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의 어설픈 답변만 듣고 마무리
검증위원 사전준비 부실…“정치쇼”
검증위원 사전준비 부실…“정치쇼”
대선후보 경선 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한나라당의 검증청문회는 기존 의혹을 털어버리기보다는 새로운 의혹을 더 많이 생산해내는 결과를 낳았다. 그동안 불거진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겠다는 한나라당의 목표와 실제 결과는 차이가 많이 났다.
새로운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는 부수적 성과가 있었지만, 애초 목적인 검증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헌 검증위원은 “후보들이 종전 주장을 반복했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는 ‘동문서답’이나 회피성 강변으로 민감한 질문을 피해갔다. 특히 이 후보는 “(문제가 된) 도곡동 땅이 나중에라도 이 후보의 것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맥락이 전혀 다른 답변으로 시간을 끌거나,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오자 “이건 전부 네거티브(부정적 선거전략)다” “너무 오래 시달리고 있다”는 식으로 응수하며 자신을 피해자로 각인시키려 했다.
이런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청문회를 준비한 국민검증위원회는 각 후보들에게 100여개의 질문 항목을 사전에 제시했다. 문제지를 미리 보여주고 치르는 시험처럼 된 것이다. 김명곤 조사단장은 청문회가 끝난 뒤 “후보들이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증위원들의 사전 준비가 면밀하고 철저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질문-답변-재질문-재답변 …’으로 이어지는 밀도 있는 진행은 몇 차례에 그쳤다. 대부분의 질문은 후보의 어설픈 답변만 듣고 마무리됐다. 청문회 하루 전 “청문회의 실효성을 상당히 의심하고 있다”는 안강민 국민검증위원장의 말이 현실화된 셈이다.
이날 청문회를 지켜본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은 “검증하는 자리라면 성실한 답변을 기다리기보다는 몰아붙이는 분위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긴장감이나 밀도가 느껴지지 않았다”며 “자기들끼리 하는 요식행위로 비쳤다”고 말했다. 공명선거 실천시민운동 협의회가 “청문회의 형식을 빌려 두 후보에게 해명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정치 쇼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이날 청문회는 박 후보보다 이 후보 쪽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청문회에서 후보 자신이 공개적으로 답변한 내용이 나중에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로 인해 받게 될 타격은 이 후보가 더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 후보 캠프는 서로 자신의 후보가 더 잘 했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 캠프의 박형준 대변인은 “오늘 청문회는 기대했던 대로 근거 없는 의혹들을 명쾌하게 해소하는 기회가 됐다”며 “이 후보가 정권교체의 유일한 대안임을 확신하게 해준 뜻깊은 자리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반면 박 후보 캠프의 이혜훈 대변인은 “박 후보가 진솔하고 성심성의껏 답변함으로써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며 “이 후보의 의혹은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되었다”고 주장했다. 강희철 조혜정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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