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일 교수는 “우리 사회에 정서적 진보는 많지만 정책적 진보는 부족하다.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정책적 진보’가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서울대 법대 교수를 지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사회복지수석으로 발탁돼 현실정치에 발을 들였다. 이제야 실행에 들어간 로스쿨 제도는 그때 그가 처음 공론화했던 개혁과제였다. 그는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던 2005년, 당의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합의처리 방침에 항의해 국회의원직을 던지고 학계로 돌아왔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하니TV ‘더 인터뷰’와 함께하는 한겨레가 만난 사람]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이념 대립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보수 진영의 핵심 이론가인 박세일(61) 서울대 교수가 차지하는 위치는 독특하고 의미 있다. 그가 주창한 ‘선진화론’은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내세운 핵심 담론이었다. 그가 2006년 설립한 한반도선진화재단(한선재단)은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 싱크탱크로 꼽힌다. 박 교수는 그러나 한선재단이 ‘보수적’ 싱크탱크로 규정되는 걸 피하고 싶어 했다. 그는 한선재단의 모델이 미국의 진보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라는 걸 강조했다. “브루킹스엔 보수적 학자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내가 한선재단을 만든다고 했을 때 마이클 아머코스트 전 브루킹스연구소장은 ‘연구에서 지적 정직성을 잃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걸 지키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소통할 수 있는 대표적인 보수 인사’로 꼽히는 건, 이런 태도가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인 듯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요즘 다시 중도실용을 국정운영 기조로 삼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도실용이란 게 국정운영 기조로는 좀 모호한 개념이라는 의견도 있는데요.
“글쎄요. 중도란 개념부터 확실히 해야 될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엔 남한하고 북한 사이에 중도는 없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대한민국의 헌법과 역사를 존중하는 속에서, 자유를 존중하는 우파와 평등을 주장하는 좌파가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아우르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럴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권력을 이양하면서 윤집궐중(允執厥中)이다, 오로지 중간을 잡으라고 했는데, 원래 정치는 중도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도실용이란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으로 어떻게 실현하느냐가 중요하죠. 예컨대 그동안 하락해 온 경제성장 동력을 어떻게 부추기면서 동시에 분배 같은 걸 개선해서 사회통합을 이룰 거냐, 구체적인 정책 패키지가 어떻게 나올 거냐, 그게 더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정책의 문제지요.”
-이명박 대통령 하면 우선 성장 우선주의라는 이미지가 딱 떠오르는데, 중도실용으로 가겠다는 건 그보다는 좀더 분배 쪽에 비중을 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그런 느낌이 들거든요.
“그렇게 가야 되지 않겠어요?(웃음) 그게 옳다고 보는 게, 꼭 선택이라기보다도 한국 경제가 몇몇 기업이 잘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희망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아이엠에프 후에 우리가 경제위기를 극복한 경험도 있고 이번에도 금융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기 때문에 밝은 면이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사회통합으로 만들면서 경제성장으로 갈 거냐 하는 게 중요한 과제인데, 그동안에 성장 중심으로 문제를 봤다면 다음엔 사회통합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도실용’은 말이 아니라 정책이 중요
분배없이 성장만 외치면 ‘부족한 보수’ -그런 방향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발은 없을까요? “난 분배를 신경 안 쓰고 성장만 생각한다는 사람은 ‘부족한 보수’라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진보도 마찬가지로, 분배만 관심 있고 성장엔 관심 없다 그런 게 있을 수 있나요? 어디에 더 중점을 두느냐 하는 거지요.” -최근에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서거하셨는데요, 두 분의 서거로 진보 진영엔 구심점이 사라진 측면이 있습니다. 두 분의 서거가 우리 한국 사회에, 좀더 좁게는 진보 진영에 어떤 영향을 끼칠 거라고 보십니까? “우선 두 분이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건 잊어서는 안 되고, 앞으로 화해와 화합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진보 쪽 말씀을 하시니까, 진보가 첫째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소중히 하고 대한민국의 기본 정신을 존중하는 진보가 되어야겠다, 또 일부 문제지만 친북이나 종북의 문제를 정리해야겠다, 그것이 밝은 진보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가 추구할 진보의 관점은 무엇인가, 그걸 구체적으로 실현할 정책수단은 무엇인가, 그것을 지금부터 묻고 준비하고 성찰하는 게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의 진보 세력에 부족한 부분은, 정서적인 진보는 많은데 정책적인 진보가 약합니다. 그래서 합리적인 진보가 나오는 계기가 되면 어떻겠는가, 이번에 두 분의 서거를 계기로 진보 진영이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진보 진영의 과제로 친북 이미지를 털어내는 걸 말씀하셨는데, 진보 진영 내에 친북은 물론 있겠지만 극히 소수이고 힘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보수 진영에서 계속 ‘진보=친북’을 강조하는 건 정치적 의도가 있는 거 아닌가요? “보수 쪽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는 측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종북이나 친북이 문제가 되는 건 진보적 가치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원래 보수가 북한을 싫어한다는 건 천하가 다 알고 있지만, 진보 세력도 이것(북한)이 진보의 원칙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친북하거나 옆에 서주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본인이 열성적으로 활동하지 않더라도 침묵하는 게 연대해주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니까…, 각자 자기를 (제대로) 세워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릅니다. 대한민국이 그 기간 동안 정체됐거나 후퇴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업적을 모두 부정하는 듯한 이 표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 10년간 이뤄낸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잃은 게 뭐고 얻은 게 뭐냐, 그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잃은 건 몇 가지가 있습니다. 특히 지난 5년간 제가 개인적으로 걱정하는 건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자존심을 많이 공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 미화하자는 게 아닙니다. 분명 명암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점, 자랑스러운 점, 그런 걸 균형 있게 이해를 해야 자기 나라 역사에 자긍심을 갖게 되는 것인데, 그 부분을 흔들어 놨습니다. 그리고 국가 발전의 기본이 되는 헌법, 정책에 흔들림이 있었고, 대북정책에서 무원칙적인 유화정책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국민 통합에 실패했습니다. 잘한 부분도 있습니다. 아이엠에프를 극복한 건 높이 평가해야 하고, 적어도 남북 정상이 해방 후 처음으로 만났다는 점도 의미가 큽니다. 지난 5년간 깨끗한 정치, 돈 안드는 정치 개혁을 해냈다고 보고, 탈권위·불균형의 문제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로 끌어냈다는 점도 평가합니다. (그래도) 잘못된 게 많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뀐 게 아니겠어요? 잘못한 것만 있고 잘한 게 없다, 이건 말이 안 되고 반대의 논리도 말이 안 되겠지요.”
-그러면 ‘잃어버린 10년’이란 수사가 아니라, 잃어버린 것도 있고 얻은 것도 있는 10년이라고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모든 걸 다 부정하는 수사를 사용하니 진보 진영의 감정적 반발을 더 불러오는 것 같습니다. 선거 때야 정치적 수사로 그런 표현을 쓸 수도 있겠지만, 선거가 끝난 뒤에도 줄곧 그런 개념을 쓰니까….
“나는 우파 진영에 얘기를 해요, 잃어버린 10년을 공격하는 건 좋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는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지금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 보수 정부가 들어섰는데, 보수는 통일을 목표로 구체적인 어떤 걸 내놨느냐. 그리고 포퓰리즘적인 요소로 국민통합이 약화됐다면 보수는 어떻게 국민을 통합하려 노력하느냐. 어떤 경제정책을 가지고 사회통합을 이룰 거냐. 이런 부분에서 엄청난 정책 대안을 갖고 정부가 해야 된다고 봐요. 그러니까 10년을 비판하되 자신들은 이렇게 하겠다 하는 걸 보여줘야지, 비판만 하고 행동을 하지 않으면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죠.”
-국민통합 실패를 지난 정부 잘못의 하나로 들었는데, 오히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사회적 갈등은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런 겁니까?
“그 이유는 내가 볼 때, 우리 사회가 갈등이 심한데 우파든 좌파든 갈등을 치유하겠다는 진정성을 가진 그룹이 없어요. 갈등이 심하다고 보면 소통을 해야겠는데, 진실로 그걸 해내려고 마음먹으면 각자 자기반성이 필요합니다. 우파든 좌파든 마찬가지예요. 우파도 좌파에게 10년을 뺏겼으면 진지하게 반성해야 되고, 좌파도 진지하게 자기정렬을 해야 합니다. 자기정리, 자기반성, 자기성찰이 굉장히 부족하기 때문에 이게(소통이) 안 되는 겁니다. 진보는 정서적 진보는 많은데 정책적 진보가 약하다고 했는데, 보수는 내가 볼 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보수는 있지만 철학적 보수가 별로 없어요. 가치 지향적인 보수가 없다는 겁니다. 보수는 자기들이 지키려고 하는 가치가 뭐고, 그것이 왜 우리 시대에 필요하고, 어떠한 미래 비전을 갖는 주장인가 반성해야 합니다. 진보도 진보대로 자기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가진다면, 그때부터 소통과 대화가 이뤄집니다. 지금은 아직 그러지 못합니다.”
한국 정당들 정책기능 없고 선거기능만
국가경영 준비 부족한 채 집권해 불안정 -1997년 보수 세력이 권력을 잃은 다음에 보수 진영에서 뉴라이트 운동이란 게 나왔습니다. 기존의 보수, 굳어 있는 보수로부터 탈피해서 좀더 유연하고 시대에 맞는 보수를 지향한다고 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수 정권이 집권한 다음엔 뉴라이트가 권력 지향, 자리 지향이 아닌가 해서 실망스럽습니다. “뉴라이트 운동이 시작됐을 때 (보수의) 자기혁신 운동이 돼야 한다고 기대했습니다. 그것이 조금더 철학적 운동, 가치 운동, 문화를 바꾸는 운동이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안타깝습니다. 생각과 다르게 빠르게 정치화됐습니다. 뉴라이트가 역사에 기여하려면 시민사회나 정치에서 거리를 둬야 합니다. 우파적 가치를 한국 현실에 맞게 실현하는 게 왜 중요하고, 어떻게 정책화해야 하는가를 깊이 있게 논의하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안 된 게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 정당이 사회적 요구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합니까? “우리나라 정당은 반쪽 정당입니다. 민의를 수렴해서 정책을 만드는 기능은 없고, 선거를 치르고 권력을 나눠 가지는 기능만 있습니다. 이래선 국가경영의 정치가 안 됩니다. 그냥 단순한 권력투쟁의 정치입니다. 국민은 정책에 영향을 받습니다. 여의도에서 무슨 쇼를 하느냐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느끼는 건, 준비를 소홀히 하고 들어간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장기집권 했으니까 국가경영에 노하우가 있었는데, 이제는 5년마다 바뀌니까 엄청나게 준비를 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권력투쟁만 하고 들어가니까 흔들리는 겁니다.” -한나라당도 야당 10년 동안 절치부심하면서 뭔가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별로 준비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죠. 한나라당은 역사가 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침을 자주 하는 야당보다 조직이 있고 체계가 있죠. 그러나 한나라당도 국민을 대표하고 정책을 개발하는 게 취약합니다. 주로 선거 기능과 권력 기능만 남아 있습니다. 제가 (2005년 무렵)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할 때 한나라당은 개혁적 보수가 되겠다고 노선을 정했습니다. 철학은 공동체 자유주의를 지향한다고 정했습니다. 개혁적 보수 노선, 개혁적 보수라는 게 자유와 시장을 소중히 하되 공동체도 소중히 하는 건데, 지금 한나라당 의원들 중에 몇 분이나 그걸 알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장 체계가 있다는 한나라당이 그렇습니다. 다른 정당은 더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정당도 자기반성의 시대로 들어가야 합니다.” 박세일 교수는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하던 2005년, 노무현 정부의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처리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동조하자, 이에 항의해 의원직을 던지고 나왔다. 그는 세종시 건설은 잘못이라는 일관된 소신을 갖고 있다. -요즘 세종시 논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제가 볼 때 이제는 정치권 전체의 결단이 필요하고 구체적으로 대통령과 여당의 결당이 필요합니다. 야당은 이걸 정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데, 나는 그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걸 푸는 건 국정의 책임이 있는 여당이 져야 합니다. 그보다 앞에 있는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금 행정부 몇 개 부처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건 그 도시에도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큰 낭비와 불편을 가져오니까 다른 대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게 잘못된 정책이라면, 여당과 정부가 확실하게 입장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세종시 건설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설령 문제가 있는 공약이라도, 국민에게 약속한 걸 이제 와서 어기는 게 옳은 건가요? “그건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금 잘못된 거라면 국민과의 약속을 소중히 지키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엄청나게 모든 국민에게 손해라면, 솔직하게 반성하고 사과하는 게 지도자의 태도입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완전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는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말해야 합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총리나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정부에 들어가시진 않았습니다. 이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이 대통령과는) 개인적으로 조금 압니다. 같이 지낸 적도 있구요. 그러나 특별히 좋거나 나쁜 건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 정도 지났는데요, 전체적으로 평가를 한다면 10점 만점에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어렵네요.(웃음) 글쎄, 저는 한 10점 만점이면 6점 정도 주겠습니다.” -정권 출범 때 가졌던 기대보다 못 미친다는 뜻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못 미칩니다. 많이 못 미치지요.”(웃음) [인터뷰 전문 바로가기] 인터뷰/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정리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영상: www.hanitv.com
‘중도실용’은 말이 아니라 정책이 중요
분배없이 성장만 외치면 ‘부족한 보수’ -그런 방향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발은 없을까요? “난 분배를 신경 안 쓰고 성장만 생각한다는 사람은 ‘부족한 보수’라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진보도 마찬가지로, 분배만 관심 있고 성장엔 관심 없다 그런 게 있을 수 있나요? 어디에 더 중점을 두느냐 하는 거지요.” -최근에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서거하셨는데요, 두 분의 서거로 진보 진영엔 구심점이 사라진 측면이 있습니다. 두 분의 서거가 우리 한국 사회에, 좀더 좁게는 진보 진영에 어떤 영향을 끼칠 거라고 보십니까? “우선 두 분이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건 잊어서는 안 되고, 앞으로 화해와 화합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진보 쪽 말씀을 하시니까, 진보가 첫째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소중히 하고 대한민국의 기본 정신을 존중하는 진보가 되어야겠다, 또 일부 문제지만 친북이나 종북의 문제를 정리해야겠다, 그것이 밝은 진보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가 추구할 진보의 관점은 무엇인가, 그걸 구체적으로 실현할 정책수단은 무엇인가, 그것을 지금부터 묻고 준비하고 성찰하는 게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의 진보 세력에 부족한 부분은, 정서적인 진보는 많은데 정책적인 진보가 약합니다. 그래서 합리적인 진보가 나오는 계기가 되면 어떻겠는가, 이번에 두 분의 서거를 계기로 진보 진영이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진보 진영의 과제로 친북 이미지를 털어내는 걸 말씀하셨는데, 진보 진영 내에 친북은 물론 있겠지만 극히 소수이고 힘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보수 진영에서 계속 ‘진보=친북’을 강조하는 건 정치적 의도가 있는 거 아닌가요? “보수 쪽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는 측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종북이나 친북이 문제가 되는 건 진보적 가치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원래 보수가 북한을 싫어한다는 건 천하가 다 알고 있지만, 진보 세력도 이것(북한)이 진보의 원칙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친북하거나 옆에 서주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본인이 열성적으로 활동하지 않더라도 침묵하는 게 연대해주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니까…, 각자 자기를 (제대로) 세워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릅니다. 대한민국이 그 기간 동안 정체됐거나 후퇴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업적을 모두 부정하는 듯한 이 표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 10년간 이뤄낸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잃은 게 뭐고 얻은 게 뭐냐, 그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잃은 건 몇 가지가 있습니다. 특히 지난 5년간 제가 개인적으로 걱정하는 건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자존심을 많이 공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 미화하자는 게 아닙니다. 분명 명암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점, 자랑스러운 점, 그런 걸 균형 있게 이해를 해야 자기 나라 역사에 자긍심을 갖게 되는 것인데, 그 부분을 흔들어 놨습니다. 그리고 국가 발전의 기본이 되는 헌법, 정책에 흔들림이 있었고, 대북정책에서 무원칙적인 유화정책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국민 통합에 실패했습니다. 잘한 부분도 있습니다. 아이엠에프를 극복한 건 높이 평가해야 하고, 적어도 남북 정상이 해방 후 처음으로 만났다는 점도 의미가 큽니다. 지난 5년간 깨끗한 정치, 돈 안드는 정치 개혁을 해냈다고 보고, 탈권위·불균형의 문제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로 끌어냈다는 점도 평가합니다. (그래도) 잘못된 게 많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뀐 게 아니겠어요? 잘못한 것만 있고 잘한 게 없다, 이건 말이 안 되고 반대의 논리도 말이 안 되겠지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국가경영 준비 부족한 채 집권해 불안정 -1997년 보수 세력이 권력을 잃은 다음에 보수 진영에서 뉴라이트 운동이란 게 나왔습니다. 기존의 보수, 굳어 있는 보수로부터 탈피해서 좀더 유연하고 시대에 맞는 보수를 지향한다고 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수 정권이 집권한 다음엔 뉴라이트가 권력 지향, 자리 지향이 아닌가 해서 실망스럽습니다. “뉴라이트 운동이 시작됐을 때 (보수의) 자기혁신 운동이 돼야 한다고 기대했습니다. 그것이 조금더 철학적 운동, 가치 운동, 문화를 바꾸는 운동이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안타깝습니다. 생각과 다르게 빠르게 정치화됐습니다. 뉴라이트가 역사에 기여하려면 시민사회나 정치에서 거리를 둬야 합니다. 우파적 가치를 한국 현실에 맞게 실현하는 게 왜 중요하고, 어떻게 정책화해야 하는가를 깊이 있게 논의하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안 된 게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 정당이 사회적 요구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합니까? “우리나라 정당은 반쪽 정당입니다. 민의를 수렴해서 정책을 만드는 기능은 없고, 선거를 치르고 권력을 나눠 가지는 기능만 있습니다. 이래선 국가경영의 정치가 안 됩니다. 그냥 단순한 권력투쟁의 정치입니다. 국민은 정책에 영향을 받습니다. 여의도에서 무슨 쇼를 하느냐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느끼는 건, 준비를 소홀히 하고 들어간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장기집권 했으니까 국가경영에 노하우가 있었는데, 이제는 5년마다 바뀌니까 엄청나게 준비를 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권력투쟁만 하고 들어가니까 흔들리는 겁니다.” -한나라당도 야당 10년 동안 절치부심하면서 뭔가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별로 준비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죠. 한나라당은 역사가 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침을 자주 하는 야당보다 조직이 있고 체계가 있죠. 그러나 한나라당도 국민을 대표하고 정책을 개발하는 게 취약합니다. 주로 선거 기능과 권력 기능만 남아 있습니다. 제가 (2005년 무렵)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할 때 한나라당은 개혁적 보수가 되겠다고 노선을 정했습니다. 철학은 공동체 자유주의를 지향한다고 정했습니다. 개혁적 보수 노선, 개혁적 보수라는 게 자유와 시장을 소중히 하되 공동체도 소중히 하는 건데, 지금 한나라당 의원들 중에 몇 분이나 그걸 알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장 체계가 있다는 한나라당이 그렇습니다. 다른 정당은 더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정당도 자기반성의 시대로 들어가야 합니다.” 박세일 교수는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하던 2005년, 노무현 정부의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처리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동조하자, 이에 항의해 의원직을 던지고 나왔다. 그는 세종시 건설은 잘못이라는 일관된 소신을 갖고 있다. -요즘 세종시 논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제가 볼 때 이제는 정치권 전체의 결단이 필요하고 구체적으로 대통령과 여당의 결당이 필요합니다. 야당은 이걸 정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데, 나는 그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걸 푸는 건 국정의 책임이 있는 여당이 져야 합니다. 그보다 앞에 있는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금 행정부 몇 개 부처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건 그 도시에도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큰 낭비와 불편을 가져오니까 다른 대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게 잘못된 정책이라면, 여당과 정부가 확실하게 입장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세종시 건설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설령 문제가 있는 공약이라도, 국민에게 약속한 걸 이제 와서 어기는 게 옳은 건가요? “그건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금 잘못된 거라면 국민과의 약속을 소중히 지키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엄청나게 모든 국민에게 손해라면, 솔직하게 반성하고 사과하는 게 지도자의 태도입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완전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는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말해야 합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총리나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정부에 들어가시진 않았습니다. 이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이 대통령과는) 개인적으로 조금 압니다. 같이 지낸 적도 있구요. 그러나 특별히 좋거나 나쁜 건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 정도 지났는데요, 전체적으로 평가를 한다면 10점 만점에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어렵네요.(웃음) 글쎄, 저는 한 10점 만점이면 6점 정도 주겠습니다.” -정권 출범 때 가졌던 기대보다 못 미친다는 뜻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못 미칩니다. 많이 못 미치지요.”(웃음) [인터뷰 전문 바로가기] 인터뷰/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정리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영상: www.hani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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