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어디로 / 전문가 진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은 앞으로 남북한 관계는 물론 동북아 정세에도 큰 파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 위원장 이후의 북한 및 한반도 상황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다. 정리/임인택 김외현 기자 imit@hani.co.kr
미국이나 중국은 불확실성 원치않아
사망 뒤 이틀이 지나 발표한 것을 보면, 김정일 사망이란 급박한 사태를 체계적으로 대응한 흔적이 엿보인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내각과 군과 당이 합의를 했을 거라 생각한다.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후계 체제가 전면에 나서고 앞으로 체계적으로 권력 이양을 하자는 내용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지지도 구했을 것으로 본다.
덕분에 초반에는 안정적인 국면으로 진행할 거라고 본다. 문제는 김정은이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일 뿐, 당 정치국이나 국방위원회에는 아직 이름도 못 올렸다는 점이다. 아직 전체 조직을 장악한 건 아닌 셈이다. 그런 불안 요소와 권력 내부 갈등이 표면화하면 급속도로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초기에 잘 준비한 데 기초해, 국가적인 애도와 추모 분위기가 형성되면 별문제 없을 수도 있다.
미국이나 중국은 불확실성을 원치 않는다. 북-미, 북-중 상황이 달라질 것은 없다.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중요하다. 조문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의를 표명하거나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식량 지원에 나서거나 하면, 남북관계를 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김일성 주석 사망 때처럼 ‘조문 파동’이 일어난다면 남북관계는 다시 파탄이 날 것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조문외교 파동땐 남북관계 꼬일수도
제도적 측면에서는 후계체계를 정비한 상태라 북의 특별한 변화는 어렵다. 다만 1994년 사례(김일성 주석 사망)를 보면, 일종의 장례 국면에서 유훈 통치를 어느 정도 지속했고, 이번에도 중요 외교결정은 조금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은 지난해 당 대표자회의에서 인사를 했고,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다. 후견그룹의 보좌도 있을 터다. 군부와의 관계에서도 당 군사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 북의 군 체제는 정치적으로 통제되는 것이라 당의 영도체제는 확고한 편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조문 문제다. 1994년 논란이 된 것처럼,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 조의를 표해야 한다. 조문은 외교다.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조전을 보냈다. 당분간 6자 회담이나 남북관계는 연기될 수밖에 없지만, 이후는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그동안 부진했던 남북관계를 일거에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또 한번 남북관계가 뒤엉키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1994년은 남북교류가 없던 반면, 지금은 두 차례 정상회담을 해 교류 수준이 다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전범도 아니다. 북한이 1994년 조문파동을 두고두고 얘기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부
돌발상황 벌어질 가능성 크지 않아
장의위원회 구성을 보면 내부갈등은 없어 보인다. 있다 해도 구성하면서 걸러졌다고 본다. 북에선 장의위 순서가 서열이다. 차분히 준비하고 발표한 걸 보면, 그것도 소수 70~80명이 아니라 232명이나 한 것을 보면, 끌어안을 이들 다 끌어안고, 그들을 다 복속시켰다는 말이다. 북은 절대권력 체제로서 집단지도체제는 곧 반역을 뜻한다. 김정은이란 절대권력의 후계자가 있는 한 그렇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처음 나올 때 장성택의 역할론이 주목받기도 했지만, 로열패밀리 안에서 장성택은 진골이다. 지난해 러시아에 김정일 위원장이 장성택을 데리고 갔는데, 곧 장성택 없이도 김정은이 평양을 지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남북관계에서 오히려 돌발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줄었다. 김정은은 미국으로부터 체제를 담보받는 게 중요해 정면돌파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북-미 관계는 남북보다 유화적으로 빨리 진행될 것이다. 장의위엔 친중 인사들도 많아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조문을 허용할 리 없고, 결과적으로 5년 내내 남북관계에 있어 평행선을 걷게 되는 것이다. 예측이 잘 안되는 김정일을 상대하는 것보다, 내치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김정은을 상대하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고 볼 것이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
이미 김정은 시대, 정치적 위치 안정적
북한은 이미 김정은의 시대였다. 후계자가 된 지 1년 동안 군과 정보 계통을 완전히 장악했다. 김정일이 외국에 나가면 김정은이 국내에 남는 형태로 일종의 ‘분업 정치’를 했다. 과거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외국에 나갈 때에도 김정일은 국내에 남아 국내 정치와 군을 장악한 바 있다.
김정일의 사망을 이틀 뒤 발표하면서 ‘김정은 영도 체제’를 확실하게 밝히는 것은, 그 이틀 동안 정권의 핵심세력이 내부적으로 김정은 체제를 지지하기로 합의했다는 의미다. 김정은을 대체할 대안적 선택지도 없다. 김정은의 정치적 위치는 안정적이라고 본다.
강성대국 원년을 선언하는 내년 북한의 축제 분위기나 북-미 사이에 진행중인 핵협상 대화 등 대내외적 상황은 김정은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북-중 관계도 특별히 변한 게 없고, 중국은 김정은 체제가 빨리 자리잡도록 도울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깊고 넓은 레임덕에 빠져 붕괴론 제기 등 강력한 대응 정책을 펼 능력이 없다는 것도 김정은에겐 도움이 된다. 한국 국민들도 대결 정책으로 경제적 악영향을 원치 않는다. 김정은으로선 대외관계를 대결적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 대단한 도발이나 긴장 고조는 생각하기 어려운 시점이라고 본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전문위원
김정은 1인 집중되는 리더십 쉽지않을듯
지난해 9월 3차 당 대표자회의를 통해서 후계체제 정착을 위한 제도화의 틀을 만들었다. 당·군·정 관계에 적절한 권력 재배치, 거기 따른 인사조치까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지속적으로 했다. 군은 당의 통제를 받는다는 규약까지 처음 들어갔다. 후계체제 안착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만든 거다. 이를 토대로 김정일 위원장의 후광으로 권력을 이양받고 뿌리를 내렸어야 했는데, 조기 사망한 탓에 착근 과정에서 중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도적 틀만으론 향후 국면을 수습하는 게 불가능하고 김정은의 경험, 나이, 후계체제 수업기간이 적기 때문에, 김경희, 장성택, 리영호 등 후견세력의 지원이 상당할 것이다. 군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견제와 균형의 틀을 마련했지만 얼마나 협력할까가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나름의 굴곡이 생기겠으나 체제 정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1994년 때도 그랬다. 북으로선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서 체제 안정을 보장받으려고 하는 입장엔 변함이 없겠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복잡한 상황이 생길 것이다. 그동안 김정일 중심 체제였지만, 지금은 1인으로 집중되는 리더십 체제가 쉽지 않다. 대외정책에서 당·정·군 내부의 결속, 합의가 어떻게 도출되느냐의 과정이 모두 김정은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관세 전 통일부 차관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부
김영수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전문위원
이관세 전 통일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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