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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후보를 돕는 길만이 정권 교체의 지름길이라고 확신한다.”
대표적인 ‘친박근혜’ 의원으로 꼽혀 왔던 전여옥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12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 지지를 선언했다. 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 시절 20개월 동안 대변인을 하며 ‘박근혜의 입’, ‘박근혜의 분신’으로 불렸다. 그는 2005년 2월 의원 연찬회에서, 일부 의원들이 박 후보를 비판하자 “(한나라당은) 탄핵의 폐허에서 박 대표의 치마폭에 싸여 치마꼬리 붙잡고 ‘살려달라’며 애걸해서 121석을 얻었다. 국민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뺑덕어미 보듯 할 것”이라고 박 후보를 적극 옹호했다.
정몽준 지지 이후 세번째 변신
전 의원은 이날 여의도 당사와 이 후보 사무실을 오가며 연 기자회견에서 ‘박근혜’를 떠나 ‘이명박’을 지지하게 된 이유로 “지난 5월 양대 주자가 경선규칙 논란을 벌일 때 이 후보가 전화를 걸어와 의견을 물었다. 그때 저의 양보 권유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 후보의 어떤 점에 실망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정권 교체’를 강조한 점으로 미뤄, 이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더 높게 본 듯하다. 박 후보 캠프의 몇몇 핵심 인사들이 전 의원을 껄끄러워한 점도 그의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전 의원은 이날 이명박 후보에 대해 “꿈을 눈앞의 현실로 만든 최초의 정치인”, “배고픔에 소리 죽여 울어보고, 없는 설움과 아픔을 겪은 사람”, “이 절망의 시대에 ‘샐러리맨의 신화’에 기름을 부어 ‘대한민국의 신화’를 활활 타오르게 할 인물”이라며 극찬했다. 이 후보도 기자회견장에 직접 나와 “백의종군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오셨다”며 반갑게 환대했다. 이 후보 쪽은 이기택 전 민주당 대표와 김덕룡 의원도 다음주께 합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 의원의 ‘변신’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그는 4월26일 한나라당의 재보궐선거 패배 뒤 최고위원 직에서 물러나자마자 박 후보 쪽을 향해 “주변 의원들이 종교집단 같다”며 특유의 독설을 퍼부었다. 이때부터 한나라당 안팎에선 전 의원이 2002년 대선 때 정몽준 후보의 ‘국민승리21’ 당무위원으로 이회창 불가론을 폈다가 이듬해 3월 돌연 한나라당에 입당했던 전력과, 입당 전 박 후보를 “영남공주”, “(박정희의) 정치적 유산 상속자”라고 비판했던 전력 등이 입길에 오르내렸다. 언론인이었던 그가 정몽준→박근혜→이명박으로 이어지는 ‘세번째 변신’을 할 것이란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박근혜쪽 ‘분노’ ‘허탈’ 교차
박근혜 후보 쪽은 화를 참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박 후보가 2004년 ‘고졸 대통령’ 발언으로 정치적 위기를 겪었던 전 의원을 당 안팎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변인에 유임시켜 ‘정치적 생명’을 이어준 일화를 들며, “어찌 사람으로서 그럴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전 의원의 이탈을 아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가 ‘여자 김용갑’으로 불릴 만큼 당내 보수를 대변해 왔다는 점을 들어, 경선에서의 타격을 우려하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전 의원 소식을 듣고 “그분의 선택 아니겠느냐”라고만 말했다고 캠프의 핵심 관계자가 전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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