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5당의 지방선거 연대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백승헌 민변 회장은 “처음 논의를 시작할 때엔 연대가 참 아득하게 보였다. 그러나 중간 합의까지 온 데서 보듯이 정당들이 합의한 원칙에 따라서 문제를 바라보면 결코 불가능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드러난 이견보다 해소된 이견이 더 많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야5당 합의’ 중재한 백승헌 민변 회장
“‘반MB’ 아니라 정책연대로 나아가야
‘야5당 합의’ 중재한 백승헌 민변 회장
“‘반MB’ 아니라 정책연대로 나아가야
‘악마는 작은 데 숨어 있다’(The devil’s in the details)는 영어 속담이 있다. 일의 성패를 가르는 건 큰 줄기의 원칙이 아니라, 아주 작고 구체적인 부분이란 뜻이다. 어제 발표된 야 5당의 지방선거 연대 합의문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이 생각이다. “6월 지방선거에서 진보개혁 세력은 선거연대를 이뤄낼 수 있을까?” 합의문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문을 갖는 이는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치사 초유의 대규모 선거연대는 가능할까, 이런 궁금증에 대한 약간의 해답이라도 얻기 위해 어제 아침에 백승헌(47)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만났다.
백 회장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범시킨 기구 ‘희망과 대안’의 공동운영위원장 자격으로 ‘5+4 테이블’(야 5당과 4개 시민사회단체의 연석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수많은 단체의 의견이 엇갈리는 시민사회 진영에서, 그는 서로간의 차이점을 좁히면서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데 뛰어난 솜씨를 발휘한다는 평을 듣는다. 백 회장은 낙관하지 않았지만 선거연대가 ‘이뤄질 수 있다’는 현실적 가능성을 협상 과정에서 느낀 듯했다. 그는 “산에 오르는 걸로 비유하자면 이제 7부 능선까지는 온 셈”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진보개혁 세력이 무능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어떤 일을 할 때) 필요성과 대의엔 동의하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을 못 찾아낸다는 말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렇게까지 올라올 수 있으리라 예상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이번에 꼭 편견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정당-시민단체 선거연대, 역사상 첫 시도
‘여당독주 시대’ 시민사회 적극 개입 필요 -정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선거연대를 위해서 공동으로 협상을 벌이는 건 처음 있는 일이죠? “예, 처음입니다. 우리나라 정치 역사상 ‘디제이피(DJP) 연합’이 있었지만 그때는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정치지도자의 결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또 과거에도 재야의 명망가들이 야권 연대를 하는 데 역할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시민사회가 조직적으로 참여하고 연대를 촉진하기 위해 정치권과 함께 논의를 진행한 적은 없습니다.” -시민사회 진영이 야당의 선거연대 논의에 동참하게 된 건,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부의 독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엠비(MB) 정부 들어서 ‘촛불’에 대한 강경대응, 뒤이어 표현과 집회의 자유에 대한 억압 상황이 있었고, 정치권이 압도적으로 여당 쪽에 편중돼 있다 보니 국회에서 여러가지 파행이 많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좋은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진영도 일정 부분 기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시민사회 내부에 생겼고, 그것이 이번에 선거연대를 위한 논의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현실 정치가 문제라면 시민사회 진영에서 직접 시민후보를 내는 식으로 뛰어들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야당 선거연대의 매개자 구실을 자임하는 건, 과거에 비해 시민사회 진영의 세력이 약해졌기 때문인가요? “세력이 약해진 거라기보다는, (시민사회 진영의 정치권에 대한) 압력이 예전에 비해선 강하지 못합니다. 그건 일정 부분 시민사회가 정치를 멀리해온 측면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치와 거리를 두는 건 중립성과 독립성 두 가지 차원의 의미가 있는데,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들이) 중립성에 많이 갇혀 있었다면, 이젠 중립성을 둘러싼 시비에도 불구하고 독립적 위치에서 행동을 하고 기획을 하자는 생각을 한 겁니다.” -과거엔 시민사회 진영이 공명선거 운동을 벌이는 식이었다면, 이젠 중립성을 탈피해서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한 거라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그것(5+4 테이블에 참여한 것) 자체가 가치를 표명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시민사회 진영의 독자후보를 내는 방안도 있겠지만 그런 방식으로 후보를 내서 국민 지지를 받아본 경험이 없고, 개인이나 집단으로 기존 정당에 들어가는 건 정체성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지금 하는 건 그런 것과는 다른 (정치참여) 방식입니다.”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 진영에서도 직접 후보를 낼 수 있습니까? “그러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후보를 낼 테니 어디를 달라는 식의 지분 요구 같은 건 없을 겁니다. 다만, 풀뿌리 지역에서 좋은 시민후보가 있다면 그 후보가 야권의 단일후보가 될 수 있도록 추천을 할 수는 있을 겁니다.” 진보개혁 진영의 선거연대 논의가 본격화한 건 1월12일, 야 5당 대표와 시민사회 원로들이 모여 6·2 지방선거에 공동대응하기로 의견을 모으면서부터다. 그 뒤 2월10일 선거연대를 위한 공동협상 기구를 발족한다는 선언을 했고, 이에 따라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국민참여당 등 야 5당과 ‘희망과 대안’ ‘2010연대’ ‘민주통합 시민행동’ ‘시민주권’ 등 4개 시민사회기구가 참여하는 ‘5+4 테이블’이 발족했다. 4일 발표한 합의문은 그 구체적인 성과물로서, “최종 합의를 위한 예비적 성격의 합의”라고 백 회장은 설명했다. -이번에 발표된 합의문을 보면 너무 포괄적이란 느낌이 듭니다. 광역·기초단체장과 기초·광역의원까지 전면적인 연대를 한다고 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전면적 연합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적 연대도 놓칠 수 있다는 걱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인 연대를 전제로 해서 출발하면 그 부분도 안될 수 있습니다. 야 5당의 공동대응을 기대하는 국민들에게 전면적 연대가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고, 더 큰 국민들의 지지를 촉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면적 연대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물론 포괄적 연합이라고 해서 그 부분에 매몰되어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협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역 실정에 따라서 다양한 연대방식이 논의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합의문에도 기초의원 같은 경우는 중앙당에서 시도당에 위임해 현실적인 여건을 반영할 수 있도록 했고, 지역별 연합 논의를 중앙에서 존중한다는 원칙도 넣었습니다.” -관심은 아무래도 광역단체장, 그중에서도 수도권입니다. 수도권 광역단체장의 후보단일화 논의에서 진전된 게 있습니까? “지금까지 야 5당을 포함해 (5+4 테이블에서) 협의를 한 것이 20여차례 됩니다. 개별 정당끼리의 협의까지 더하면, 그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 모여 모색을 했습니다. 당연히 수도권 광역단체장 논의를 상당 부분 진행했지만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등과 상호 연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좀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합의문을 보면, 야 5당이 단일후보 합의를 못하면 경쟁 방식으로 후보를 정한다고 했습니다. 경쟁 방식이란 여론조사를 뜻하는 겁니까?
“가령 이 지역에서 어떤 정당이 매우 강하고 좋은 후보도 있고 그러면 합의할 수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단체장의 경우엔, 정당 지지도와 유력 후보의 존재를 보고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은 합의해 내자는 겁니다. 후보가 여럿이고 각 정당이 합의를 안 하면 경쟁으로 하자는 겁니다. (그 방법으론) 여론조사 방식이 있지만, 시민공천 배심제와 같은 방식도 있는 거구요, 선거 유형이나 선거구의 크기 이런 것들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단순히 여론 지지도로만 가자고 하면 영남 빼놓고는 다 (민주당이) 이길 테니까, 이렇게 되면 합의가 이뤄질 수 없겠죠. 시민공천 배심제가 가능한지 선거법 검토도 하고 있고…, 그런 것도 검토사항의 하나입니다.”
-연대 방법과 관련해 야당들의 공동 지방정부 구성을 유력한 방안으로 논의하고 있습니까?
“선거 이후, 승리한 지역에서 연합의 정신을 어떻게 이어갈까 그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방 공동정부 혹은 지방 연합정부 운영에 대해선 좀더 많은 고려가 필요합니다. 이 부분의 논의는 초기 단계에 있습니다. 제 생각은, 단순히 지방정부의 정무직을 서로 나누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공통의 정책을 실현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지방자치의 본래 정신이 주민 참여입니다. 주민 의사를 지방행정 운영에 얼마나 밀접하게 반영하느냐, 이것이 지방자치의 성공 가능성을 높입니다. 지방정부 운영에서 민관 협치를 통해, 지금 지방자치가 극복하지 못한 문제를 긍정적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선거연합을 이뤄내는 하나의 도구로서, 이해조정의 한 방식으로서 지방 공동정부를 고안하는 건 공허하다고 생각합니다.”
-선거연대 협상을 3월15일까지 완료하기로 했는데요, 이게 협상의 데드라인인가요?
“현재로선 말 그대로 그렇습니다. 15일을 넘으면 각 정당의 여건상 현실적으로 더 미룰 수가 없습니다. 가령 민주당은 내부 경선이 시작됩니다. 각 당의 경선이 이뤄지면, (5+4 테이블에서) 타협이 되더라도 실행이 안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물론 아까 말한 대로 (3월15일까지) 전부를 타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발표하지 못한다는 건 아닙니다. 그때까지 합의되는 부분은 ‘여기까지다’라고 발표할 수 있겠지요. 가령 서울시장 후보는 정해진 룰에 따라서 각자 뛰어보고 어느 시점에 가서 단일화한다, 이것도 합의라고 생각합니다. (3월15일이란 시한은) 룰의 합의, 일정의 합의를 뜻하는 것이지 특정 후보로의 단일화 합의까지 뜻하는 건 아닙니다. 협상이라는 게 의지만 있다면 시한은 큰 제한요소가 되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거의 매일 만나서 얘기해야죠.”
-그럼에도 이번 중간 합의문이 추상적이어서 실제 구체화시키는 과정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처음 논의를 시작할 때는 각 정당이 바라보는 문제가 다르고, 연합을 위한 전제나 정책도 큰 차이가 있었죠. 정당 사이의 신뢰도 충분하지 않아서, 지방선거 연대가 참 아득하고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중간 합의문을 발표하기까지, 여기까지 오는 것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실제로 이것이 이행될 것인가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계신 분도 여전히 많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 합의까지 왔듯이, 정당들이 합의한 원칙에 따라서 문제를 바라보면 결코 불가능한 게 아닙니다. 최종 합의의 수준에서 보면 중간 합의문이 미약해 보이지만, 처음 논의를 시작할 때의 비관적 전망에서 보면 의미가 있는 합의문입니다. 중요한 건, 드러난 이견보다는 이견이 해소된 게 더 많다는 점입니다.”
“드러난 이견보다 이견 해소된 게 더 많아”
‘반MB연대’ 아니라 정책연대로 나아가야 -선거연대를 산 정상에 비유한다면, 지금 5부 능선까지는 온 겁니까? “논의의 진전 속도는 50% 수준이지만, 성사 가능성은 7부 능선까지 올라왔다고 봅니다. 논의의 물꼬를 텄고, 공식 협상기구를 통해서 서로의 신뢰를 모색했고, 연합의 원칙과 일정에도 합의했으니까요.” -이번 연대 노력이 결과를 내면 좋겠지만 실패를 하면 ‘역시 연대는 안되는 것이구나’라는 좌절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섣부른 연대 논의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개혁 진영의 단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안 해봤습니까? “정치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 (실패하더라도)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지난해 10월 국회의원 재보선 때 안산 상록을에서 야당의 후보단일화 과정에 관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김영환 후보와 임종인 후보가) 최종 합의서에 서명을 했으면서도 실행 과정에서 여러 변수와 당 추인 과정에서 실패한 경험을 했습니다. 실패했다고 말하는 쪽에서 보면 연합에 부정적이겠지만, 최종 합의서에 사인하기까지 이른 과정이 이번 연대 협상에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실패한 것도 반면교사가 됩니다. 아예 처음부터 하지 않은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단일화 협상이 막판에 깨졌는데도 김영환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민주당 내부엔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권 후보단일화가 실패하더라도 결국 막판에 가면 민주당으로 표가 몰릴 것’이라는 견해가 여전히 많은 거 아닐까요? “연합이 안되더라도 이길 방안을 강구해보는 건 정당으로서 당연합니다. 그러나 ‘독자적인 작은 승리가 연합해서 얻는 큰 승리보다 더 낫다’라는 건 아주 소아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녹록한 상황이 아닙니다. 시민사회가 (정당간 선거연대에) 나서게 된 건, (야당이 분열하면) 선거에서도 결코 지지를 못 받을 거라는 판단에서입니다. 촛불이나 조문 정국에서 나타난 국민 의사는, 대안을 만들어 달라, 선거를 통해서 정상화시킬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연합하지 않으면 국민이 야당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연합하면 투표를 하지 않았던 분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누가 서울시장 또는 도지사가 되든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여당의 독주 견제란 명분이 나름의 타당성이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야 5당이 단일화한다는 게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정책과 지혜를 모아야겠지요. 연합이라는 게, 그 당이 가지지 못한 자원과 협업을 통한 지혜를 모아내는 과정입니다. 정책은 가치입니다. 좋은 사람을 발굴해서 정치에 참여시켜서 가치를 구현해야 합니다. 반엠비 연대가 목표가 아니고 정책 연대로, 좋은 사람과 좋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걸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신뢰를 줄 수 있을 겁니다. 저 사람들이 모여서 연합하면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에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현 정부에 대한 반대뿐 아니라, (진보개혁 진영이) 무엇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실제로 그걸 실행해야 합니다.” 인터뷰/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정리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여당독주 시대’ 시민사회 적극 개입 필요 -정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선거연대를 위해서 공동으로 협상을 벌이는 건 처음 있는 일이죠? “예, 처음입니다. 우리나라 정치 역사상 ‘디제이피(DJP) 연합’이 있었지만 그때는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정치지도자의 결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또 과거에도 재야의 명망가들이 야권 연대를 하는 데 역할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시민사회가 조직적으로 참여하고 연대를 촉진하기 위해 정치권과 함께 논의를 진행한 적은 없습니다.” -시민사회 진영이 야당의 선거연대 논의에 동참하게 된 건,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부의 독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엠비(MB) 정부 들어서 ‘촛불’에 대한 강경대응, 뒤이어 표현과 집회의 자유에 대한 억압 상황이 있었고, 정치권이 압도적으로 여당 쪽에 편중돼 있다 보니 국회에서 여러가지 파행이 많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좋은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진영도 일정 부분 기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시민사회 내부에 생겼고, 그것이 이번에 선거연대를 위한 논의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현실 정치가 문제라면 시민사회 진영에서 직접 시민후보를 내는 식으로 뛰어들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야당 선거연대의 매개자 구실을 자임하는 건, 과거에 비해 시민사회 진영의 세력이 약해졌기 때문인가요? “세력이 약해진 거라기보다는, (시민사회 진영의 정치권에 대한) 압력이 예전에 비해선 강하지 못합니다. 그건 일정 부분 시민사회가 정치를 멀리해온 측면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치와 거리를 두는 건 중립성과 독립성 두 가지 차원의 의미가 있는데,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들이) 중립성에 많이 갇혀 있었다면, 이젠 중립성을 둘러싼 시비에도 불구하고 독립적 위치에서 행동을 하고 기획을 하자는 생각을 한 겁니다.” -과거엔 시민사회 진영이 공명선거 운동을 벌이는 식이었다면, 이젠 중립성을 탈피해서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한 거라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그것(5+4 테이블에 참여한 것) 자체가 가치를 표명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시민사회 진영의 독자후보를 내는 방안도 있겠지만 그런 방식으로 후보를 내서 국민 지지를 받아본 경험이 없고, 개인이나 집단으로 기존 정당에 들어가는 건 정체성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지금 하는 건 그런 것과는 다른 (정치참여) 방식입니다.”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 진영에서도 직접 후보를 낼 수 있습니까? “그러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후보를 낼 테니 어디를 달라는 식의 지분 요구 같은 건 없을 겁니다. 다만, 풀뿌리 지역에서 좋은 시민후보가 있다면 그 후보가 야권의 단일후보가 될 수 있도록 추천을 할 수는 있을 겁니다.” 진보개혁 진영의 선거연대 논의가 본격화한 건 1월12일, 야 5당 대표와 시민사회 원로들이 모여 6·2 지방선거에 공동대응하기로 의견을 모으면서부터다. 그 뒤 2월10일 선거연대를 위한 공동협상 기구를 발족한다는 선언을 했고, 이에 따라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국민참여당 등 야 5당과 ‘희망과 대안’ ‘2010연대’ ‘민주통합 시민행동’ ‘시민주권’ 등 4개 시민사회기구가 참여하는 ‘5+4 테이블’이 발족했다. 4일 발표한 합의문은 그 구체적인 성과물로서, “최종 합의를 위한 예비적 성격의 합의”라고 백 회장은 설명했다. -이번에 발표된 합의문을 보면 너무 포괄적이란 느낌이 듭니다. 광역·기초단체장과 기초·광역의원까지 전면적인 연대를 한다고 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전면적 연합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적 연대도 놓칠 수 있다는 걱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인 연대를 전제로 해서 출발하면 그 부분도 안될 수 있습니다. 야 5당의 공동대응을 기대하는 국민들에게 전면적 연대가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고, 더 큰 국민들의 지지를 촉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면적 연대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물론 포괄적 연합이라고 해서 그 부분에 매몰되어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협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역 실정에 따라서 다양한 연대방식이 논의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합의문에도 기초의원 같은 경우는 중앙당에서 시도당에 위임해 현실적인 여건을 반영할 수 있도록 했고, 지역별 연합 논의를 중앙에서 존중한다는 원칙도 넣었습니다.” -관심은 아무래도 광역단체장, 그중에서도 수도권입니다. 수도권 광역단체장의 후보단일화 논의에서 진전된 게 있습니까? “지금까지 야 5당을 포함해 (5+4 테이블에서) 협의를 한 것이 20여차례 됩니다. 개별 정당끼리의 협의까지 더하면, 그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 모여 모색을 했습니다. 당연히 수도권 광역단체장 논의를 상당 부분 진행했지만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등과 상호 연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좀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야권연대 7부 능선 올라…처음엔 참 아득했다”
‘반MB연대’ 아니라 정책연대로 나아가야 -선거연대를 산 정상에 비유한다면, 지금 5부 능선까지는 온 겁니까? “논의의 진전 속도는 50% 수준이지만, 성사 가능성은 7부 능선까지 올라왔다고 봅니다. 논의의 물꼬를 텄고, 공식 협상기구를 통해서 서로의 신뢰를 모색했고, 연합의 원칙과 일정에도 합의했으니까요.” -이번 연대 노력이 결과를 내면 좋겠지만 실패를 하면 ‘역시 연대는 안되는 것이구나’라는 좌절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섣부른 연대 논의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개혁 진영의 단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안 해봤습니까? “정치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 (실패하더라도)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지난해 10월 국회의원 재보선 때 안산 상록을에서 야당의 후보단일화 과정에 관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김영환 후보와 임종인 후보가) 최종 합의서에 서명을 했으면서도 실행 과정에서 여러 변수와 당 추인 과정에서 실패한 경험을 했습니다. 실패했다고 말하는 쪽에서 보면 연합에 부정적이겠지만, 최종 합의서에 사인하기까지 이른 과정이 이번 연대 협상에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실패한 것도 반면교사가 됩니다. 아예 처음부터 하지 않은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단일화 협상이 막판에 깨졌는데도 김영환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민주당 내부엔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권 후보단일화가 실패하더라도 결국 막판에 가면 민주당으로 표가 몰릴 것’이라는 견해가 여전히 많은 거 아닐까요? “연합이 안되더라도 이길 방안을 강구해보는 건 정당으로서 당연합니다. 그러나 ‘독자적인 작은 승리가 연합해서 얻는 큰 승리보다 더 낫다’라는 건 아주 소아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녹록한 상황이 아닙니다. 시민사회가 (정당간 선거연대에) 나서게 된 건, (야당이 분열하면) 선거에서도 결코 지지를 못 받을 거라는 판단에서입니다. 촛불이나 조문 정국에서 나타난 국민 의사는, 대안을 만들어 달라, 선거를 통해서 정상화시킬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연합하지 않으면 국민이 야당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연합하면 투표를 하지 않았던 분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누가 서울시장 또는 도지사가 되든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여당의 독주 견제란 명분이 나름의 타당성이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야 5당이 단일화한다는 게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정책과 지혜를 모아야겠지요. 연합이라는 게, 그 당이 가지지 못한 자원과 협업을 통한 지혜를 모아내는 과정입니다. 정책은 가치입니다. 좋은 사람을 발굴해서 정치에 참여시켜서 가치를 구현해야 합니다. 반엠비 연대가 목표가 아니고 정책 연대로, 좋은 사람과 좋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걸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신뢰를 줄 수 있을 겁니다. 저 사람들이 모여서 연합하면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에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현 정부에 대한 반대뿐 아니라, (진보개혁 진영이) 무엇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실제로 그걸 실행해야 합니다.” 인터뷰/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정리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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