하는 것에 반대했다. 반대 이유는 크게 네 가지였다. ‘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을 바라는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 비전향 장기수 400명 가운데 송환을 희망하는 175명을 모두 보낼 수는 없다, 북송이 국내 좌경세력을 고무시킨다, 북한 당국이 정치적 선전으로 악용할 것이다.’

그러나 통일원의 생각은 달랐다. 새 정부의 평화지향적 대북 포용정책 원칙에 맞게, 이미 반신불수 증세가 있는 이씨를 인도주의 원칙으로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북송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북송은 인권을 존중하는 새 정부의 개혁 지향과도 일치하며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대화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도 판단했다.

대통령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이날의 조찬 독대 내용은 다음날 짤막하게 언론에 보도되었다. 김영삼 개혁정부의 깃발이 높이 세워지는 듯했다. 그러나 새 정부 안팎에서 새 깃발이 휘날릴수록 불안해하고 불편해하는 세력이 강고하게 숨죽이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3월11일 문민정부는 ‘이인모 노인의 3월19일 북한 송환’을 전격 발표했다. 그런데 바로 이튿날 심각한 악재가 터졌다. 12일 오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새 정부 들어 숨죽이고 있던 수구세력이 마침내 불안과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정리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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