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적 충돌 위험 높아져
합동참모본부(합참)가 북한의 사흘(5~7일) 연속 서북 도서 포 사격과 관련해 8일 “지상과 동·서해 해상에 적대행위 중지구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식 선언하고, 이 지역에서 사격 등 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맞서 정부가 공중 비행금지구역 효력정지를 결정한 데 이어, 지상과 해상 적대행위 완충구역은 더 이상 없다며 훈련 재개 방침을 밝힌 것이다. 남북이 모두 무효화한 9·19 남북군사합의는 사실상 사라져, 지상·해상·공중 접경지대에서 우발적 충돌 위험이 높아졌다. 정부가 북한의 군사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평화관리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합참은 이날 “북한은 (지난해 11월23일) 9·19 군사합의 파기 선언 이후 최근 사흘 동안 서해 적대행위 중지구역에서 사격을 실시해 적대행위 중지구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이에 따라 우리 군도 기존의 해상 및 지상의 적대행위 중지구역에서 사격 및 훈련 등을 정상적으로 실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상과 동·서해 해상에서 적대행위 중지구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군 당국은 9·19 합의로 중단됐던 백령도·연평도 등에서의 해병대 정례 해상사격을 재개할 방침이다. 이미 지난 5일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북 해상 포 사격에 대응해 연평도와 백령도 해병부대가 북방한계선 이남 해상 완충구역으로 포 사격을 실시한 바 있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3600여회 9·19 군사합의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2018년 맺어진 9·19 군사합의는 △육해공 모든 영역에서의 상호 적대행위 중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비무장지대 내 상호 감시초소(GP) 시범 철수 △한국전쟁 전사자 남북공동유해발굴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핵심은 우발적 무력충돌이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도록 남북 접경지역 땅·바다·하늘 완충구역을 설정하고 적대행위를 중단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21일 북한이 3차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했다고 선언하자 정부는 다음날 9·19 군사합의 중 ‘비행금지구역’의 일시 효력정지를 결정했다. 이에 북한은 11월23일 9·19 군사합의 전면 무효를 선언하고 군사합의에 따라 파괴했던 최전방 감시초소의 복원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재무장에 나섰다. 북한이 지난 5일부터 서해 해상 완충구역 내 포 사격을 재개하자. 합참이 해상·지상 완충구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해 남북 군사력이 집중된 지상·해상·공중 접경지역에서 우발적 충돌 위험이 높아졌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전은 북한이 한국 해병대 연평부대의 포사격 훈련 중단을 요구하며 벌어졌다.
지난 연말 한·미 연합전투사격훈련, 지난주 한국 육군 포 사격 훈련과 해군 동·서·남해 전역 포 사격과 해상기동훈련이 있었고,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적 도발 시 초토화” “즉·강·끝”(즉시 강력히 끝까지 응징하라)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달 말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4월 총선과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의 긴장 고조 행위가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오사카 총영사를 지낸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는 “미국과 일본은 북한의 도발을 지적할 때 반드시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평화 관리 노력을 한다”며 “그러나 한국은 9·19 군사합의 등 열려 있는 대화의 문을 닫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가을부터 미국은 오는 11월 대선 전까지 한반도와 대만해협 충돌을 막기 위해 중국의 협력을 얻고 있어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은 국제정세와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홍구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역대 통일부 장관 신년 인사회에서 김영호 통일부 장관에게 “현 시기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각급에서 남북 간 대화가 복원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