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선퇴진론'엔 "대선 승리후 논의하자"
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이 몸을 바짝 낮췄다.
"아직도 경선하는 걸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 좌시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최근 발언이 박근혜 전 대표측을 자극하면서 그의 `2선 퇴진론'이 박 전 대표측의 `당 화합' 전제조건이 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다.
이명박 후보의 핵심 측근인 이 최고위원은 3일 밤 은평구 구산동 지역구 사무실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최근의 `복잡한'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사과'라는 표현을 여러 번 써 가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박 전 대표측을 끌어안기 위한 전략적 `몸낮추기'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봐 달라"고 거듭 당부하며 `진정성'을 강조했다.
다만 `퇴진' 주장에 대해서는 "대선 승리이후 논의할 문제"라며 즉각 사퇴 의사는 없음을 시사했다.
-- `좌시하지 않겠다'는 발언이 박 전 대표측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는데.
▲나의 오만함을 깊이 반성한다. 경선이 끝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승자의 입장에서 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말로는 화합하자고 했으나 맘속으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일 수 없었고, 그게 독선과 오만으로 나타나 상처를 주게 됐다.
솔직히 경선승리 후 `패자가 무슨 할 말이 있느냐'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패자의 쓰라린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고, 그들의 반발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박 전 대표측에서는 이 최고위원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나의 언행으로 마음을 상했거나 나로 인해 화합이 어렵다고 느낀 사람이 있다면 박 전 대표든 박 전 대표측 인사든 진심으로 사과한다.
내일(5일) 열릴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에서 이런 사과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겠다.
박 전 대표에 대해서도 빠른 시일내에, 가능하면 내일이라도 직접 찾아뵙고 사과의 뜻을 전하겠다.
--이번 발언과 박 전 대표의 `오만의 극치' 반응 이후 이명박 후보는 어떤 입장을 보였나.
▲이 후보와 지난 15대 때부터 때로는 동지로, 때로는 선후배로 같이 일해 오면서 단 한 번도 이 후보가 나에게 `뭘 하라'고 한 적이 없고, 나도 이 후보를 위해 `뭘 하겠다'고 말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번 `오만의 극치' 파동으로 인해 (이 후보로부터) 눈물이 쏙 나도록 야단을 맞았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 온 삶과 신념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야단을 맞았으나 그 야단이 옳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나는 내가 옳은 줄로만 알았다. 내가 옳은 데 왜 남이 생각을 안 해 주나 하는 생각을 해 왔다. 골프 치는 사람을 보면 `왜 골프를 치나' 했고, 저녁에 술집에 가서 폭탄주 먹는 사람을 보면 `그 시간에 지역구를 한 번 더 돌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모든 게 내 입장에서만 봤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상대 입장에서 상대를 보지 못했다. 세상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새삼 느꼈다. 개혁과 변화는 물론이고 대선승리도 함께 이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 이회창 총재의 출마 움직임 때문에 `박 끌어안기' 차원에서 전략적 사과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차원이 아니다. 진심으로 봐 달라.
--이 최고위원의 사과가 있더라도 박 전 대표측의 2선 퇴진론은 계속될 것 같은데.
▲지금은 범여권에 맞서 총력전을 벌일 때로, 대선 승리 후에나 논의할 문제다.
앞으로 `이명박 정부'를 만들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 상대(박 전 대표측)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낮은 자세로 정권교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서로 반성하자'고 말한 것이 상대방만 반성하라는 것으로 비치고, 최고위원 자격으로 당을 둘러본 것이 점령군으로 비쳤을 때 참으로 억울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상대가 아닌 내 중심의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고 반성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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