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손에 촛불을 든 시민들이 24일 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들머리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
김해/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02년 여중생 추모집회로 첫 인연
2004년 시민 75만명이 탄핵 막아
2009년 조문객들이 마지막길 밝혀
2004년 시민 75만명이 탄핵 막아
2009년 조문객들이 마지막길 밝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23일 이후, 그를 추모하는 밤을 밝힌 것은 ‘촛불’이었다. 서울의 대한문과 경남 김해시의 봉하마을 등에서 조문객들은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었다.
노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은 늘 촛불과 함께 펼쳐졌다. 그가 ‘건곤일척’의 정치적 승부수를 띄울 때마다 국민들은 촛불을 들어 그를 응원했다. 이는 그에 대한 높은 대중적 지지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한편으론 제도 정치권에서 늘 소수였던 그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와 촛불의 인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치러진 대선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는 그해 6월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두 여중생 미선이·효순이 문제였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너나없이 여중생 추모 촛불집회장을 찾았다. 그때 집회 현장을 지켰던 오두희 평화바람 활동가는 “주요 대선후보 가운데 시민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은 것은 노 전 대통령이 유일했다”고 말했다.
여중생 추모 촛불은 광화문 네거리에 10만여명이 운집한 12월14일 절정을 이뤘다. 그로부터 닷새 뒤 실시된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간발의 차이로 꺾고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노 전 대통령과 촛불의 두 번째 인연은 2004년 3월12일의 국회 탄핵이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결의안이 가결된 직후 시민·사회단체들은 ‘탄핵무효 부패정치 청산 범국민행동’을 구성해 거리로 나섰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은 “국민주권” “탄핵무효” 등의 구호를 외치며 노 대통령을 응원했다. 탄핵안 가결 8일 뒤인 3월20일에는 광화문 네거리에서만 30만명, 전국적으로는 75만명이 길거리로 나왔다. 탄핵 한 달 뒤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노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은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는 “빈농의 아들이자 고졸 출신이었던 노 전 대통령을 일으켜세우고 지킨 것은 권력자가 아닌 시민들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두 차례의 촛불은 노 전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승리를 안겼지만, 세 번째 촛불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밝히는 추모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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