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전 비비케이 대표가 새로 선임한 오재원 변호사가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신의 사무실 들머리에서 기자들에 둘러싸여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 변호사는 “미국에서 온 상자를 (변호인에서 사임한 박수종 변호사한테서) 인계받았고, 김경준씨는 본인이 있는 데서 상자를 개봉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김경준 가족 “한글판 계약서 공개땐 파장 클것” 주장
한나라 “우리도 이면계약서 확보” 공개시기 저울질
한나라 “우리도 이면계약서 확보” 공개시기 저울질
김경준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은 19일(현지시각)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20일 오전 11시반(한국시각 21일 새벽 4시반)에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과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밝히겠다.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이면계약서도 그때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회견장에 나타난 사람은 에리카 김이 아닌, 김경준씨의 부인 이보라씨였다. 공개를 약속한 이면계약서도 공개되지 않았고 사본조차 취재진들에게 배포되지 않았다.
대선후보 등록을 앞두고 검찰의 수사 일정이 촉박한 상황에서, 김씨 가족이 이면계약서의 원본이 아닌 사본을 검찰에 제출하고 그 내용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이면계약서의 진위를 둘러싼 의문을 키우고 있다.
이보라씨는 이날 이면계약서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친필서명을 변조할 수도 있다는 점을 들었다. 자신들이 계약서를 공개하고 이 후보 쪽이 이를 입수하면, 이 후보가 자신의 친필서명을 변조해 검찰에 제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씨 가족들은 이날 회견을 마친 뒤 비비케이의 실소유주가 이 후보라는 한글판 계약서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여기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를 보였다. 검찰이 이 후보 측근들을 조사하면서 자신들이 사본으로 제출한 한글판 계약서는 이 후보 쪽에 노출시키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를 둘러싸고 이 후보 쪽과 치열한 수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이 “우리도 계약서를 갖고 있는데 그것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는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위조됐다고 낙인찍을 이면계약서를 먼저 내놓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한나라당 역시 “우리도 계약서를 갖고 있지만, 우리가 먼저 공개할 필요는 없다”며 저울질을 계속하고 있다.
김씨 가족들의 태도를 보면, 이들은 애초 검찰에는 일단 사본을 제출해 내용을 검토하게 한 뒤, 가족은 미국에서 내용을 공개해 이 후보와 검찰을 압박한다는 양동작전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씨 가족이 주장하는 한글판 계약서의 내용이나 존재 여부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후보 쪽의 ‘친필 서명 변조’를 이유로 언론에 약속한 계약서 공개 방침을 번복한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힘들다. 어차피 이들이 미국에서 이 원본의 전문가 검증을 거치겠다고 한 이상, 친필서명을 한 진짜 계약서를 갖고 있다면 공개 뒤 검증을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이런 태도는 자칫 이면계약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이 후보 쪽의 주장에 힘이 실릴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어 보인다. 김씨 가족들이 막판까지 이 후보 쪽과의 절충가능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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