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순간을 곁에서 지켜봤던 박지원 의원은 “굉장히 침작하신 이희호 여사가 병원에서 갑자기 뜨개질을 하시는 걸 보고, 여사님도 이제 대통령 서거를 준비하시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병세 위중함에도 “곧 일어나실 것” 얘기
정부와 큰갈등 없었지만 ‘노제’ 놓고 이견
병세 위중함에도 “곧 일어나실 것” 얘기
정부와 큰갈등 없었지만 ‘노제’ 놓고 이견
7월1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부터 8월23일 영결식을 치를 때까지 42일간, 김 전 대통령에 관한 모든 일을 도맡아 한 사람은 박지원(67) 민주당 의원이었다. 대통령 재임 시절엔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고, 퇴임 뒤엔 동교동 비서실장 구실을 했던 그는 ‘디제이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린다. 그의 행동에 질시 어린 시선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가 언제나 김 전 대통령의 뜻을 정확하게 수행해 왔다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27일 오전, 박 의원을 만났다. 한달 넘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말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는 “병원에 입원하셔서 서거하실 때까지 40여일을 불안과 추모, 거짓말 속에서 보냈다”고 입을 뗐다. ‘거짓말’이란 김 전 대통령의 병세가 위중함에도 언론엔 “곧 일어나실 것”이라고 얘기한 걸 두고 한 말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실 때는 단순한 폐렴 정도로 알려졌다가 갈수록 상황이 악화됐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실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언제 처음 받으셨습니까?
“워낙 의지가 강한 분이라 이번에도 훌훌 털고 일어나실 것을 굳게 믿었지만,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의 얘기를 들어보니 (회복이) 어렵겠다는 걸 돌아가시기 5일 전(13일)께 느꼈습니다. 그래서 사흘 전(15일) 비서관 3명과 대책을 논의했고, 이를 홍업씨와 권노갑·한화갑·한광옥·김옥두 네 분께 말씀드렵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병세를 정확히 국민에게 알리지 않은 건, 만약 위독하시다는 게 알려지면 수많은 시민들이 마지막 모습을 뵈러 병원으로 몰려올 텐데 그걸 병원이 견딜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시민들이 쾌유 집회라도 병원에서 했으면 혹시 쾌차하시지는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듭니다.”
-처음 입원하실 때는 돌아가시리란 예상을 전혀 못하신 거 같네요.
“못했죠. 과거에도 입원했다가 나오셨고, 원체 건강에 유념하고 가벼운 운동이나 주치의로부터 받은 주의사항을 철저히 지킨 어른이라…. 저는 김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5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민주화와 남북화해에 공이 크신 분이니 장례식은 국장으로 한다, 묘지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한다, 빈소는 의회주의자이신 고인의 뜻을 기려 국회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세계적인 추모가 있을 것이고, 북한에서도 고위 특사조문단이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 안장은, 생전에 여사님(이희호씨)과 차를 타고 가시다가 국립현충원을 보고는 ‘저기가 우리가 묻힐 곳’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립대전현충원에 국가원수 묘역이 새로 마련되긴 했지만, 굳이 그곳(국립서울현충원)으로 정했습니다.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국장이냐 국민장이냐를 놓고 밖에서 보듯이 큰 갈등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장을 치르면 장례식날을 임시 공휴일로 해야 하니 경제적 문제가 걸려 있다’고 난색을 표했고, 그러나 이희호 여사가 ‘그럼 6일장으로 하라’고 말씀하셔서 일요일에 영결식을 치렀습니다. 물론 장례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떤 충돌이 있었습니까?
“우리는 장례식 때 운구 행렬이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곳에 꼭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사를 경유하고 사저에 들러 구석구석 방도 가보시고 김대중도서관도 들르기로 했습니다. 또 청와대에서 5년 근무하셨으니 청와대 분수대도 갔다가 민주화투쟁의 기억이 어린 서울광장·서울역을 지나 동작동 묘소를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선 ‘혹시 불상사가 있을지 모른다’며 청와대 분수대에 들르는 걸 상당히 염려했습니다.”
-어떤 불상사를 말하는 건가요?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다 말씀드릴 순 없구요, 아무튼 우리가 ‘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하는 추모객들은 절대 질서를 어기지 않는다고 이희호 여사가 이미 말씀하셨다, 염려하지 말아라’고 계속 설득했는데도 난색을 표했습니다. 그러자 이희호 여사와 홍업씨가 청와대가 어려우면 곧바로 서울광장으로 가자고 결정했습니다. 또 민주당은 ‘노제는 하지 않더라도 추모문화제는 서울광장에서 해야 하지 않느냐, 이를 국장 행사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구했는데, 정부는 ‘노제나 추모문화제는 인정하지 않겠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김대중을 못 믿느냐. 왜 민주당을 못 믿느냐. 당신들이 이렇게 우리를 불신한다면 국장 반납하고 유족장 하겠다’고 맞서 고성이 오갔습니다. 결국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이희호 여사가 검소함과 질서를 강조하셨다고 하니 민주당 자체적으로 아주 조용하게 문화제를 치르겠다’고 양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북 조문단 방문 첫날 “다 만나겠다” 밝혀
민감한 일기내용 공개는 이희호씨가 결정
-국장 과정에서 이희호 여사가 슬퍼하는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줬는데요. 특히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해 계실 때 병원에서 털장갑과 발싸개를 직접 떠서 씌워 드렸다는 소식에 많은 국민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때 이 여사의 심경이 어땠습니까?
“이 여사는 오랫동안 김 전 대통령을 뒷바라지한 경험이 있어서 굉장히 침착하고 절제된 표현을 하십니다. 주치의,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염려하지 마세요. 애 아빠는 반드시 일어섭니다’라고 오히려 위로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뜨개질을 시작하셔서, 아 여사님도 이제 대통령 서거를 준비하시는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말로는 서로 얘기할 수 없지만, 그때 여사님도 어느 정도 준비하신다는 걸 느꼈습니다.”
-북한 조문단이 온다는 소식을 처음 듣고 어떤 경로로 우리 정부에 전달했습니까. 우리 정부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저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북한에) 서거 소식을 알렸더니 북한에서 조문단을 파견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내는 조화를 가져오겠다고 해서 곧 제가 청와대에 알렸습니다. 청와대는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만나 전했더니 의외로 통일부가 뜨악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오히려 청와대가 부정적이고 통일부가 긍정적이어야 하는데 이건 문제가 있다. 치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해서 기자들에게 북한 조문단 온다는 걸 일방적으로 발표해 버렸습니다. 나중에 정부에서 불만을 제기했고 제가 경고를 받았습니다.(웃음) 나중에 북한 특별기의 김포공항 착륙과 경호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에선 통일부가 잘 협조해 줬습니다.”
-북한 조문단이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했는데요, 처음엔 청와대가 면담에 부정적이었던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 조문단의 청와대 면담이 이뤄진 과정이 어땠습니까?
“그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북한 조문단은 처음부터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조문단이 도착한 날 저녁에 (아태평화재단 인사들과) 만찬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북한 쪽에서 먼저 ‘다 만나겠다’ ‘얼굴을 맞대고 만나야만 남북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습니다.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제 옆자리에 앉았는데, 제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이명박 대통령도 만나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도 ‘김 전 대통령이 이렇게 물꼬를 텄으니 반드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라’고 권유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병문안도 오셨는데, 사전에 미리 연락이 있었습니까?
“사전에 전혀 연락이 없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시는 비서가 우리 쪽 비서한테 ‘지금 출발하신다’고 전화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나중에라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찾아오신 걸 알았습니까?
“당시 의료진이 진통제 등을 써서 대통령을 가급적 주무시도록 했습니다. 깨어나실 때마다 저희들이 누구누구가 다녀가셨다고 얘기를 하면 이해하셨던 걸로 압니다. 이런 일도 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의 방북 때엔 그에 관한 신문기사를 비서들이 읽어드렸습니다. 의료진이 ‘대통령의 기운이 많이 소진되셨으니 간단하게 하라’고 해서 몇줄 읽다가 ‘그만 읽겠습니다’했더니, 김 전 대통령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저를 쳐다보셨습니다. 그래서 비서들이 그날 보도된 기사들을 다 읽어 드렸습니다. 그만큼 김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가 원만히 진행되길 바라셨고 (진행 상황을) 알고 싶어 하셨습니다.”
-장례기간에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6개월간 일기 일부가 공개돼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내용을 전부 공개하지 않은 이유가 현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미공개분을 공개할 뜻이 있습니까?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겼기에 공개를 미룬 건지 일부라도 소개해줄 수 있나요?
“이희호 여사가 최경환 비서관한테 일기를 주셔서 저도 처음으로 그걸 봤습니다. 일기를 책자로 내기로 하고, 내용 중 민감한 부분은 많이 뺐습니다. 애도기간에 불필요한 정쟁거리를 내놓는 건 예의가 아니잖습니까. 저는 공개하지 않은 부분을 나중에 책으로 엮어 그대로 공개하면 어떤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건 전적으로 이희호 여사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이번엔 아예 공개에서 제외된 2008년도 일기도 앞으로 공개할 수 있습니까?
“거기에도 민감한 부분이 많습니다. 세월이 지나 좀 정리된 뒤 공개 여부는 이희호 여사가 결정하실 겁니다.”
-민감한 부분이란 게 정부 비판 내용입니까? 2008년도 일기에도 정부 비판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습니까?
“그건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이번에 정부가 국장도 받아들이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문병을 오기도 했습니다. 청와대는 이를 화합·통합 기조의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그 때문에 이 대통령 지지율이 오른 것도 사실이구요. 현 정부의 중도실용, 화합·통합 기조가 실체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일시적인 레토릭(수사)으로 여기십니까?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만은 레토릭이 아니라 국민들이 바라는 정책으로 실천을 하면 좋겠습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개헌특위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개헌특위를 구성하면 민주당은 참여할 생각인가요? 개헌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개헌은 저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기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추진했으면 가능했겠지만, 지금 9월 국회에 얼마나 많은 이슈가 있습니까. 한나라당이 이제야 개헌특위를 구성하겠다는 건 정국돌파용이지 진정성이 없습니다. 민주당은 개헌특위에 응하지 않을 걸로 압니다.”
인터뷰/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민감한 일기내용 공개는 이희호씨가 결정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인터뷰/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