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1일 사퇴한 정동영 의장이 “질서 있는 수습을 위해 의장직을 승계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동반사퇴를 결심했던 김 최고위원으로서는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요구받은 셈이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이호웅·문학진·우원식·이인영 의원 등 ‘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민평련)’ 소속 의원 10여명과 두 시간이 넘는 ‘난상토론’을 벌였다고 참석 의원들이 전했다. 사퇴론과 승계론이 팽팽히 맞섰다. 사퇴론은 “백의종군해야 길이 열린다. 승계해 봐야 득될 게 없다”는 것이고, 승계론은 “당의 위기를 질서 있게 수습하지 않으면 더 큰 어려움에 처한다”는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모임에서 “정말 위기감을 깊게 느낀다. 여기서 극복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발전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데, 판단이 잘 안 선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의원이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데는 ‘예고된 실패’가 아닐까 하는 우려도 깔려 있는 것 같다. 민평련의 한 의원은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지도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지, 위기를 수습하지도 못하고 무력하게 주저앉게 되지는 않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한테는 지금 상황이 ‘독배’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당내 의견은 의장직 승계가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쪽으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중도 성향 모임인 ‘광장파’ 소속 의원 10여명이 이날 연 모임에서도 ‘김근태 승계론’이 대세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김 최고위원은 국회의원·중앙위원 연석회의가 열리는 5일까지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내 여론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의원 대다수의 동의가 없다면 “욕심 낸다”는 따가운 시선만 받을 수도 있다. 우원식 의원은 “생각이 다른 의원들도 있고, 이미 원심력이 작용하는 상황 아니냐”며 “김 최고위원 혼자 결단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내 ‘2인자’의 꼬리표를 달았던 김 최고위원이 의장직을 승계한다면, 일생일대의 정치적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의 위기를 수습해 낸다면, 2007년 대선을 향한 발걸음에 크게 속도가 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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