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회창 공식행사서 `첫 조우'
한국노총이 이번 대선에서 지지할 후보를 결정할 ARS투표를 앞두고 24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개최한 전국노동자대회에는 각당 대선후보들이 대거 참석해 `노심 잡기' 경쟁을 벌였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무소속 이회창, 민주당 이인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등 5명의 대선주자들은 저마다 `서민과 노동자편'임을 앞다퉈 강조하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한국노총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온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후보와 국민중심당의 심대평 후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빅3' 가운데 이명박 후보는 `노사 입장을 모두 아는 유일한 후보'임을, 정동영 후보는 MBC 기자 시절 노조 설립을 주도했음을, 이회창 후보는 `정직과 신뢰'를 각각 내세우며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다.
이명박 후보는 "어린 시절 좌판장사를 했고 시장에서 환경미화원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도 했다. 그러나 그 후에는 경영자가 됐다"면서 "나는 경영자와 노동자 양측의 입장을 가장 잘 아는 유일한 후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은 한국노총과 함께 새로운 노사문화의 시대를 열어 새로운 길을 만드는데 앞장 서겠다"면서 "ARS 투표를 통해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달라. 말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전날부터 목상태가 좋지 않았던 이 후보는 감기증세까지 겹쳐 목소리가 안 나오는 바람에 연설의 뒷 부분을 후보 공약을 담당한 김형오 일류국가비전위원장이 대독했다.
이 후보는 김 위원장이 대독한 연설에선 "이용득 위원장 중심으로 추진하는 사회개혁적 노동운동은 노사 관계의 새 출발점으로 적극 지지한다"며 "노총과 한나라당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동영 후보는 `막강 한국노총', `동지' 등의 표현을 쓰는 한편, "나는 후배들과 MBC 노조 결성을 주도했다"면서 동질감을 강조하는데 주력했다.
그는 또 이용득 위원장이 선포한 3대 노선(사회통합적 정치운동, 해외 투자유치 동행 및 참여, 비정규직 등 약자와의 연대)을 지지한다고 밝힌 뒤 ▲공권력 개입 최소화 ▲비정규직 규모 25%로 축소 및 상시 일자리 보장 ▲노조의 차별시정청구권 강화 ▲60세 정년보장 및 2020년 70세로 정년연장 등을 공약했다.
그는 최근 한국노총이 주최한 대선후보 TV토론이 이명박 후보의 불참으로 무산된 점을 지적, 자신의 연설을 듣고 있던 이 후보를 향해 "이 자리에서 왜 TV토론에 불참하고 한노총의 제안을 거부했는 지 분명히 해명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또 이명박 후보가 현대건설 회장 재직시 노조설립을 방해했다는 세간의 의혹과 관련해 "이 자리에 있는 정치지도자 중 노조 설립을 방해한 경력을 가진 후보가 있다"면서 "MBC 노조 설립할 때 방해를 받았었는데, 나는 노조설립을 방해했던 후보와는 노동참여 세상을 함께 열 수 없다"고 각을 세웠다.
이명박 후보는 정 후보가 자신을 비판하는 동안 옆에 앉아있던 이인제 후보와 웃으며 대화를 하면서 정 후보를 손가락질 하기도 했다.
이회창 후보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아래에서 출발해 위로 가려고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이명박, 정동영 후보를 겨냥, "나는 노동자 출신도 아니고, 과거에 노동운동도 안했고, 과거에 시장에서 노동하고 좌판장사도 한 적이 없지만 과거 노동자 출신보다 과거 노동운동했던 사람보다도, 먹물을 먹은 이 사람이 노동자를 생각하고 권익을 이해하고 더욱 함께 가고자 한다면 누구를 지지하겠느냐"고 말했다.
아울러 "건국 이래 이 나라 노동계의 주축으로 삼아온 한국노총 여러분과 함께 정직과 신뢰로 얘기하고 마음을 통하고 협력하면서 이 나라 미래를 열어가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또 "이상한 때에 이상한 모습으로 정치에 돌아왔다. 오로지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개인의 명예와 자존심을 버리고 뛰어 들었다"면서 "거짓말하지 않는다. 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어떤 것이라도 반드시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이인제 후보는 과거 `노동부 장관' 시절 한국노총과 협력 관계였음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자신과 민주당 그리고 한국노총이 `일심동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 후보를 겨냥해 "내가 장관할 때 29%도 되지 않는 비정규직이 50%가 됐다. 불행한 나라와 가족, 고통스러운 나라를 만들어놓고 가족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그들을 심판해야 한다"고 비판했고, 이명박 후보를 겨냥해선 "청와대는 부패하고 범죄혐의가 있는 분이 갈 수 없다"고 공격했다.
문국현 후보는 "부패.비리와 탐욕스런 정경 유착 세력도 안 된다. 무책임한 세력도 안 된다. 지난 5년간 비정규직이 500만명, 청년실업이 200만명이 됐다. 부동산 폭등으로 2천500조원의 거품이 생겼다"면서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를 싸잡아 공격했다.
그는 이어 "여러분의 힘으로 부패도, 무능도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했다.
이날 행사는 예정보다 30여분 늦게 시작하면서 당초 만나기 힘들 것으로 보였던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공식행사에서 처음으로 조우하는 자리가 됐다. 두 후보는 행사 전후에 서로 웃는 표정으로 악수를 하며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눈 한번 마주치지 않아 `불편한 관계'임을 보여줬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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