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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뛰어난 조직장악력 이면엔 민주절차 부재

등록 2007-12-02 14:28수정 2007-12-03 03:32

[대선후보 리더십 검증]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3.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서울시장직은 대권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날개였다. 특히 먼지 날리는 콘크리트 고가도로를 고작 2년3개월 만에 맑은 물로 바꾼 청계천복원사업은 그의 놀라운 집중력과 추진력을 증명했다. 그러나 가능한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집착 탓에 시정운영에 필수적인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색케 하고, 사업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 ‘마케팅행정’의 달인=그가 시장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돋보인 능력은 ‘행정 소비자’들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했다는 것이다. 그는 4년 동안 서울시장에 있으면서 해마다 굵직굵직한 ‘신상품’을 쏟아냈다. 2002년 취임 직후 대표 공약이었던 청계천복원사업에 돌입한데 이어 2003년엔 뉴타운계획을 발표했고, 2004년엔 버스체계 개편을 선보였다. 2005년 6월 서울숲 개장에 이어 같은해 10월엔 청계천에 물이 흘렀다. ‘교통섬’이었던 서울시청 로터리를 광장으로 바꿨고, 광화문엔 보행자를 위한 건널목이 놓였다. 그는 신상품을 출시하는 마케팅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시민들은 확확 바뀌는 서울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이런 사업들을 홍보하는 데도 뛰어났다. 서울광장은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을 설치해 인기를 모았고, 청계천 복원 사업 이후엔 작가들에게 작품지원비를 지급해 청계천을 소재로 한 소설집을 내도록 했다.

■ 조직 장악력과 추진력=청계천 사업에 참여했던 한 공무원은 “서울시에 들어온 이후 이처럼 일하면서 ‘완전연소’된 느낌은 처음이었다”고 말한다. 이 후보가 조직을 장악하는 방법은 청계천사업처럼 프로젝트를 내세우고 목표일에 맞춘 일정 속에서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었다. 일에 매달릴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후보는 매주 토요일 오전 ‘청계천복원사업 대책회의’를 열어, 공사의 난제를 의논하고 일정을 확인했다. 당시 상인대책 업무를 맡았던 한 공무원은 “낮이고 밤이고 상인들을 만나느라,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갖다놓고 생활했다”고 말했다. 2003년 7월1일 고가 철거 디데이를 20일 앞둔 때까지도 서울시는 공사를 반대하는 상인들과 협상을 끝내지 못했고 노점상 대책도 마무리짓지 않았지만, 이 후보는 공사 시작일을 늦추지 않았다. 시장의 확고한 의지로 인해, ‘상인팀’ 공무원들은 청계천 상인을 4200번이나 만나며 설득 작업을 벌였다.

■ 민주적 절차의 부재=아이러니지만, 애초 청계천사업을 반대했던 이들은 애초 이 후보와 ‘코드’가 비슷한 교통·토목 전문가들이었고, 복원을 지지했던 이들은 소설가 박경리씨를 포함해 70년대식 개발주의를 혐오하는 환경·문화 전문가, 시민단체였다. 2000년부터 ‘청계천살리기연구회’를 만들어 복원 방법을 연구했던 환경·교통·토목 분야 학자들도 있었다. 이들이 여론을 적극적으로 이끌어주지 않았더라면, 청계천사업은 머릿속 구상으로만 그쳤을지 모른다. 전문가·시민운동가들은 ‘역사문화의 복원’이라는 원칙을 내세우며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에 참여해 활동했지만, 사업이 진행되면서 서울시와 삐걱거리게 된다. 결국 2004년 5월 권숙표 위원장을 비롯해 시민위원 20여명이 사퇴하고야 만다. 공사 도중 발굴된 조선시대 석축을 훼손했다며 이 후보를 고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청계천살리기연구회의 창립 회원이자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노수홍 교수(연세대 환경공학과)는 “좀더 자연하천에 가까운 설계안으로 바꾸자거나, 장애인편의시설을 적극적으로 설치하고, 공사 과정에서 나온 석축·다리 유구 등을 살려 공사를 하자는 의견이 쏟아졌지만 서울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사 일정을 맞추는데만 급급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서울시는 위원들의 다양한 제안에 대해 일부 소수 위원들이 개인적 견해로 서울시의 청계천복원사업을 비판하고 있다는 식으로 매도했고, 점점 시민위원회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과정보다 시간과 돈을 우선하느라, 본인이 진행한 절차를 뒤집기도 했다. 그는 서울광장을 만들면서 애초 설계안으로 당선된 작품을 일방적으로 무시했다. 공사가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설계자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갑자기 잔디를 까는 디자인으로 바꾼 것이다.

■ 속도 강박증=청계천 공사는 본인의 표현대로 ‘살인적 일정’으로 진행됐다. 2003년 말부터 청계천 공사를 직접 지휘했던 서울시의 한 고위 간부는 “현장에 나가보니 이대로 하다간 공사 일정을 제대로 맞출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에 120명 투입했던 인부를 10배로 늘려 밤낮없이 공사를 벌였다”며 “공사를 맡았던 건설사의 한 현장소장은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병원에 입원했다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다.


빨리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은 서울숲 조성 사업에서도 되풀이됐다. 서울시는 2003년 7월에 공원 설계 계약을 맺어 식목일이 낀 2005년 4월에 개장하려 했으나 도저히 일정을 맞출 수 없다는 직원들의 의견에 따라 6월로 늦춰졌다. 배호영 당시 서울숲조성 추진반장은 <서울숲백서> 후기에서 “최단기간 14개월이 소요되는 토지보상도 절대기간이 부족했고, 그 땅에 심어야할 나무들을 다른 곳에 심었다가 자꾸 옮기는 바람에 점점 고사율이 높아졌다”고 썼다. 서울시는 공사를 서두를 뿐 아니라, 일을 잘 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이 후보는 봄·가을로 시민들과 함께 식목 행사를 벌였는데, 직원들은 이것이 공사를 지연시키는 원인이었다고 전한다. 현장 직원들은 미리 흙을 부어 언덕을 만들어놓고 서울시 돈으로 나무를 사다가 모두 심어놨다. 행사일에는 시민들이 흙 몇 삽에 물을 주고 가면, 나중엔 이를 다시 일일이 정리해야 했다.

뉴타운은 부동산투기 방지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채 성급히 발표해, 땅값 급등에 일조했다. ‘부동산학회’의 자료를 보면, 2002~2006년 서울시의 전체 평균 공시지가는 8%였지만, 뉴타운지구의 지가 상승률은 22.6%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뉴타운사업은 토지 수용 뒤엔 땅값 변동이 적은 택지개발사업과 달리, 몇년씩 걸리는 사업 기간 전반에 걸쳐 지가 변동이 심하다고 지적한다. 이 후보는 스스로 ‘도시계획전문가’임을 내세우며 강북을 확 바꾸겠다고 잇따라 3차뉴타운 사업지까지 발표했지만, 이때문에 외곽으로 밀려난 서민들이나 투기등으로 인한 대책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결국 오세훈 시장은 이후 뉴타운지구 선정을 아예 보류했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그의 일하는 스타일을 한마디로 ‘선택과 집중’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줬고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국가 지도자의 덕목이 과연 선택과 집중이냐는 데는 논란이 있다. 재임 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려면 자원을 자원의 적절한 배분을 통해 당장은 표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꼭 필요한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디즈니랜드’ ‘AIG센터’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헛방으로
앞서 가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말’… “누군가 말려줘야”

“그의 입은 (실제 진행되는 일보다) 한발 먼저 나갔다. 누군가 옆구리를 찌르며 말려줘야 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서울시에서 함께 일했던 한 고위 간부는 “이 후보는 본인이 혼자서 추진하는 일은 대체로 약속을 지켰지만, 상대방과 함께 진행하는 일에선 혼자 속도를 내곤 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서울시장 재임 시절 본인이 직접 밝히고도 흐지부지된 사업들이 여럿 있다.

지난해 1월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과천 서울대공원에 디저니랜드를 유치하겠다. 한두달 안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서울시는 미국 디즈니랜드 쪽으로부터 사업 설명을 듣고 담당 공무원들은 현지 답사를 다녀온 상황이었다. 그러나 곧 서울시의 한 간부가 직접 홍콩 디즈니랜드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 이 계획은 백지화됐다. 홍콩처럼 규모가 작을 바엔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더이상 ‘디즈니랜드’를 말하지 않았다.

지난해 3월 미국 뉴욕을 방문한 그는 현지에 동행한 기자들에게 “미국의 다국적 종합금융업체인 AIG아시아지역본부가 일본에서 옮겨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에앞서 AIG에 여의도 시유지를 장기 임대해 글로벌 금융센터를 세우기로 투자 협약을 맺었지만, 도쿄의 아시아지역본부 이전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후보는 다만 AIG의 모리스 그린버그 회장으로부터 “AIG의 중요한 금융사업 부문을 서울에 위치시키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아시아지역본부가 옮겨온다고 말해 ‘오보’를 생산해냈다. AIG는 아직도 아시아지역본부 이전을 약속하지 않고 있다.

2007년까지 한강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는 구상도 누더기가 됐다. 2005년 1월 이 후보는 “국제 공모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겨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장을 서울에 짓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울시는 긴급 예산 237억6천만원을 편성해 한달 뒤 노들섬 부지를 사들였다. 그러나 오페라하우스 건립은 여론의 반발에 부닥쳤다. 타당성 조사, 국제 설계공모, 실시설계 확정, 공사까지 해야 하는데 2년이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여론 수렴도 없이 성급하게 부지부터 사들였다는 비판이 일었고, 문화계에선 소비층이 좁은 고급문화 장르를 위해 수천억원의 시세를 쏟아부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결국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장 선거 때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와 관현해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재검토할 뜻을 내비쳤다. 오 시장은 올초 오페라하우스 대신 한 공연장에 여러 장르가 가능한 복합공연장을 짓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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