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값 명단’ 추가공개까지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5일 ‘떡값’ 명단을 추가로 공개한 것은 미적거리는 삼성 특별 검사팀의 수사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더욱더 강력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 삼성 관련 의혹 수사에 영향을 끼칠 만한 이명박 정부의 인사들에게 경고를 보내, 특검 수사를 방해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는 9일로 특검팀의 1차 수사기한이 끝나지만, 사제단이 ‘뇌물 검사’라고 공개한 전·현직 검찰 간부 3명에 대해 특검팀이 소환 조사도 않자, 사제단은 수사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특히 사제단은 조준웅 특검이 지난달 14일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환담’한 것을 위험 신호로 인식했다. 주요 피의자인 이 부회장을 상대로 피의자 신문조서도 받지 않고 독대한 것이 ‘봐주기 수사’의 신호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때부터 사제단 안에서는 특검팀의 수사가 제 길로 나아가게 하자며 떡값 명단을 추가로 공개하자는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지난달 29일 김용철 변호사가 “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과 청와대 고위직 인사 가운데 일부가 삼성그룹한테서 정기적으로 ‘떡값’을 받았다”고 말해, 추가 명단 공개는 기정 사실로 굳어졌다.
일단 명단 공개 원칙을 정한 사제단은 공개 범위를 두고 장고에 들어갔다. 사제단은 지난달 29일 밤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공개 범위를 놓고 의견이 맞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전체 명단을 공개하자는 의견과, 이럴 경우 자칫 2005년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 때처럼 본류인 ‘삼성 비자금’이 가려지고, 지류인 ‘떡값’ 수수 진위 공방으로 초점이 이동할 수 있으니 일부만 공개하자는 의견이 맞섰다고 한다.
사제단은 결국 지난 3일 강원도 고한에서 비상상임위원회를 열고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등 일부만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사제단은 애초 공개 시기를 다음주 중반으로 잡았다. 하지만 김성호 후보자의 국회 인사 청문회가 오는 7일로 확정되자, 5일로 기자회견을 앞당겼다. 공개 대상은 특검팀의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새 정부의 고위 인사로 한정했다.
사제단의 전종훈 신부는 “삼성한테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은 사람이 새 정부의 사정 라인의 핵심 직책을 맡거나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 되는 것을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특검팀이 수사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해 검찰로 사건이 넘어갈 경우 새 정부 인사들이 수사를 왜곡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로 보인다. 사제단이 “대검찰청 중수부장과 서울중앙지검장 등 핵심 보직 인사에 삼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임명돼야 한다”며 검찰의 검사장급 인사를 거론한 것도 특검 이후를 염두에 둔 대목이다.
사제단이 명단을 일부만 공개한 것은 ‘역풍’을 차단하면서 특검으로 하여금 삼성 로비를 받은 정황이 확실한 인사를 수사하도록 하자는 의도로 보인다. 특검팀 관계자는 “사제단의 기자회견 내용을 참고해 기존에 해 오던 불법 로비 의혹 수사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사제단은 나머지 떡값 전체 명단은 특검팀의 수사 상황을 지켜보며 공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사제단의 전종훈 신부는 “(전체) 뇌물 로비 명단 공개는 수사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뤄지거나 가능하면 공개할 필요가 없도록 로비를 받은 당사자들이 먼저 회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제규 기자 unj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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